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흉내 내는 아들의 작은소망
또 다른 토요일의 전날이다. 이번에는 무엇을 해갈까. 늘 그렇듯, 나는 생각부터 한다. 그런데 이번 주는 조금 다르다. 며칠 전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계속 마음에 맴돌았다.
“그것도 안 하면, 죽은 거지.”
요즘은 금요일 저녁이면 아내가 퇴근길에 들고 오는 봉지를 먼저 본다. 그날 봉지 안에는 감자샐러드와 계란말이가 들어 있었다. ‘이거면 내일 반찬은 준비 안 해도 되겠군.’ 그 순간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는 그 반찬으로 저녁을 먹었다. 하지만 일부는 어머니 댁에 가져가기 위해 조심스레 남겨두었다.
다음 날 새벽, 잠결에 눈을 뜨고 조용히 반찬을 가방에 챙겼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시간, 익숙한 시골길로 차를 몰았다. 그런데 도착한 어머니 댁, 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순간 멈칫했다. 늘 반쯤 열려 있어야 할 그 문이 닫혀 있는 풍경이 왠지 불길했다.
방 안에 들어서니 어머니는 이불을 덮은 채 누워 계셨다. 조심스럽게 깨우자, 작게 고개를 돌리며 말씀하셨다.
“몸이 좀 안 좋아서…”
알고 보니 며칠 전, 산 밑 텃밭에 다녀오셨다고 했다. 보행기를 끌고 오르막길을 세 번이나 오르내리며 양파를 뽑아 나르셨단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머릿속이 확 끓어올랐다.
“엄마, 그렇게 하시면 안 되잖아요. 이런 날씨에 혼자 보행기 끌고 그 길을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쓰러지시면 어쩌려고요!”
그런데 어머니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담담히 말씀하셨다.
“자식한테 일 시키는 게 쉬운 줄 아나. 나는 갈 힘이 있어서 간 거다. 그것도 안 하면 뭐 하노. 가만히 있으면 그건 사는 게 아이다. 죽은 거지.”
그 말에 나는 입을 닫았다. 분명 화가 났는데, 또한 맞는 말이었다. 숨을 쉰다고 사는 게 아니라는 말. 일하고, 움직이고, 누군가의 손길이 되어서 살아가는 것. 그게 어머니가 말하는 ‘사는 이유’였다.
어머니는 조용히 일어나 내가 가져온 감자샐러드와 계란말이를 드셨다.
“며느리 음식 솜씨가 참 좋다.”
그건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아내가 직접 만든 것도 아니었지만, 어머니가 맛있게 드신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식사 후, 어머니가 다녀오셨다는 텃밭이 궁금해져 차를 몰고 산 밑으로 향했다. 내 눈에도 꽤 가파른 오르막이었다. 그 길을 보행기를 밀며 오르내리셨다니. 그 힘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아파도 참고, 지쳐도 끝까지 해내는 사람. 그게 어머니였다.
텃밭 한쪽에는 양파 꾸러미가 차곡차곡 묶여 있었다.
“이건 서울 애들 거, 이건 동생 거, 이건 네 거.”
우리 집에도 양파가 이미 많았고, 둘 공간조차 부족했지만 그 마음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나는 오늘도 ‘효자인 척’하며 양파 꾸러미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식탁 위엔 조용히 준비해 둔 해열제와 근육통약이 놓여 있었다. 말은 못 했지만, 마음만은 전해졌기를 바랐다. 어머니는, 내가 돌아간 후 또다시 보행기를 몰고 밭으로 가실 것이다.
이제 우리가 부모님을 걱정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일지도 모른다. 다음 세대는 자기 방식대로 부모를 모실 것이다. 그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탓할 일은 아니다. 세월은 흐르고, 사람도 그렇게 따라 흘러가면 되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효자의 흉내를 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흉내를 담담하게 받아들이셨다. 다만 이번 주말, 그 흉내 뒤에는 “그것도 안 하면, 죽은 거지”라는 말이 오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