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8화. 잘 계시냐는 말 대신

효자흉내 내는 아들의 작은 소망

by 수미소




​오늘도 또 다른 토요일의 전날이다. 이번에는 뭘 해갈까. 다른 주말처럼 이것저것 생각해 본다. 그 말 한마디조차 쉽지 않은 날들이 있다. “잘 계시죠, 어머니.” 전화기 앞에서 며칠을 망설이다 결국 아무 말도 못 한 채 하루를 넘긴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그 말을 꺼낼 용기가 없어서다.

​요즘은 형제들도 뜸하다. 가끔 가족 단톡방에 “어머니 건강은 어떠셔?”라는 메시지가 올라오지만 정작 내려오는 이는 거의 없다. 다들 각자의 삶이 버겁다는 걸 안다. 그래서 누구도 탓할 수 없다. 다만, 장남이라는 이름 하나로 나는 주말마다 반찬을 싸 들고 시골로 향한다.

​금요일 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장을 본다. 호박죽, 카레라이스, 미역국… 어머니가 좋아하실 만한 것들을 준비해 김이 빠지지 않게 식혀 담는다. 내일은 비가 온다 했지. 우비를 챙기고, 갈아입을 옷을 넣고, 쌀 한 포대를 트렁크에 싣는다.


​토요일 새벽. 아직 어두운 하늘을 뚫고 달려 시골 마을에 도착하면 작은 마당 앞에 어머니가 서 계신다. 한 손엔 삽자루, 한 손엔 옅은 미소.

​“아이고, 언제 왔니… 얼굴이 더 까매졌네.”

​그 한마디에 내가 힘들다는 말은 또다시 삼켜진다.

​가스레인지 위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찬장엔 빈 반찬통들이 말없이 나를 반긴다. 그 통을 새 음식으로 채우는 순간, 나는 누군가의 아들이자 누군가의 요리사가 된다.

​밭에 나가면 고추가 벌써 빨갛게 익어 있다. 작년보다 밭은 줄었지만 어머니는 일부러 조금 남겨두셨다.

​“놀기만 하면 몸이 굳는다. 좀 움직여야지.”

​그 말 속엔,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이 함께 뿌려져 있다는 걸 나는 안다.

​점심을 먹고 잠시 낮잠을 주무시는 어머니 옆, 나는 방 한구석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여긴 시간이 느리다. 밥 짓는 냄새와 풀벌레 소리가 사람을 살게 한다.

​어머니는 묻지 않으신다. 돈은 괜찮냐, 회사는 다닐 만하냐, 아이들은 잘 크냐— 그런 질문 대신 김치 한 포기를 더 챙겨주시고 “운전 조심해라” 그 한마디만 남기신다.

​돌아오는 길. 안전한 곳에 차를 세우고 형제들 단톡방에 사진 한 장을 올린다.

​“어머니, 오늘 많이 좋아지셨어.”

​그러면 누군가 답한다.

​“야, 수고했다.”

​그 말 한 줄에 오늘의 할 일을 다 한 다 한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진다.




​잘 계시냐는 말 대신, 나는 매주 주말 시골로 향한다. 어머니의 굽은 허리로는 해치우기 힘든 일들을 내가 먼저 줄여놓으려는 마음에서다. 그러나 어머니는 또 다른 일을 찾아 주말에 오는 아들의 손을 붙잡을 것이다.


서로의 일을 줄여주기 위해 기다리는 이 주말이 오래도록 계속되기만을 바란다. 그리고 나는, 다음 주 토요일을 또 기다린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7화​17화. 그것도 안 하면, 죽은 거지 –산 밑 텃밭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