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복음 11,15-26
믿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특히 무엇인가 열심히 해야 한다면 더욱더 그러합니다. 혹시나 눈에 보이는 무엇이 없다면, 눈에 보이는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말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신앙도 이와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무엇이 없다면 신앙은 손해 보는 장사입니다. 이웃을 나의 몸처럼 사랑하고 돌아오는 것이 없다면, 이웃 사랑을 하느님 사랑하듯이 하고 돌아오는 것이 없다면, 왜 그 사랑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세상이니 말입니다. 서로 사랑하여 결혼에 있어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따집니다. 이 사람은 눈에 보이는 실력과 능력 그리고 재산은 어느 정도인지 말입니다.
그렇게 서로의 만남이 눈에 보이는 이득을 따지기 시작하면 다툼이 생깁니다. 눈에 보이는 무엇인가를 가져다주지 않으면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됩니다.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행동합니다. 그리고 누군가 자신에게 선을 베풀어도 의심합니다. 분명히 무엇인가 마음속으로 따지는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나쁜 마음을 양심의 가책 없이 이어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모두가 나쁜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러면 자기 자신도 그냥 그 모두 가운데 한 명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병자를 고치고 자신에게 사랑의 마음으로 다가와도 그 사랑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 고마움을 분명 나쁜 어떤 마음이라 의심하겠지요. 마귀의 힘으로 마귀를 물리쳐도 마귀라는 식으로 예수를 생각하는 이들에게 예수가 보인 것은 귀 들리지 않은 이를 고쳐준 것뿐입니다. 그래도 그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이들이 있는 곳엔 항상 분열이 있습니다. 서로 따지는데 어떻게 분열이 없을까요? 서로가 서로 더 많이 가져야 하고 서로다 서로를 의심하는 곳에 분열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런 곳에서 신앙을 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신앙의 시작이 이루어져 세례를 받고 성당이나 예배당을 다닌다 해도 마음속에서 쉼 없이 계산하고 계산할 것이니 말입니다. 오히려 하느님을 두고도 계산을 할 것입니다. 더 많은 돈을 내었으니 더 많이 무실 것이라며 말입니다. 그리고 실망하기도 할 것이고, 어쩌다 찾아온 성공을 보고는 하느님을 주신 만큼 이자를 더해 주시는 은행처럼 생각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과 계산하며 이루어지는 신앙은 오히려 더 많은 마귀들이 찾아와 즐기는 공간입니다. 더 위험합니다. 성당을 다니고 예배당을 다녀도 자기들끼리 서로 이기 집단을 만들어 무리를 이루고 서로 싸우고 다투겠지요. 말로는 성당과 예배당을 다닌다지만 그곳에서도 자신은 눈에 보이는 무엇인가를 즐기려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그러니 그는 사실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도 처음보다 더 나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편에 선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무엇이 없어도 사랑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홀로 누리기보다 더불어 누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편에 선다는 것은 단순히 이름으로 신앙인이며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성당이나 예배당을 다니는 것이 아니라, 계산 없이 하느님 사랑의 손이 되고 발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 되면 하느님의 나라는 바로 여기에서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이 되니 말입니다. 이런 하느님의 편에 반대에 서는 사람은 아집 속에서 다투고 홀로 누리려는 이들입니다. 정말 마귀들이 가장 좋아하는 마귀의 손과 발이 되는 그러한 이들입니다.
마귀는 눈에 보이는 무엇인가 바라기보다 더불어 있음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인 이들의 자리에 들어서지 못할 것입니다. 그 더불어 있음이 더 강한 힘이며, 하느님의 편에서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 어디일까... 하느님의 편일까...그저 나의 편이기만 한 것일까...
어쩌면 그 돌아봄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신앙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2020 10 09
유대칠 암브로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