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은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됐다. 토요일 아침, 아직 이불의 온기가 남아 있을 때였다. 휴대폰 화면에 어머니 이름이 떠 있는 걸 보는 순간, 괜히 마음이 먼저 긴장했다. 특별한 일은 없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전화를 받는 손에는 힘이 들어갔다.
“오늘 올 거지?”
안부도, 서두도 없었다. 바로 본론이었다.
“응, 갈 거야.”
나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이미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먼저 나를 부른 날은 많지 않다. 그 사실만으로도 오늘은 평소와 다른 주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길을 나서며 창밖을 보니 하늘이 맑았다. 바람은 차지만 햇빛이 분명했다. 이런 날이면 어머니는 예전 같았으면 일을 하셨을 것이다. 텃밭을 살피고, 마당을 정리하고, 하루를 꽉 채워 움직이셨을 날씨다. 하지만 이제는 그 햇빛이 그저 바라보는 대상이 되었다. 그 변화를 어머니가 느끼고 있을지, 아니면 이미 받아들였을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시골집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마당에 계셨다.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채, 그냥 서 계셨다. 나를 보자 손을 들지도 않고, 그저 고개만 끄덕이신다. 그 모습이 왠지 낯설었다. 늘 무언가를 하고 계셨던 분이 이렇게 가만히 서 있는 장면은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어머니는 바로 앉으신다. 움직임이 조금 둔해 보였다. 나는 괜히 부엌을 먼저 살폈다. 물은 끓고 있었고, 밥은 이미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준비를 해두고 나를 기다린 듯했다. 그 사실이 마음을 찔렀다. 기다림이라는 말이 이렇게 무게를 가질 수 있다는 걸, 나는 요즘에서야 배운다.
점심을 먹으며 어머니는 평소보다 말이 적었다. 대신 내 얼굴을 자주 보셨다. 무슨 말을 꺼내려다 접는 사람처럼, 입을 열었다가 닫기를 반복하신다. 나는 일부러 말을 꺼내지 않았다. 오늘은 어머니가 먼저 말할 차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다 먹고 난 뒤, 어머니는 조용히 말씀하셨다.
“가끔은 네가 안 오면, 하루가 너무 길어.”
그 말은 불평도 아니고, 부탁도 아니었다. 그냥 사실을 말하는 목소리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위로의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고, 괜찮다는 말은 너무 가벼웠다. 그래서 나는 그저 옆에 앉았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계 소리만 들렸고, 창밖에서는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그 침묵 속에서 어머니는 조금씩 숨을 고르듯 앉아 계셨다. 누군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하루의 길이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오후가 되자 어머니는 조금 기운을 차리신 듯 보였다. 간식을 챙기시고, 나에게 더 먹으라고 권하신다. 그 모습이 익숙해서, 나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여전히 어머니는 어머니였다. 다만, 혼자 버티는 시간이 점점 힘에 부칠 뿐이다.
해가 기울 무렵, 나는 오늘은 자고 가겠다고 말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어머니는 놀란 표정을 잠시 짓더니,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래, 그러면.” 그 짧은 대답에 안도가 섞여 있었다.
밤이 되자 집 안은 더 조용해졌다. 어머니는 일찍 누우셨고, 나는 방 불을 끄지 않은 채 잠시 앉아 있었다. 숨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며, 이 시간이 얼마나 더 주어질지 생각했다. 계산할 수 없는 시간 앞에서, 나는 아무 결론도 내리지 않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는 전날보다 얼굴이 밝아 보였다. “어제는 좀 괜찮았어.” 그 말에 나는 괜히 웃는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함께 있었을 뿐인데, 그게 이렇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 묘했다.
떠날 때 어머니는 평소보다 오래 서 계셨다. 손을 흔들지는 않았지만, 눈길을 떼지 않으셨다. 나는 차에 오르며 뒤돌아보았다. 그 시선이 오늘따라 깊게 남았다.
85세 어머니 앞에서, 오늘도 나는 효자인 척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척이라는 말이 점점 어울리지 않는다. 잘하려 애쓰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그저 부를 때 가는 것. 어쩌면 효도는 그렇게 단순한 형태로 남는지도 모른다. 다음 주말도 나는 그 부름을 기다릴 것이다. 먼저 오지 않더라도, 결국 내가 먼저 가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