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결심이 아니라 누적이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도대체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 하루하루 보내도 괜찮은 걸까.
남들은 이미 한 발 앞에 가 있는 것 같고,
나만 제자리에서 서성이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뒤처진 건 아닐까,
이미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이런 마음이 드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자연스럽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상태로 산다.
해야 할 공부,
해야 할 일,
해야 할 선택.
그 목록은 줄어들지 않고,
시간은 계속 앞으로 간다.
그래서 가만히 있으면
더 조급해진다.
움직이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고,
지금 이 속도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은 불안이 밀려온다.
“나만 이렇게 처진 건가?”
“다들 각자의 길에서 뭔가를 만들어가고 있는데…”
“나도 한 발 더 나가야 하는데.”
이 조급함은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비교 속에서 살아가는 구조에서
너무 당연하게 생기는 마음이다.
특히 학창 시절에 대한 기억이
이럴 때마다 불쑥 올라온다.
그때 조금만 더 열심히 했더라면.
그때 조금만 더 참고 버텼더라면.
그때 한 번 더 도전했더라면.
우리는 과거의 어느 시점을 붙잡고
현재의 나를 평가한다.
그리고 그 평가에는 늘 아쉬움이 따라붙는다.
“그때 왜 그랬을까.”
“왜 나는 남들만큼 하지 못했을까.”
하지만 이 질문에는
중요한 전제가 하나 빠져 있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 시절의 나는
그 시절의 조건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비록 그 최선이
지금 기준에서는 부족해 보일지라도.
우리는 흔히 말한다.
“아무것도 안 한 시간 같았다”고.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그 시간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을까.
아무 고민도 없었을까.
아무 갈등도 없었을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었을 뿐,
마음속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했고,
이 길이 맞는지 끊임없이 물었고,
포기할지 말지 수없이 흔들렸다.
그 모든 고민은
어디로도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아무것도 안 한 시간’이라고 부를 뿐이다.
하지만 삶은
눈에 보이는 결과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은 고민한 만큼,
망설인 만큼,
부딪힌 만큼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된다.
그 시절에 했던 수많은 생각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다만 그 과정은
성적표에도 남지 않았고,
이력서에도 적히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너무 쉽게 평가절하한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었다는 이유로
그 시간을 통째로 지워버린다.
하지만 가만히 돌아보면
그 시간 덕분에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선택들이 있다.
예전 같았으면
함부로 결정했을 일들을
지금은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무작정 달려들던 일 앞에서
잠시 멈출 수 있게 되었다면,
그건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다.
조급함이 올라올 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 마음 자체는 나쁘지 않다.
문제는 그 마음이
자책으로 이어질 때다.
“왜 나는 아직 이 정도지.”
“왜 나는 이렇게 더딜까.”
이 질문은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보다는
지금의 나를 깎아내린다.
그리고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방식으로는
오래 움직일 수 없다.
변화는 늘
지금의 나를 부정하는 방식으로는 시작되지 않는다.
지금의 나를 인정하는 순간에
비로소 가능해진다.
아무것도 안 한 것처럼 보이는 시간에도
삶은 멈추지 않는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무언가가 쌓인다.
그게 바로 이 연재가 말하는
‘누적’이다.
누적은
늘 눈에 보이는 형태로만 쌓이지 않는다.
생각이 쌓이고,
기준이 쌓이고,
이전의 나와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쌓인다.
그래서 어느 날 문득
예전과는 다른 반응을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예전 같았으면 조급해했을 상황에서
조금은 버틸 수 있게 되고,
예전 같았으면 바로 포기했을 일 앞에서
한 번 더 고민하게 된다.
그 변화는 너무 작아서
스스로도 잘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말한다.
“아직도 그대로인 것 같아.”
하지만 정말 그대로일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들이
쌓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면,
그 하루하루는 결코 공백이 아니다.
우리는 늘
“이제 뭐를 해야 할까”를 묻는다.
하지만 가끔은
“이미 무엇을 지나왔을까”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 질문은
조급함을 조금 낮춰준다.
그리고 숨을 고를 공간을 만들어준다.
지금의 속도가
남들보다 느려 보일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속도보다 중요한 건
완전히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날에도
삶은 조용히 쌓이고 있다.
당신이 눈치채지 못한 방식으로,
하지만 분명하게.
오늘도 그대로인 것 같다면,
그건 실패의 증거가 아니다.
아직 결과로 드러나지 않은
누적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리고 그 누적은
언젠가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단단한 모습으로
드러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