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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장마비 속의 발걸음

by 수미소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눈을 뜬다. 시계는 새벽 5시 30분.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른 시간이지만, 우리 집에서는 늦은 편이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창밖으론 장마비가 조용히 내리고, 시골집 마당에도 빗줄기가 가득 깔린다. 그때, 금요일 저녁에 울린 어머니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큰애야, 비 많이 온다. 내일은 집에서 푹 쉬어라.”

​하지만 어머니가 눈만 뜨면 밭으로 향하시듯, 나 역시 주말이면 시골길로 향하는 발걸음을 쉽게 멈출 수 없다.

​도착한 집의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마당에는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방 안은 깜깜했다. 어머니는 깊이 주무시고 계셨다. 한 번은 너무 깊이 주무셔서 놀란 마음에 손을 코 밑에 대어 본 적이 있다. 그때 어머니는 슬며시 눈을 뜨시며 웃으셨다.

​“큰애야, 와 내 죽었는지 살았는지 보나?”

​그날 이후로, 나는 그 웃음을 오래 기억해왔다.

​오늘도 방문을 살짝 열어 침대 위의 어머니를 확인한 뒤, 부엌으로 가서 일어나시면 드실 수 있는 음식을 챙겨 놓았다. 그리고 다시 조용히 집 밖으로 나왔다. 맑은 날이면 밭으로 향했을 어머니의 발걸음을 오늘은 장마비가 멈춰 세웠다. 쉼 없이 돌아가던 어머니의 시간을 오늘 하루만큼은 비가 잠시 멈춰주었다.

​아마 오늘은 편안히 늦잠을 주무실 것이다. 그리고 일어나서 식탁 위의 음식을 보시며 “큰애가 다녀갔구나” 하실 것이다. 잠시 후, “비가 와서 채소들이 좋아하겠다”며 우산을 쓰고 밭을 한 번 둘러보실지도 모른다.


한여름 땡볕을 견뎌낸 채소들이 오랜만에 생기를 되찾는 것처럼, 어머니 또한 견뎌온 세월 속에서 자식들에게 빗물 같은 존재가 되어주셨다.

​돌아오는 길, 내 마음속엔 한 가지 소망이 남았다. 어머니의 삶의 마지막 발걸음이, 오늘처럼 편안히 주무시다 멈춰지기를. 나는 오늘도 효자 흉내를 내기 위해 빗속을 달렸다.


그리고 어머니는 세상 모르게 주무셨다. 장마비 소리에 잠든 어머니, 그 고요한 숨소리를 들으며 나는 알았다. 이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비가 그치면, 다시 햇빛이 들 테고 그 햇빛 속에서 또다시 어머니와의 주말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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