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흉내 내는 아들의 작은고백
또 다른 토요일의 전날이다. 이번에는 무엇을 해갈까. 늘 그렇듯, 나는 생각부터 한다. 금요일이 다시 왔다. 아침부터 머릿속은 분주했다. ‘내일은 뭘 가져가야 어머니가 좋아하실까.’ 어머니는 예전부터 동네에서 손맛 좋기로 소문난 분이셨다.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 입맛도, 손맛도 예전 같지 않다.
이제는 웬만한 반찬을 들고 가도 크게 반응이 없으시다. 그래서 이번엔 좀 특별하게 준비했다. 새벽시장 식육점에서 싱싱한 육회를 공수했다. 어머니가 유독 좋아하시던 음식이었다.
육회 한 접시를 들고 시골집에 도착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평소와 달리 반가운 인사 없이 조용히 계셨다. 육회 몇 점을 드신 뒤, 슬쩍 이야기를 꺼내셨다. 주제는 역시나 어머니의 라이벌, 외숙모님이었다.
외숙모님이 최근에 새 보행기를 장만하셨단다. 경로당 앞 가장자리에 그 보행기를 유유히 세워두는 모습부터 남달랐다.
“내가 괜찮다 괜찮다 해도, 애들이 이래 쏴줬네~ 하면서 자랑을 하더라.”
“이 보행기 얼마나 잘 나가는지 몰라요~ 핸들이 부드러워 어깨가 하나도 안 아파요~ 얼마나 튼튼한지 몰라요~”
그 자랑을 들으며 어머니는 웃으시다가도 슬쩍 한마디 던지셨다.
“그렇게 잘 나가면 하늘로 날아가겠다. 조심하라, 하늘나라로 직행하겠다.”
경로당 어르신들이 폭소를 터뜨렸고,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 할망구, 남 자랑하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금요일이 흘렀고, 토요일 아침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도착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한숨을 쉰다.
“보행기가 말을 안 듣는다.”
잘 나간다던 보행기. 핸들은 뻑뻑하고, 너무 무겁고, 어깨가 아프다고 짜증을 내신다. 겉으론 별 이상이 없어 보여 같이 인터넷을 뒤져보자고 제안했다. 외숙모님 것보다 더 비싼 제품을 보여드려도 단칼에 거절. 비슷한 제품도 마음에 안 드신단다.
결국 외숙모님 댁까지 가서 직접 보행기 라벨을 사진 찍었다. 같은 제품을 찾아보았지만, 수입 업체가 달라 정확히 같은 모델은 찾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외사촌 형님께 전화를 걸어 어디서 샀는지 물었고, 어머니를 모시고 그 가게로 직접 가서 같은 제품을 똑같이 샀다.
어머니는 드디어 만족하신 듯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 표정 하나면 모든 수고가 보상받는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집에는 이미 보행기가 세 대나 더 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거의 매년 한 대씩 보행기가 늘어난다.
어르신들의 기력은 한 해 한 해 달라진다. 작년에 몰던 것도 올해는 무겁고 힘겹게 느껴진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힘들고, 어제보다 오늘이 더 아프다.
그건 보행기의 문제가 아니다. 세월이 만든 작고 느린 변화들일 뿐이다. 나는 그게 그저 마음이 아프다.
보행기가 몇 대 있으면 어떤가. 어머니가 오늘 하루 기분이 좋으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는 마당 한쪽 구석에 세워둔 오래된 보행기들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이거 당근마켓에 팔아라.”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5만 원부터 올려볼게요. 안 팔리면 내리죠.”
집으로 돌아가려 차에 오르던 순간, 어머니가 새로 산 보행기를 끌고 골목길을 올라가고 계셨다. 나는 창문을 내리고 물었다.
“어머니, 어디 가세요?”
뒤돌아보신 어머니는 약간 쑥스러운 얼굴로 말씀하셨다.
“밭에… 풀 뽑으러 간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알았어요. 더운데 조심하세요.”
시동을 걸고 방향을 돌리는 순간, 나는 알았다. 어머니가 향한 길은 텃밭이 아닌, 외숙모님 댁이 있는 방향이었다. 나는 오늘도 효자의 흉내를 냈고, 어머니는 오늘도 나를 자랑할 준비를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