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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몸보신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왜 또

by 수미소

​“왜 또 왔노. 피곤한데 집에서 좀 쉬지.” 어머니는 오늘도 그렇게 시작하셨다. 나는 오늘도 효자를 흉내 냈고, 어머니는 그 흉내를 조용히 받아주셨다. 일요일 아침. 어제 마무리 못한 일이 있어 다시 시골로 향했다. 도착하니, 어머니는 혼자서 참깨를 털고 계셨다. 싱크대 냄비에서는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동생 주려고 한 백숙은 국물도 없이 사라졌다. 닭장도 철거했다. 깨를 다 쪼아먹고, 방에 들어와 똥 싸고… 닭똥 치우다가 내가 먼저 죽게 생겼다.”


​그 말이 귓가에 남아 있을 무렵, 어머니는 덤덤하게 덧붙이셨다.


​“그래도 혼자 있으니 몸보신은 해야지. 복날인데.”


​아들 걱정인지, 아들 눈치인지 모를 말투였다.


​그런데 그날 아침에 온다던 동생은 오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 옆에서 묵묵히 깨를 털었다.


​“어제 백숙도 챙겨갔잖아요? 바쁘면 좀 부르지 그랬어요.”


“부르긴 했지. 근데 친구들이랑 술을 많이 마셔서 몸이 안 일어난다더라.”


​잠깐의 정적. 어머니는 삽을 들고 깨를 옮기며 툭 던지셨다.


​“몸보신하라고 줬더니, 친구들 불러서 안주 좋다며 마셨다카더라. 도대체 얼마를 마셨는지 몸만 더 축났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큰애, 넌 배 안 고프냐?”


​언제부턴가 나는 늘 이렇게 답했다.


​“아침에 뭐 좀 갈아먹고 왔어요.”


​어머니는 웃으셨다.


​“큰애는 뭘 넣어서 갈아 먹는지 모르겠다. 금덩어리를 갈아 먹는지, 산삼을 갈아 먹는지…”


​웃기면서도 걱정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사실은 그냥, 밥을 먹고 와야 어머니가 고등어나 된장찌개를 새로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한참 뒤, 동생이 슬그머니 나타났다. 말없이 일손을 거들더니 어머니 옆에 쪼그리고 앉아 깨를 골랐다. 나는 새벽부터 일해 온 터라 온몸이 축축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늦게 온 동생에게 더 따뜻하게 말했다.


​“오긴 왔네. 덥지? 물 한 컵 마셔라.”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막내는… 다르구나. 그러나 말은 하지 않았다. 막내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오래된 이끼처럼 단단했으니까.


​작업을 마치고 시내 집에서 씻겠다고 말씀드렸다. 아침 8시. 도시는 이미 하루를 시작했겠지만, 우리 주말은 흙과 백숙, 참깨로 채워지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면 아내는 아마 아직 자고 있을 것이다. 주말 늦잠은 그녀의 유일한 사치. 그동안 얼마나 아등바등 살아왔는지 손끝에서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조용히 씻는다. 물소리에 아내가 깰까 문을 살짝 닫았지만, 아내는 깼다.


​“뭐, 또 혼자 가서 다 하고 왔나? 도련님은 좀 모시고 다니라니까.”


“아니야. 오늘은 같이 했어.”


​아내는 단번에 믿지 않는다.


​“거짓말 말고.”


​나는 그냥 웃는다. 그리고 조용히 아침 식탁에 앉는다.


​“깨는 다 털었나?”


“응. 닭도 한 마리 털었다.”


​그 주말도 그렇게 지나갔다. 닭백숙은 몸보신 음식이 아니라, 어머니 마음의 핑계였고, 동생의 술안주였고, 나에겐 조용한 농담 한 조각이었다.


나는 오늘도 효자를 흉내 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흉내 속에 오래오래 함께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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