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 시계를 보면 늘 비슷한 시간이다. 주말마다 반복되는 이 시간에 나는 스스로를 ‘효자인 척’이라 부른다. 진짜 효자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몸은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 겨울의 시골은 생각보다 더 고요하다. 논도 밭도 모두 잠들어 있고, 농한기라는 말이 이보다 잘 어울릴 수 없다. 차 안 히터를 켜고 굽이굽이 시골길로 들어설수록, 마음은 조금씩 느려진다.
어머니는 올해 여든다섯이다. 홀로 사신 지도 꽤 오래됐다. 겨울이 되면 더 적막해질 법도 한데, 어머니는 요즘 매일같이 ‘출근’을 하신다. 경로당이다. 전기세도 아끼고, 사람 구경도 하고, 점심도 같이 먹을 수 있다며 꽤 부지런하다. 나는 그 사실이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쓰이기도 한다. 혼자 집에 계시면 하루 종일 TV만 보실까 걱정되다가도, 경로당에 간다 하시면 괜히 또 감기에 걸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날도 새벽에 도착하니 집 안은 아직 냉기가 가득했다. 보일러를 켜기 전이라 그런지 방바닥은 차가웠고, 어머니는 두꺼운 조끼를 입은 채 부엌에서 물을 올리고 계셨다. “왜 이렇게 일찍 왔노.” 늘 같은 말이지만, 목소리에는 반가움이 묻어 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잠이 안 와서”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이 시간이 아니면 또 한 주를 미룰 것 같아서다.
아침밥을 먹고 나니 어머니는 경로당 갈 준비를 하셨다. 목도리를 고쳐 매고, 장갑을 챙기고, 작은 가방에 귤 몇 개를 넣는다. “이거 다 같이 먹으려고.” 그 말 한마디에 괜히 웃음이 났다. 예전에는 자식들 먹이느라 분주했던 손이 이제는 친구들 몫을 챙긴다. 세월이 이렇게 흘렀다는 게 실감났다.
문제는 그 다음에 생겼다. 경로당에 모여 앉아 난로를 켜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전기가 나갔다고 한다. 겨울 시골에서 전기가 끊긴다는 건 생각보다 큰일이다. 난로도 멈추고, 불도 꺼지고, TV도 조용해진다.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오셨다. 평소보다 일찍 돌아온 어머니를 보고 나는 무슨 일인가 싶었다.
“전기가 나갔다.” 담담하게 말했지만, 얼굴에는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집에 돌아와도 상황은 같았다. 전기가 안 들어오니 보일러도 못 켠다. 나는 괜히 미안해졌다. 주말에 왔다고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면서, 이런 날은 더 그렇다. 어머니는 괜찮다며 두꺼운 이불을 꺼내셨다.
잠시 후, 이웃 할머니 한 분이 문을 두드리셨다. 경로당에서 함께 계시던 분이다. “여기만 전기 나간 거 아니래요.” 그러더니 “우리 집은 아직 들어오니까 거기로 가서 있으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계실 때는 참고 버티시던 분이, 누군가 손을 내밀자 그 손을 잡는다. 그 모습이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이웃집으로 갔다. 작은 방에 모여 앉아 다시 난로를 켜고, 차를 마셨다. 할머니들은 전기 이야기보다 옛날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누구네 아들이 어디서 뭘 한다더라, 누구는 허리가 아파 병원에 다닌다더라. 나는 그 옆에서 말없이 듣기만 했다. 그 대화 속에는 걱정도 있고, 웃음도 있고, 살아온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전기는 오후가 되어서야 들어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는 말했다. “그래도 사람 있으니 춥지는 않더라.”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전기보다, 난로보다, 사람 온기가 더 중요하다는 말처럼 들렸다. 나는 그동안 전기세 아낀다는 말만 곱씹었지, 어머니가 왜 경로당에 매일 가는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집에 돌아와 보일러를 켜고 나니 방은 금세 따뜻해졌다. 어머니는 다시 평소처럼 움직였다. 저녁을 준비하고, TV를 켜고, 하루를 정리한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주말마다 새벽에 내려오는 이 시간이, 과연 어머니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나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한 것인지.
밤이 깊어가고, 나는 다시 도시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어머니는 문 앞까지 나와 손을 흔들었다. “길 조심해서 가라.” 늘 같은 말, 늘 같은 장면이다. 차에 타고 시동을 걸면서 문득 깨달았다. 효자인 척이라도, 이렇게 오고 가는 이 반복이 어머니의 겨울을 조금 덜 춥게 만든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다음 주말도 나는 같은 시간에 일어날 것이다. 농한기의 시골, 경로당으로 출근하는 어머니, 그리고 전기세보다 사람 온기가 더 따뜻하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