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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어묵 카레와 길거리 골목 시장 자리 경쟁

효자흉내 내는 아들의 작은 소망

by 수미소



​또 다른 토요일의 전날이다. 이번엔 카레 냄새로 시작할 주말을 준비한다. 금요일 저녁, 냉장고 문을 열었다. 내일 가져갈 반찬거리가 없다. 그나마 양배추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것마저 없다.

​어머니 댁에 빈손으로 갈 순 없었다. 급히 쿠팡을 열어 식재료를 주문했다.

​“내일은 카레다.”

​고기 대신 어묵을 넣는, 나만의 레시피. 돼지고기를 잘 드시지 않는 어머니를 위해 어묵을 잘게 썰어 넣는 것이 핵심이다. 고기를 골라내야 하는 틀니 낀 어머니에겐 어묵이 가장 부드러운 고기였다.

​새벽, 눈을 떠보니 문 앞에 주문한 식재료가 조용히 도착해 있었다. 양파, 감자, 당근, 대파, 카레가루, 그리고 어묵. 불을 켜지 않은 부엌에서 조심스레 칼질을 시작했다. 불빛 대신 마음을 켰다. 어묵을 볶으며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이건 사랑의 조미료다.”

​어머니 댁에 도착하자 대문은 늘 그렇듯 열려 있었다. 어머니는 도로 가장자리를 빗자루로 쓸고 계셨다.

​“엄마 뭐 하세요?”

“쓰레기가 많아서. 청소 안 하면 어른들 다 넘어진다.”

​이 동네엔 젊은 사람이 없다. 동네 청소도, 골목 정리도 이제는 어머니 같은 이들의 몫이다.

​아침 식탁 위에 갓 만든 카레를 올리자 어머니는 한마디 던지셨다.

​“밥이나 먹자.”

​한 그릇을 뚝딱 비우셨다. “부드럽다”며 칭찬까지 곁들이셨다. 어묵을 넣은 카레라이스. 틀니에도 무리가 없고, 입맛에도 딱 좋단다. 오늘도 효자의 흉내는 성공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고추밭에 약을 치고, 참깨순을 정리하고, 감자를 캤다. 시골일에는 끝이 없다. 그 와중에도 어머니는 상추와 부추를 수북이 챙기셨다.

​“엄마, 오늘 또 시장 가세요?”

“그렇지. 내 자리 비우면 누가 앉을지 몰라.”

​시골 장터 골목 옆 도로. 할머니들은 각자 키운 농작물을 늘어놓고 판다. 자리에는 고정석이 있고, 보이지 않는 서열이 있다. 누가 먼저 앉았는지, 누가 원래 어디 앉는지. 이 작은 골목엔 은근한 규칙이 있다.

​그런데 오늘, 문제가 생겼다. 어머니 자리에 외숙모가 앉아 계셨다.

​“또 내 옆에 와 앉았네. 사람 많은 쪽에 가면 더 잘 팔린다면서.”

​외숙모는 부추 꾸러미를 재빠르게 펼치며 말했다.

​“나 요즘 상추는 안 가져와. 젊은 사람들은 다 포장된 것만 사더라.”

​어머니는 피식 웃으며 손으로 상추 다발을 넓게 펼치셨다.

​“그래도 우리는 손으로 뽑은 게 맛있다.”

​시장은 은근한 경쟁의 장이다. 누가 더 많이 팔았는지, 누구 채소가 더 싱싱했는지.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외숙모의 부추를 집어 들며 말했다.

​“이거 너무 질기다. 이건 못 먹겠네.”

​외숙모는 발끈했다.

​“아니야, 질긴 게 아니라 찰진 거야!”

​어머니는 그 모습을 보고 작게 웃으셨다.

​“지 잘 팔리면 괜히 질투하거든.”

​결국 두 분은 그 자리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주고받았다.

​“누가 더 많이 파는지 해 보자!”

“됐고! 나는 2천 원만 벌어도 한탕한 거다!”

​땡볕 아래 지나가던 동네 분이 아이스크림을 건넸다. 어머니는 한 입 베어 문 뒤 말씀하셨다.

​“이 더위에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다…”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

​“이제는 절대 안 나온다. 절대…”

​하지만 손은 다시 부추 꾸러미를 정리하고 있었다.

​장사는 잘 되지 않았다. 외숙모는 “만 원 벌었어!” 하며 으쓱했고, 어머니는 “나는 오천 원인데, 그래도 많이 팔았네” 하셨다. 저녁 무렵, 파란 보행기에 남은 채소를 싣고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오셨다. 허리가 아프다고 하시면서도 내가 만든 어묵 카레를 또 한 그릇 뚝딱 비우셨다.


오늘 카레는 부드럽더라. 먹을수록 맛이 난다.”

​드라마 한 편을 보시다 리모컨도 끄지 않은 채 그대로 누워 스르르 잠드셨다. 허리춤 지갑엔 오늘 번 오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 고이 접혀 있었다. 나는 오늘도 효자의 흉내를 냈고, 어머니는 오늘도 나를 자랑할 준비를 하셨다. 그리고 주말이 되면, 나는 다시 아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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