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복음 10,38-42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마르타는 예수를 참으로 사랑하는 여인입니다. 그러니 자신들의 자리에 예수를 모신 것이겠지요. 그러나 마르타와 그의 동생 마리아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예수와 더불어 있었습니다. 마르타는 자신의 생각 속에서 예수를 바라봅니다. 남들 보기 부끄럽지 않게 예수를 살펴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습니다. 예수의 이런저런 불편들이 혹시나 나쁘게 예수에게 기억될까 걱정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마르타는 제대로 예수와 더불어 있지 못하고 그 더불어 있음의 밖에서 더불어 있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마르타는 제대로 더불어 있지 못합니다. 예수에게 멀리서 다가가 동생 마리아를 향한 불만을 이야기합니다. 자신이 이래저래 바쁜 대로 그저 예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앉아있는 마리아를 향한 불만을 이야기합니다. 마르타는 다가갔지만 예수와 더불어 있지 못했습니다. 귀를 열어 예수의 말을 듣기보다 자신의 불만, 자신의 눈에 보이는 이런저런 욕심 속에서 보이는 그 불만을 이야기했습니다. 마르타는 그저 함께 있었을 뿐, 예수와 마리아가 더불어 있듯이 그렇게 더불어 있지 못했습니다. 더불어 있기 위한 마음은 참 바쁘지만 사실 멀리 떨어져 있는 셈입니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를 생각해 봅니다. 대화는 더불어 있기 위함입니다. 나의 말만을 이야기하거나 나에게 보인 것만을 지적하기 위한 시간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린 사소한 것 하나하나 지적하고 자신의 생각 속에서 만들어진 기준으로 남을 이래저래 평가하는 이들을 흔히 봅니다. 그들을 걱정한다면서 항상 그들과 더불어 있다면서 그렇게 쉼 없이 자신의 시선과 말만을 늘어놓습니다. 그저 자신의 편에서 더불어 있을 뿐, 사실 함께 있지만 홀로 있을 뿐입니다. 곁에 있을 뿐, 더불어 있지 못하는 것입니다. 친구를 만나 대화하는 것은 듣고 말하기 위합니다. 친구의 아픔과 기쁨에 같이 웃고 입으로 그 아픔과 기쁨에 더불어 있기 위함입니다. 친구의 아픔과 기쁨 앞에서 마시는 커피의 맛과 커피 가게의 청소 상태 등등등을 이야기한다면, 친구는 어찌 생각할까요... 더불어 있다고 생각할까요.
마르타도 마리와 처럼 예수를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방법을 몰랐습니다. 더불어 있음의 방법을 몰랐습니다. 오늘 이 말씀으로 나를 돌아봅니다. 마음으로 항상 더불어 있고 사랑하고 있지만 나의 말이 나의 행동 서툴지 않았을까. 나 역시 더불어 있음과 사랑을 어찌 실천할지 모르는 것은 아닐까... 한 없이 남 탓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나를 돌아봅니다...
나도 마르타와 같이 그저 예수의 곁에 있을 뿐, 우리로 있지 못하고 곁을 서성이고 있는 것은 아닐지 돌아봅니다.
2020 10 06
유대칠 암브로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