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글을 맺을 때는 희망찬 기조를 담는 것이 나름의 규칙이다. 미래가 보다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이 글은 "잘 모르겠다."로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 글을 쓰다 보면 뭔가 알게 될 수도 있지만, 지금 내 마음은 답답함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무언가 희망에 도달한 긍정적인 결론을 피하고 싶어서 스스로 실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를 어떻게 달래줄 수 있을까.
회사생활을 그만두고 20개월 정도가 흘렀다. 중간중간 소일거리 몇 가지와 독립출판, 워크숍 등을 진행했지만 딱히 직업이라 지칭할만한 규칙적인 수입활동은 없었다. 쉼을 선택한 한 해는 회복의 시기로 여겼기에 큰 부담은 없었다. 1년 동안 의도한 대로 활동한 덕에 몸과 마음을 많이 회복시킬 수 있었다. 1년이 지나자 '아 이제는 무언가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위화감이 들기 시작했다. 먼저는 프리랜서로 활동할지 아니면 다시 회사로 돌아갈지부터 고민이 되었다. 프리랜서로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까 기웃거렸지만 쉽사리 길이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역량의 제약과 부족함만 두드러지고 어떻게 활용해 수익을 창출해야 할지는 막막함이 앞섰다. 프리랜서의 삶을 선택하기에 유리한 대표적인 디자인, 영상, 개발, 마케팅과 같은 기술은 내 강점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회사로 돌아가는 것도 쉽게 길이 열리는 것도 아니었다. 한창 일을 할 때는 업무능력에 자신감도 있었고 대기업으로의 이직 최종합격 경험도 있었기에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2년간의 공백, 변변찮은 학벌, 부족한 대외활동, 운전면허와 중등정교사 자격증 외에는 내세울 것이 없는 나는 채용시장에서 매력적인 구직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깨달았다.
별 걱정 없이 쉼을 누릴 때는 몰랐던 불안이 서서히 찾아왔다. "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용한 존재일까? 이 시대에 내가 충족시킬 수 있는 필요는 무엇일까? 나의 가치는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조금은 차갑고 비판적인 질문들이 연이어 떠올랐다. 하지만 정작 그 답을 마주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용기와 결단은 앞섰지만 실천과 훈련의 과정이 그만큼 뒤따르지 않았다. 생각에 머무르는 건 편안했지만 행동으로 옮길 때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변화의 부담이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그러다 보니 질문만 쌓여가고 답은 미루기 일쑤였다. 경험상, 삶 속에서 물음표가 많이 쌓이면 어김없이 부대끼는 일이 생기곤 했는데,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었다. 문제를 제기한 것도 나고, 해결해야 할 사람도 나 자신이었다. 그러니 답을 찾지 못한 채 계속 질문만 쌓이는 상황이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내가 나를 지치게 하니 스스로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상태였다.
이렇게까지 털어놓고 보니 역시 이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는 실마리도 거기 있었다. 계속해서 물음표를 쌓기보다는 느낌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어도 답이 없는 질문은 생각으로만 씨름하지말고 그냥 해야 한다. 인내와 절제를 가지고 실천에 옮긴 후 이어지는 삶의 결과값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한다. 삶을 살아갈 때 마주하는 수많은 문제는 일종의 문제은행형 문제집과 사실 비슷한 맥을 가진다. 풀지 않으면 정답은커녕 오답도 만들어 볼 수 없다. 문제를 마주하면 처음부터 모두 정답을 도출하겠다 마음먹고 달려들지만 그 시도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우선 문제를 마주해 찍든지 무식하게 달려들든 값을 만들어야 한다. 뒤이어 오는 수많은 오답을 담담히 마주하고, 꾸준히 오류를 지워나가야 비로소 순수한 답을 찾아내는 방법을 배운다. 내가 풀어내야 할 문제의 총합이 내 인생 범위고, 그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내 삶의 방식인 셈이다.
여전히 마주한 수많은 문제 앞에 나는 막연하다. 어느 것은 어렴풋이 알겠지만, 또 어느 것은 여전히 모르겠다. 그런데 틀리면 또 어떤가. 채점의 시간이 지나면 오답을 확인하고, 왜 틀렸는지를 점검한 후에 또 다음 장의 문제 앞에 서면 된다. 인생은 정해진 점수로 사는 결과값이 아닌 문제를 푸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이제서야 얼추 알겠다. 그러니 답답한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는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조금은 즐겨보자고 다독여보는 것이 최선이다. 몰라도 괜찮다고, 틀려도 괜찮다고. 어차피 계속 문제는 마주하게 될 터이니 말이다. 이제, 내 앞에 있는 어려운 문제들을 마주한다. 그리고 조용히 말해본다.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