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복음 12,54-59 (2020 10 23)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많이 공부한 이들은 이런저런 지식을 늘어놓습니다. 얼마나 많이 아는지 이야기합니다. 법도 마찬가지고 의학도 마찬가지고 신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의 올바름과 착한 사회는 모르겠지만 법을 많이 아는 이는 사회의 올바름에 대해선 관심도 없고 그저 자신이 아는 법을 가지고 자랑을 하며 자신이 이 사회의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은근히 자신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사회의 올바름 없는 법에 대한 지식은 이래저래 자신의 욕심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참 많이 보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상입니다. 의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에 대하여 이런저런 지식을 많이 안다 자부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환자의 아픔보다 자신의 이득이 더 크게 보이기 시작하면 환자는 곧 돈이 됩니다. 병은 곧 돈입니다. 결국 치료는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거룩한 일이 아니라, 돈을 버는 그저 흔히 보는 장사일이며 그것도 어찌 보면 그리 공정하지 않은 장사입니다. 제대로 치료하는지 우린 알 길이 없으니 말입니다. 더 많은 약을 쓰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으니 말입니다. 신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들이 하느님을 더 잘 안다고 훈계하듯이 이야기합니다. 이 세상 진리를 알고 있다는 듯이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막상 이 사회의 온갖 부조리에 아프고 울고 있는 이들은 신학을 공부한 이들이 아니라, 일방의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정말 제대로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야 하는 이도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정말 하느님이 되어 이 세상 가운데 하느님 계심을 드러내야 하는 이도 바로 그들입니다. 그러나 신학 좀 공부했다고 이런저런 교리나 어려운 신학의 언어로 이것이 정통이라 말하며 훈계합니다. 그리고 그 정통이 서로 다른 교회들끼리는 서로를 이단이라며 멀리하기도 합니다. 때론 그 정통이란 이름으로 사회적 약자들, 성소수자 등을 하느님 품 안에 있지 않다며 밀어 내 버리기도 합니다.
참 많이 알지만 그저 참 많이 알 뿐입니다. 그들의 지식이 더불어 사는 우리 가운데 어떤 뜻을 이루어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때 그 지식은 자기 아집의 수단이 됩니다. 내가 이만큼 많이 안다는 자랑의 수단이고, 당연히 누려야 할 높은 자리를 정당화시키는 수단이 되고 맙니다. 자신들이 무엇을 잘 못했는지를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자신들이 그저 답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 아집을 <성경>의 이런저런 말들로 표장을 하여 자신들의 그 아집이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되는 듯이 소리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보편의 모습으로 있습니다. 그 품에는 종교와 사상 그리고 직종을 넘어서 모든 이들이 더불어 있습니다. 그것이 마땅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하느님의 품이라며 자신은 하느님에게 더 가깝고 누군가는 하느님에게도 멀다며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이 정망 하느님 품 안에 자란 종양과 같은 존재입니다. 내가 성당과 교회 건축비를 얼마나 냈는데, 내가 성당과 교회에 얼마나 봉사했는데 소리치며 자신을 높은 자리에 서는 것을 당연시하며, 자신의 돈과 시간으로 하느님과의 거리를 계산하는 이들은 하느님을 사채업자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참 슬픈 일입니다.
많은 자신의 지식으로 자신을 높이려 합니다. 그리고 그 지식으로 더불어 사는 우리보다 홀로 높은 자리에서 서려합니다. 더불어 하나 됨의 밖은 하느님의 품 밖이란 사실을 모르나 봅니다. 굳이 지식이 아니라도 자신의 돈과 봉사 시간으로 하느님과의 거리를 계산하며 하느님의 푼 안 사람들에게 등급을 매기고 누군가는 하느님 품 밖이라 단죄해 버립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더불어 하나 되어 있어야 합니다. 나의 존재는 수많은 너들의 자기 내어줌으로 있습니다. 돌아보세요. 지금 당장 한번 자신을 돌아보세요. 자신의 존재 속 수많은 인연들을 말입니다. 부모님과 사랑하는 연인과 배우자 그리고 자식뿐 아니라, 학교에서 직장에서 자신과 길지 않은 시간이라도 차 한잔 나누던 그 수많은 고마움들이 지금 나를 있게 합니다. 나란 존재 자체가 더불어 있음의 결실입니다. 그런데 그저 홀로 대단하다며 높아지려 한다고요. 그러면 그를 있게 한 그 존재의 몫을 강탈해 가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더불어 살며 더불어 나누며 있어야 할 것은 오직 홀로 누리며 살려는 이의 그 도덕질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법도 사회의 올바름을 위해 더불어 하나 되어야 하는 우리를 위한 것이며, 의학도 우리 가운데 아픈 이를 안아주며 더불어 하나 되어야 하는 우리를 위한 것이며, 신학은 하느님 품 안에 우리 모두가 더불어 하나 되어 있음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나는 나를 이룬 그 수많은 더불어 있음에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는지 조용히 저를 돌아봐야겠습니다.
2020 10 23
유대칠 암브로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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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아들과 함께 부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