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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진 Jul 16. 2024

'그냥 쉬는' 청년이라니 (2)

그냥 쉬는 청년의 이유 있는 일 얘기

그냥 - 3. 아무런 대가나 조건 또는 의미 따위가 없이. <표준국어대사전>


 그러니 '그냥'이라는 말은 가혹하다. 수많은 의미와 이유를 설명할 기운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왜 일을 하지 않고 있냐 물으면 힘겹게 눌어붙은 입술을 떼 "그냥"이라고 답할 수밖에. 누군가는 한 줄로 요약하여 말할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한 바닥으로 모자라 한 권의 책으로도 설명하는 게 힘겨울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효율이 너무 중요한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청년의 쉼을 '그냥'으로 단언하여 설명한다. 노동력의 손실 그로 인한 경기 성장 약화가 수많은 뉴스 기사의 논조다. 아무리 사회적 차원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이해와 공감이 쉽지 않다고 한들 '그냥'이라는 단어 선택은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속상한 마음에 되레 되묻고 싶은 것은 "왜 일을 하냐?"는 질문이다. 어떤 대답이 나올지는 각자가 다르겠지만 딱 그 이유만큼 쉬는 청년들도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미 붙여진 말과 현상을 조목조목 반문해 봤자 핑계와 변명이 되기 십상이다. 그런 면에서 내 주장이 초라할 수 있음에도 굳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나의 쉼이 그리고 언젠가 시작할 내 일이 '그냥'일 수는 없다 외치는 다짐이다. 지금의 쉼에 이유가 있듯 앞으로의 일에도 이유가 있고 그렇게 살아갈 삶에도 나름의 목적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그 누구도 '그냥'이라는 단어에 포괄될 만큼 의미 없는 인생은 없다. 이 세상 사람들의 숫자만큼 삶의 모양이 있고 그 삶의 모양만큼 의미가 있다. 요즘은 직장인으로서 살아갈 때는 몰랐던 다양한 삶의 모양을 만난다. 직장생활의 무게에 파묻혀 살아갈 때는 모든 사람들이 다 직장생활을 하는 줄 알았다. 사실 아닌 줄 알면서도 주위를 둘러볼 겨를이 없던 탓이다.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다양한 삶의 모양을 한 청년들은 누구도 '그냥' 존재하지 않았다.


 어느덧 흘러간 이립(而立)이 좀 지나서야 일과 삶에 대한 이립 없이 일할 수 없다는 나 사용법을 배운다. 한동안 일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읽고 쓰려고 한다. 누군가가 '그냥' 할 수 있는 일을 이렇게 어렵사리 풀어나가야 하는 것이 퍽 애석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 애석함에 아쉬워할 시기는 아니다. 이 모양 이 꼴의 나를 잘 인정하고 보다 씩씩하고 경쾌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잘 부둥켜안고 살아가는 것이 현명할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쉼의 의미는 되레 일의 의미를 되찾기 위함이다. '그냥' 쉬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일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를 되찾기 위한 숨 고르기다. 이제는 정말 내 페이스대로 아주 멀리까지 잘 달려보고자 스스로를 돌보고 훈련하는 시간이다.


나는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역사가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지를 밝히 알아야 했다. 인류의 위대한 사상들을 파악하고 씨름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또한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독자적인 판단을 내릴 줄 알아야 했다. 그때는 내가 뛰기 시작해야 할 때였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다른 선수들이 따라잡으려고 뒤쫓아오고 있었고 경기는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나는 재능은 있으나 지구력이 없어서 첫 바퀴만 잘 뛰고 마지막에는 패자로 끝나는 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고든 맥도날드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성장』 홍화옥(역), 김명희(역). IVP,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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