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토요일의 전날이다. 이번에는 무언가 예감이 들었다. 어머니가 혼자 참깨 수확을 시작하셨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새벽부터 차에 올라탔다.
해가 뜨기 전의 도로는 아직 어두웠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은 잔잔했지만 내 마음속은 마치 비상벨이 울리듯 조급했다.
‘깨를 베고 계시진 않을까…’
도착한 시간은 새벽 5시 반. 예감은 정확했다. 굽은 허리의 어머니가 밭에서 참깨를 베고, 어린이 보행기 같은 수레에 실어 마당까지 나르고 계셨다. 깨를 수확하고 옮기는 일은 성인 남성도 허리가 휘는 작업이다. 그걸 어머니가, 혼자서, 그 새벽에 하고 계셨다.
마당에는 깨줄기들이 ‘뻔짝뻔짝’ 부서지는 소리와 어머니의 거친 숨소리만 흐르고 있었다.
“엄마, 이걸 혼자 하고 있었어요?”
“어쩌겠노. 동생한테 전화했더니 어제 과음해서 도저히 몸이 못 일어난다더라.”
담담히 말하셨지만 말끝에는 서운함이 묻어났다. 나는 말없이 장갑을 끼고 깨밭에 앉았다. 깨를 베고, 옮기고, 남은 밑둥까지 뽑아 마무리했다. 더위 속에 눈앞이 노랗고 시야가 흐릿해지며 ‘이러다 더위에 쓰러지겠다’ 싶을 만큼 땀이 쏟아졌다.
잠시 물을 마시러 집 안에 들어갔다가 문득 익숙한 풍경 하나가 보이지 않는 걸 깨달았다. 닭장. 마당 한켠에 있어야 할 닭장이 사라져 있었다. 매번 나를 반기던 세 마리 닭도 보이지 않았다.
거실 쪽에서 한약 달이는 냄새가 났다. 싱크대 쪽 냄새가 대답을 대신했다. 뚜껑을 열자 토종닭 한 마리가 냄비 속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나는 문득 “닭이 세 마리였는데, 왜 하나만…?” 하고 물었다. 어머니께서는 요즘 너무 더워서 “어제 장날이라 동생 몸보신하라고 한 마리 샀다”고 하셨다.
“그럼 우리 닭들은 다 어디 갔노?”
“몰라. 그저께 대문이 열려 있었는데 괭이네기(들개)가 와서 잡아갔는지, 밖에 싸돌아다니다 집을 잃었는지… 암튼 애들이 없어졌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 말이 꼭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어머니와 나, 둘 다 알고 있었다. 며칠 전, 서울에 있는 누이에게 “닭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하소연하셨다더니 누이가 시골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닭 좀 처리해 달라”고 부탁했단다.
요즘은 닭 병균 문제로 다른 양계장에서 외부 닭을 받지 않는다. 결국, 어머니는… 스스로 정리하셨을 것이다.
닭장이 철거된 이유도 분명했다. 깨를 마당에서 말리면 닭들이 쪼아 먹는 것도 보기 싫고, 돌아다니면서 똥을 여기저기 싸대는 것도 싫으셨다.
“하루는 침대에서 자다 깼는데 닭 한 마리가 머리맡에서 자고 있더라. 나가라고 호통을 치니까 그놈이 뛰어나가다 신발장 앞에 똥을 한무더기 싸고 도망 갔다.”
“그걸 내가 다 치운다, 내가. 닭 똥 치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나?”
어머니는 짧은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 한숨의 무게를 안다.
결국, 어머니는 “닭들은 사라졌고, 시장서 사온 닭으로 백숙 끓이는 기라”라고 정리하셨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다만 점심 무렵 경로당에서 백숙 냄새가 진동한다면 조금은 의심해볼 일이다.
그날 아침, 나는 흙을 묻히며 일했지만 어머니는 마음의 먼지를 오래전부터 털고 계셨다. 깨를 먹고 뛰어다니며 똥 싸던 닭들이 어머니 눈에 곱게 보였을 리 없다. 몇 달을 허리 굽혀 모종 심고, 풀 뽑고, 약 치고, 물 주며 기른 깨였다.
그 정성의 시간을 닭 몇 마리가 망가뜨렸다면, 집 나간 닭들을 찾고 싶은 마음은 어머니에게 없다. 그 닭들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고, 그래서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 나는 오늘도 효자를 흉내 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흉내보다 먼저 깨어 자신의 하루를 묵묵히 살아내고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