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고난을 겪어야만...

유대칠의 맘대로 묵상 2022년 2월 25일

by 유대칠 자까

오늘의 맘대로 묵상 2022년 2월 25일


δὲ δεῖ πρῶτον αὐτὸν πολλὰ παθεῖν καὶ ἀποδοκιμασθῆναι ἀπὸ τῆς γενεᾶς ταύτης.

“그러나 우선 그는 많은 고난을 겪어야만 하고, 이 세대로부터 버려져야 합니다.”

- 루카에 따르면, 17장 25절


묵상: 부유하게 살던 싯다르타는 늙어 병들어 죽는 일상의 흔하디흔한 모습도 충격이었을 겁니다. 항상 젊고 아름다운 이들만 보았을 테니 말입니다. 아무리 부유한 싯다르타라고 해도 결국은 늙고 병들어 죽을 것이고 여기에선 누구도 자유롭지 못할 겁니다. 싯다르타는 스스로 외로움의 길을 선택합니다. 고난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가 있던 그 화려하고 부유한 곳을 스스로 떠납니다. 스스로 그곳에서 버려졌습니다. 어쩌면 해탈(解脫)의 시작은 여기에서부터 인지 모르겠습니다. 고난 없이 기쁨만을 찾아다니며, 그 기쁨을 위하여 부유함을 찾아다니는 공간에서 그런 삶을 사는 누군가가 되어 있다면, 해탈이 가능할까요? 이미 부유함과 화려함의 기쁨에 묶인 노예인데 말입니다.


해탈은 우선(πρῶτον) 고난을 겪어야 합니다(παθεῖν).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대로부터(ἀπὸ τῆς γενεᾶς ταύτης) 버려져야 합니다. 아니, 스스로 떠나야 합니다. 여기에서 갑자기 헬라어 번역 구약 성서인 <칠십인역>의 시편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이곳에서도 같은 헬라어 표현이 나옵니다.

σύ, Κύριε, φυλάξεις ἡμᾶς, καὶ διατηρήσεις ἡμᾶς ἀπὸ τῆς γενεᾶς ταύτης καὶ εἰς τὸν αἰῶνα.

“그대, 주여! 우리를 지켜주시고 이 세대로부터 우리를 영원히 보살펴주소서”

- 시편 12편 7절


고난의 길을 선택함으로 아집에서부터 한 걸음 더 자유로워지면, 또 욕심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스스로 한 걸음 더 멀어지면, 바로 그 세상으로부터 보살펴주시겠지요. 신이 아니면 선한 우리의 모두가 말입니다.


유대칠 씀


[그리스도교 성서학의 성과에 따른 신학적인 글이 아니라, 저의 맘대로 묵상입니다. 그리고 저의 글을 주간 단위로 온라인에 공개되지 않은 글과 함께 받아보실 분은 summalogicae@kakao.com으로 신청해주세요. 월간 구독료는 1만 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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