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있다면, 더불어 있어 주실 것입니다.

2020 10 08

by 유대칠 자까

루카복음 11,5-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5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그가 자기 자신이 배 고파서 늦은 밤 중에 마을 친구를 찾아 나선 것이 아닙니다. 그를 찾아온 친구가 배 고파서 그 친구를 먹이기 위해 늦은 밤 마을 친구를 찾아 나선 것입니다. 늦은 밤 찾아온 친구는 배가 고파 바로 잠들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아마 그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도 바로 잠들지 못하고 고민했을 겁니다. 그리고 빵 한 개도 아니고 빵 세 개 정도 먹여야겠다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는 빵 세 개가 집에 없는 가난한 사람인 모양입니다. 그래도 그냥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그는 배고픈 친구를 위해 기꺼이 성가신 사람이 되기도 마음먹은 모양입니다. 그는 늦은 밤 중에 마을 친구를 찾아가 빵 세 개를 청합니다. 처자식이 있어 가족 모두가 잠든 집에 찾아가 당장 자신의 힘겨움도 아니고 자신의 친구에게 줄 빵을 청하고 청하는 그가 그 마을 친구는 참 성가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때를 기다리라 합니다. 그리고 빼가 되어 아침이 되면 원하는 것을 내어주겠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친구와 더불어 있고자 청하였습니다. 왜 굳이 예수는 자던 중에 배고파서 친구에게 빵을 청하는 이라는 비유가 아니라, 늦은 밤 자신을 찾아온 친구에게 빵을 내어주기 위해 빵을 청하는 이라는 비유를 하였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쩌면 예수계서는 더불어 있음을 위하여 청하는 이의 그 청함을 말하려 하신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홀로 자신의 배고픔이 아니라, 혹은 홀로 더 많인 가지고자 하는 욕심이 아니라 더불어 있으려는 그 마음으로 살아가며 자신에게 어떤 이익도 없지만 자신과 더불어 있는 이의 아픔을 남의 아픔으로 여기지 않는 이의 애씀, 그 애씀으로의 청함, 그런 청함의 간절함에 함께해 주신다는 것을 이야기하시려 하신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만이 더 많이 가지고 나만 더 빨리 달려 나가기 위해서 나의 뒤에 따라오는 이를 죽이기 위해 아버지에게 칼을 달라하면 칼을 주지 않고 오히려 혼을 내는 것이 좋은 아버지입니다. 기다리라 말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힘들고 아픈 친구의 아픔에 그냥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그에게 고등어 반찬에 밥 한 그릇 먹이고 싶다 할 때, 웃으며 식사에 친구를 초대하여 다 같이 더불어 식사한다면 좋은 아버지입니다.


간청하면 이루어진다 하지만 자식이 진학과 경제적 성공 등을 위해 간청하고 간청한다면, 그것은 자다가 배가 고파서, 그냥 자신의 배가 고파서 마을 친구를 찾아가 빵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부족을 참지 못하고 마을 친구를 성가시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이의 간청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느님께서 들어주실까요? 죽어가는 수많은 것들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서로가 서로를 저주하고 죽이는 세상입니다. 생각이 다르면 서로가 서로를 저주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입니다. 자기 욕심 밖은 그저 쓸데없다 하는 세상입니다. 더불어 있음보다는 홀로 성공하는 것이 더 좋은 성공의 비결인 세상입니다. 하느님을 만나 이 사회의 부조리로 아파하는 이의 벗의 아픔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성과와 성장만을 당당하게 청하는 세상입니다. 이런 기도를 하느님이 들어주실까요? 그 이기심에 하느님이 웃어 주실까요? 그저 성가실 뿐 이루어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하느님을 성가시게 할 만큼 청하고 청하여도 괴롭히지 말라 할 정도로 청하고 청하여도 그 청함이 아프고 힘든 이들의 그 아픔을 보고 그냥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마음에 그들과 더불어 있고 싶어 하는 마음에 하는 청함이라면 하느님은 적절한 때가 되면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느님은 우리에게 성령으로 더불어 있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아픔에 고개 돌리지 않고 더불어 있다면, 하느님께서도 분명히 우리와 더불어 있어 주실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2020 10 08

유대칠 암브로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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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0 04 서재 성당 사제관 앞 해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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