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뉴욕] 형의 죽음으로 미술관 경비원이 된 '패트릭 브링리' 이야기
내가 처음 누군가에게 국화꽃을 선물하게 된 때는 고작 열 살 때였다. 초등학교 같은 반 친구가 등굣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오전 9시, 1교시 수업시간이 되어도 비어 있는 한 자리. 담임 선생님이 침통한 표정으로 들어와서 그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어 학교에 올 수 없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친구가 입은 상처가 가벼운 찰과상이나 치료 가능한 타박상 정도일 거라 생각했다. 키가 큰 그 친구가 어느 때처럼 환한 미소로 뒷문을 열고 들어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OO이가 죽었대!"
학교 종례시간이 다가올 무렵, 한 친구가 교무실에서 들은 이야기를 반 아이들에게 소리치며 알렸다. 삽시간에 학급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누가 그런 말로 장난을 치겠냐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또래 친구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어제까지만 해도 우리와 웃으면서 대화했던 친구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가 없다는 것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그러나 그와 친한 친구였던 여자아이가 펑펑 울기 시작했고, 그녀를 달래주면서 현실을 직감하게 되었다. 그렇게 반 전체가 눈물바다가 되었다.
정말로 그 친구는 다음 날, 그다음 날에도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친구의 사고에 대한 전말은 아이들이 주워들은 이야기로 퍼즐처럼 완성되어 갔다. 그는 친한 친구의 생일날을 기념하여 깜짝 파티를 열어주기 위해서 문방구를 들를 계획이었다. 그래서 평소 등교하는 시간보다 1시간이나 일찍 집을 나섰다. 하지만 허둥지둥 집에서 나서다가 용돈이 든 지갑을 깜빡한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왔다 갔다 시간을 지체하게 된 그는 자전거를 끌고 다시 학교로 향했다. 이른 새벽이라 차들이 많지 않았고, 그는 급한 마음에 빠르게 길을 건넜다. 언덕길을 달려 내려오던 대형 트럭은 그를 보고 멈춰 서지 못했고, 그대로 그를 덮쳤다.
사고가 있은 후 3일째 되는 날, 학교 운동장으로 검정 리무진 한 대가 들어왔다. 아마도 장례절차의 마지막인 발인식이 진행되던 날이었던 것 같다. 담임 선생님은 학생들이 창문 밖을 내다보면서 친구를 배웅해 주라고 말했다. 친구의 유가족이 리무진에서 잠시 내려 우리 쪽을 바라보았다. 친구의 사진을 가슴에 품은 아버지와 머리에 흰색 나비리본을 꽂은 어머니가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곁에는 친구의 남동생이 영문을 모르는 듯한 얼굴로 형의 장례식에 참여하고 있었다. 리무진은 학교 운동장을 몇 바퀴 돌더니 교문 밖을 나갔고, 모래 위에는 원형의 바큇자국만이 남았다.
몇 주간, 그의 빈 책상 위에는 친구들이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을 매직펜으로 적어 나갔다. "하늘나라에 가서도 행복해", "너를 잊지 않을게" 등의 문장 위로 국화꽃이 하나둘씩 쌓여 올려졌다. 자신의 생일이었던 그 친구는 친한 친구에 대한 고마움과 죽음에 대한 미안함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와 함께 찍은 사진들을 학급 게시판에 붙였다. 그러다 한 학년이 끝나고 겨울 방학이 다가왔다. 모두들 진학하면서 학급이 바뀌었고, 자연스레 그의 책상도 없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게서도 그 친구에 대한 기억은 점점 흐릿해졌다.
얼마 전,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All the Beauty in the World)」 책을 인상 깊게 읽었다. 책의 50페이지까지는 미국 뉴욕에 위치한 대형 미술관에 대한 소개와 미술관 경비원으로서 자신의 업무를 하나씩 소개하는 장면들이 재미있어 책을 술술 넘겼다. 그러나 책의 3장 '위대한 그림은 거대한 바위처럼 보일 때가 있다'부터는 빠르게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작가 '브링리'는 형 '톰'의 죽음 때문에 경비원이 되었고 미술관에서 어머니가 얼마나 슬퍼했는지에 관해 썼기 때문이다.
