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결심이 아니라 누적이다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은데
우리는 정확히 그 자리를 안다.
앞서 있지도, 뒤처져 있지도 않은
딱 그 중간쯤.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위치.
그런데 그 제자리는
누가 정해주는 걸까.
정말로 객관적인 위치가 존재하는 걸까.
아니면
내 생각이 임의로 선을 긋고
그 안에 나를 세워둔 걸까.
어제와 오늘이 비슷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쉽게 말한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어.”
오늘도 일어나고,
오늘도 하루를 보내고,
오늘도 다시 밤이 왔다고.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은 날들.
그 반복이 곧 제자리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반복은 너무 자연스럽다.
살아 있다는 건
대부분의 날이 비슷하게 흘러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별한 사건이 매일 일어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정상이다.
그런데 우리는
특별한 하루가 없으면
그날을 실패처럼 여긴다.
가끔 이런 생각도 든다.
오늘 이런 일이 있었고
내일은 뭔가 특별한 일이 생기면
그때는 좀 나아진 기분이 들까.
내일이 오늘과 다르면
그제야 앞으로 간 것처럼 느껴질까.
그래서 우리는
내일을 은근히 기다린다.
오늘을 통과 지점처럼 대한다.
하지만 내일의 특별함이
정말 나를 증명해줄까.
하루의 가치를
사건으로만 판단하는 순간,
평범한 날들은
모두 의미를 잃는다.
그렇게 많은 날들이
스스로에게서 탈락된다.
제자리에 있다는 감각은
사실 위치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같은 자리는
정체가 되기도 하고
과정이 되기도 한다.
그 판단을
결국 내가 한다는 사실이
조용히 무겁게 다가온다.
흐르는 시냇물을 떠올려본다.
시냇물은
매 순간 같은 자리를 지나는 것처럼 보인다.
비슷한 소리,
비슷한 흐름.
하지만 그 물은
단 한 번도
같은 물이 아니다.
멈춰 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그저 흐른다.
사람의 하루도
그와 닮아 있다.
겉으로 보면
어제와 오늘이 비슷하지만,
그 안에 담긴 생각과 감정은
같지 않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같은 자리에 서 있어도
같은 사람이 아니다.
그 차이는 작아서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자주
더 나은 자리를 상상한다.
지금보다 앞선 자리,
지금보다 인정받는 자리.
하지만 그 ‘더 나음’은
대개 비교에서 태어난다.
그래서 끝이 없다.
한 단계 올라가면
다음 기준이 나타난다.
제자리는 계속 뒤로 밀린다.
그러다 보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여기까지 버텨온 시간,
무너지지 않고 지나온 날들,
아무 일 없어 보였던
수많은 하루들.
그 모든 것이
당연해진다.
어쩌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충분한 사건일지도 모른다.
숨을 쉬고,
하루를 견디고,
다시 밤을 맞이하는 일.
그건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작품처럼
완성되어 있는 장면일지도 모른다.
제자리에 있다는 느낌이 들 때,
그 감정이 틀렸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 자리를 누가 규정했는지
조용히 생각해보게 된다.
남들이 만든 기준인지,
아니면
내가 나를 몰아넣은 판단인지.
흐르는 것을
멈춰 세워 놓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너무 가혹한 해석일지도 모른다.
흐르고 있다면
이미 충분하다.
어디로 가는지
지금은 몰라도 된다.
오늘이 어제 같다고 느껴지는 밤에도
삶은 흘러가고 있다.
눈에 띄지 않게,
소리 없이.
그 흐름 속에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하루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로
이 자리에 서 있는 것.
그 차이를
오늘은 조금만
허락해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