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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진 Jul 15. 2024

'그냥 쉬는' 청년이라니 (1)

그냥 쉬는 청년의 이유 있는 일 얘기

“원하는 일자리 없어”…‘그냥 쉬는’ 2030 청년 70만명 육박 / 동아일보(2024.07.11)

고용률 최고라는데…'그냥 쉬는' 청년 40만명 / 한국경제(2024.07.10)

고용 지표 둔화…‘그냥 쉬는’ 청년 68만명 / 매일경제(2024.07.12)


 최근 들어 부쩍 눈에 밟히는 뉴스기사의 제목들이다. 내 기억으로는 약 1년 전부터 '그냥 쉬는' 청년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게 매체에 실리기 시작했다. 1년도 훌쩍 넘긴 키워드가 일주일 이내에 여전히 이렇게 많이 기사화 된다는 것이라면 어느 정도 무게감 있는 사회문제라는 신호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사실 이 단어가 유난히 눈에 밟히는 이유는 그 무렵 내가 '그냥 쉬는'청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년 반 전 나는 5년간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를 했다. 마냥 짧지 않은 5년의 기간이었지만 홀가분하게 회사를 떠났다. 가까이는 부모님 그리고 선후배 친구의 우려부터, 내가 예상한 나의 커리어맵과는 전혀 다른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이직을 위한 퇴사가 아니라 멈춤 그 자체를 위해 퇴사를 강행했다.


 조직에서 일을 하던 마지막 해의 사정은 이랬다.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는 과정 속 상부의 비전제시가 상당히 불분명해 반년동안 사업의 방향이 수없이 뒤집혔다. 나는 PM역할을 맡아 전체 사업방향을 구체화하고 함께 일하는 팀원들을 독려하고 목적에 맞춘 과업을 제시해야 했다. 하지만 전체 방향성이 뒤집힐 때마다 다른 방향의 과업을 요청해야 했고 그렇게 허공에 삽질하는 반년이 내게는 큰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그 와중에 해외출장이 잡혀 해외에 다녀오는 일이 생겼는데 항공사의 이슈로 경유 비행기를 놓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 때문에 24시간 동안 샤를드골 공항에서 노숙하며, 생돈 250만 원을 날리는 사건을 겪었다.(이후 현장, 전화, 이메일을 통해 항의해 봤지만 결국 이런저런 이유를 바탕으로 보상은 없었다.) 회사의 책임은 없었지만 회사의 일 때문에 다녀온 터라 괜히 회사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커졌다. 몸도 마음도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시점에 7년을 만났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되었다. 심정적으로 기댈 곳이 없어 허우적 대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불면증이 생겼고 회사에서는 날이 서있거나 무기력했다. 결정타는 아버지가 가족들 모르게 도박에 손을 대 재정을 크게 악화시키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어머니는 거의 쓰러지다시피 낙담하셨고 경제문제와 관계문제에 대한 해결은 거의 내 몫이 되었다. 회사에서의 고통이 집에 와서 배가 됐고 그 고통은 날로 더해갔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몰랐음에도 당장에 손에 잡히는 문제들을 눈물을 머금고 해결해 나갔다. 그리고 결국 나는 회사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최대한 간결하게 1년간의 이야기를 적어내려 보았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사건들이 별 것 아닐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괜스레 위축되어 적어 내려 간 부분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겹겹이 쌓인 문제들은 나를 압사시킬지도 모르는 생존의 문제였다. 그 생존을 향한 몸부림의 끝에서 퇴사를 선택했고 그렇게 소위 말하는 '그냥 쉬는' 청년을 선택했다. 누군가 '퇴사를 한다' 했을 때 이직이 아닌 이상 사람들은 많은 이유를 묻는다. 하지만 퇴사를 결정하기까지의 수많은 문제를 구구절절하게 설명한다한들 굳이 원하던 대답이 아닐 것이다. 안타깝게도 "왜 퇴사했어? 퇴사하고 뭐 할 거야?"는 질문에는 그 사람을 향한 책임도 애정도 그다지 크지 않은 경우를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냥 현상에 대한 호기심 또는 자신 또한 막연히 "퇴사하고 싶다."라는 마음 가운데 납득할만한 건더기를 찾을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묻는 자도 대답하는 자도 모두 무성의한 마음의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게 된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다양한 이유들은 '그냥'이라는 압축된 언어로 소실된다. '그냥 쉬는' 청년이라니. 세상만사 그냥이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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