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엔 할 일 없어도, 주말이면 어머니에게로

by 수미소

겨울이 되면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해가 짧아지고, 바람은 날카로워지며, 몸은 자연스럽게 움직임을 줄인다. 텔레비전 소리와 난방기 돌아가는 소음이 하루의 배경음이 된다. 특별히 할 일도, 급히 나설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말이 되면 나는 습관처럼 차 키를 챙긴다. 목적지는 늘 같다. 시골집, 그리고 그 집에 혼자 계신 여든다섯의 어머니.

누가 시켜서 가는 것도 아니고, 꼭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겨울의 시골은 불편함이 더 많다. 마당은 얼어 있고, 수도는 동파될까 신경 쓰이고, 해는 금세 져버린다. 그럼에도 주말이 되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마음보다 습관이 앞선다. 수십 년을 반복한 행동처럼, 주말이라는 신호만으로도 나는 시골로 향하는 길 위에 올라 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도시와는 전혀 다르다. 논은 모두 잠들어 있고, 나무들은 잎 하나 없이 서 있다. 여름엔 생명으로 가득 차 있던 길이 겨울엔 비워진 페이지처럼 조용하다. 이 고요함이 싫지 않다. 오히려 마음을 정리해 주는 느낌이 든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빼고, 라디오를 끄고, 엔진 소리만 들으며 달린다.

시골집에 도착하면 늘 같은 장면이 펼쳐진다. 대문은 반쯤 닫혀 있고, 마당엔 어머니가 전날 쓸어놓은 빗자루 자국이 남아 있다. 차 소리가 들리면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어머니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신다. 예전처럼 반가움이 얼굴에 확 드러나지는 않지만, 눈빛에는 분명한 안도가 담겨 있다.
“왔냐.”
짧은 한마디. 그 안에 기다림과 확인과 안심이 모두 들어 있다.

어머니는 올해 여든다섯이다. 숫자로만 보면 많은 것이 멀어진 나이다. 하지만 여전히 스스로 밥을 해 드시고, 집 안을 정리하고, 마당을 둘러보신다. 다만 움직임이 느려졌고, 기억의 속도가 예전 같지 않을 뿐이다. 같은 이야기를 두 번, 세 번 하시기도 하고, 방금 꺼낸 말을 잊으시기도 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굳이 바로잡지 않는다. 중요한 건 사실이 아니라,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집 안에 들어서면 겨울 특유의 냄새가 난다. 오래된 나무와 연탄, 그리고 어머니가 지켜온 시간의 냄새. 난로 위에는 늘 주전자가 올라가 있고, 물은 끓고 있다. 어머니는 “춥지?”라는 말을 하며 내 외투를 먼저 걱정하신다. 나는 이미 성인이 된 지 오래지만, 어머니에게 나는 여전히 보호의 대상이다.

점심은 간단하다. 김치찌개나 된장국, 때로는 전날 남은 반찬. 화려함은 없지만, 어머니의 손길이 닿은 음식은 묘하게 마음을 편하게 한다.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며, 우리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굳이 말을 채우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흐른다.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 난로에서 나는 작은 소리, 밖에서 부는 바람 소리가 대화를 대신한다.

오후가 되면 어머니는 마당이나 창고를 한 번 더 둘러보신다. 나는 그 뒤를 따라가며 혹시 위험한 것은 없는지 살핀다. 예전에는 어머니가 나를 챙겼는데, 이제는 역할이 바뀌었다는 사실이 문득문득 실감 난다. 하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본인이 집의 주인이라는 태도를 놓지 않으신다. “이건 내가 할 수 있다”, “저건 아직 괜찮다”라는 말 속에는 자존심과 생존의지가 함께 담겨 있다.

해가 기울면 어머니는 유난히 말수가 늘어난다. 젊은 시절 이야기, 이미 여러 번 들은 이야기, 지나간 사람들 이야기. 나는 그 이야기를 새것처럼 듣는다. 어쩌면 이야기는 기억을 지키는 마지막 방법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말해줄 수 있을 때, 그 기억은 아직 살아 있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웃고, 때로는 질문을 덧붙인다.

밤이 되면 시골은 더 조용해진다. 별빛이 또렷하고, 개 짖는 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어머니는 이불을 펴며 “오늘은 자고 가라”고 하신다. 나는 다음 날을 핑계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 말에는 늘 약간의 미안함이 섞여 있다. 떠나는 순간, 어머니의 하루는 다시 혼자가 되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는 새벽부터 일어나 계신다. 내가 깨기도 전에 밥이 되어 있고, 반찬이 놓여 있다. 그 모습이 고맙고, 또 마음 한편이 서늘해진다. 언제까지 이 장면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천천히 움직인다. 시간을 늘리듯, 순간을 붙잡듯.

떠날 시간이 되면 어머니는 대문 앞까지 나오신다. “조심히 가라”는 말과 함께 손을 흔드신다. 차를 몰고 나가면서 백미러를 본다. 점점 작아지는 어머니의 모습이 겨울 풍경 속으로 스며든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또 다음 주말을 떠올린다.

겨울이라 집에 할 일은 없지만, 습관처럼 내려가는 시골집. 어쩌면 그 습관이 나를 지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든다섯 어머니와의 주말 동행은 거창한 사건도, 특별한 깨달음도 없다. 다만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붙잡아 두고 싶은 장면들이 있다. 그 장면들이 모여, 나의 겨울을 따뜻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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