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결심이 아니라 누적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 날이 있다.
일정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완전히 쉰 것도 아닌데
막상 남은 기억이 없다.
그런 날은
하루가 통째로 빠져나간 것처럼 느껴진다.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고
그날을 끝까지 살았는데
왜 이렇게 공허할까.
분명 시간을 썼는데
쓴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을 실패한 날처럼 취급한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했어.”
이 말은
사실과 다를 때가 많다.
아무것도 안 한 날은
거의 없다.
다만
눈에 띄는 일이 없었을 뿐이다.
성과로 불릴 만한 장면이
없었을 뿐이다.
특히 30대에 들어서면
‘아무것도 하지 않음’은
쉽게 허용되지 않는다.
몸은 멈춰 있어도
머릿속은 가만두지 않는다.
동기들의 근황,
누군가의 승진 소식,
어디선가 들려오는 성공 이야기들.
그 조각들이 스쳐 갈 때마다
가만히 있는 나의 하루는
괜히 비어 보인다.
남들은 저만치 앞서 가는 것 같은데
나만 멈춰 서 있는 기분.
오늘 하루를 이렇게 보내도
정말 괜찮은 걸까.
대답 없는 질문을
혼자서 반복한다.
우리는 하루를
기억으로 평가한다.
기억에 남지 않으면
그날은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날은
생각보다 드물다.
대부분의 날은
비슷하게 흘러가고
서로 섞여 흐릿해진다.
그게 오히려
삶의 기본 상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 날에는
이상하게도
생각이 많았던 경우가 많다.
결정을 미뤘고,
쉽게 결론 내리지 않았고,
한 생각을 오래 붙잡고 있었다.
밖에서 보면
정지된 시간처럼 보이지만
안에서는
여러 갈래의 고민이
겹쳐 지나간다.
그런 날의 시간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스스로도
그 가치를 축소한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없는 것처럼 취급한다.
하지만 삶의 방향을 바꾸는 많은 순간은
바로 그런 날들에서
조용히 시작된다.
어떤 결심은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오래 미뤄온 생각이
눈에 띄지 않는 시간 속에서
천천히 무르익다가
어느 날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그 전까지의 시간은
겉으로 보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그 시간을 쉽게 지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이
유독 불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날이 멈춤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멈춤을
후퇴와 비슷하게 여긴다.
그래서 가만히 있는 자신을
괜히 의심한다.
뒤처진 건 아닐까,
게을러진 건 아닐까.
하지만 모든 멈춤이
같은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다.
움직이기 위해 멈춘 날과
포기해서 멈춘 날은 다르다.
그 차이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오해가 생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에는
감정이 더 또렷해질 때가 있다.
평소에는 지나쳤던 피로,
묻어두었던 마음,
이상하게 오래 남는 생각들.
그날은
그것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그래서 불편하고,
그래서 더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감정들은
삶이 멈추지 않았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아무 느낌도 없는 날보다
차라리 더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 신호를
우리는 자주
잡음처럼 지워버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이
연달아 이어지면
스스로를 더 의심하게 된다.
나는 지금 어디쯤일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그 질문은
답을 찾기 위해서라기보다
불안을 확인하기 위해
되풀이된다.
하지만 그 질문이
계속 떠오른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 완전히 방향을 잃지는 않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완전히 멈춘 사람은
그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흘러가 버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은
기록으로 남기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을 쉽게 지운다.
하지만 지워진 날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있다.
눈에 띄지 않았을 뿐
사라진 적은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에도
시간은 흐르고
나는 그 안에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그날은 완전히 빈 날은 아니다.
존재했다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는다.
오늘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 하루는
이미 나를 한 번 지나갔다.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말로 설명되지 않는 쪽으로.
그리고 그런 날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조용히 떠받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