성모와 아기 예수,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담은 「검은 방울새의 성모(Madonna of the Goldfinch)」 은 형 톰이 좋아하는 이탈리아 화가 라파엘로가 그린 회화작품이다. 불치병에 걸린 형의 병실에 걸어 둔 이 작품 속 ‘방울새’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의 운명을 상징한다. 한때는 거대하고 활기 넘기던 형의 몸이 현재는 온화하고 우아한 몸으로 야위어 있다. 병실에서 간호하던 어머니와 브링리는 "지금 우리가 바로 옛 거장들이 그렸던 그런 그림이잖아."라고 슬픔을 예술로 승화해 본다.
위대한 예술이 그렇게 쉽게 평범한 환경과 섞이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현상이었다. 그전까지는 늘 그 반대를 상상했기 때문이다. 특히 대학에 다닐 때는 대성당 벽에 그린 작품이나 고전이라 불리는 책으로 남긴 위대한 예술은 입을 헤 벌린 채 쳐다보는 것 혹은 눈을 크게 뜨고 뚫어져라 보아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수난극처럼 숭고한 이야기마저 가깝고 신비스럽지 않은 이야기, 바로 그 병실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숨김없이 표현하려는 시도와 달라 보이지 않았다. (책 63페이지)
형이 죽은 이후, 유가족들은 어린 시절 톰과 함께 온 가족이 즐겨 놀던 '필라델피아 미술관'을 찾는다. 이때 어머니는 인정사정없고, 아름다우면서도 심지어 더 진실되어 보이는 「무덤의 예수와 성모(Christ in the Tomb and the Virgin)」 그림 앞에 선다. 어깨가 흔들릴 정도로 눈물을 흘린 어머니를 본 브링리는 그녀가 그림 속에서 위안과 고통을 둘 다 느꼈으리라고 생각한다.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냉혹하고, 가슴을 저미는 바위 같은 현실에서 그는 앞으로 더는 움직이고 싶지 않은 감정을 느낀다. 그렇게 2008년 가을, 브링리는 자신이 살고 있는 뉴욕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일하기로 한다.
운 좋게 얻은 전도유망한 직장이 있는 마천루의 사무실로는 더 이상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세상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꾸역꾸역 긁고, 밀치고, 매달려야 하는 종류의 일은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누군가를 잃었다. 거기서 더 앞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움직이고 싶지가 않았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는 침묵 속에서 빙빙 돌고, 서성거리고, 다시 돌아가고, 교감하고, 눈을 들어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서 슬픔과 달콤함만을 느끼는 것이 허락되었다. (책 69페이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며 브링리가 바라본 여러 미술작품에 대한 감상을 통해서 나도 모르게 감정의 세계가 한층 넓어지고 또 깊어졌다. 다시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친구의 죽음에 관해 알아차리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 같다. 등굣길 자식에게 안전을 당부하지 못했던 부모의 안타까움, 의지하고 선망했던 형에 대한 빈자리를 느끼는 동생, 친구의 죽음이 자신의 생일에서 비롯되었다는 죄책감, 충분히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지 못한 나의 후회, 뭐 그런 여타의 감정들…
어느새 나도 수 십 년 또는 몇 세기가 지나도 부족할 것 같은 애도의 순간을 위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서 있다. 흔하디 흔한 피에타 그림 앞에 서서, 지루할 틈 없는 침묵과 성스러움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고인을 애도한다. 30대에 접어든 내게도 '죽음'은 더 이상 내 주위에서 전혀 일어날 리 없는, 그저 놀라운 사건 따위로 치부되지 않는다. 지금도 죽음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지만,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양해졌고, 그에 따른 고통과 슬픔의 무게감이 예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관심 영역은 하늘 높이 솟았다가 지렁이가 기어 다니는 지하 무덤까지 내려가고, 그 둘 사이의 세상에서 사는 것이란 어떤 느낌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거의 모든 측면과 맞닿아 있다. 그런 것에 관한 전문가는 있을 수 없다. 나는 우리가 예술이 무엇을 드러내는지 가까이에서 이해하려고 할 때 비로소 예술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믿는다.(책 206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