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26
교리가 현실을 이깁니다. 종종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묻습니다. 왜 안식일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하는지요? <탈출기>에 따르면 엿새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이렛날에는 쉬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근육 노동과 같은 것을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사실 가장 완전한 분이기에 피곤을 모릅니다. 그런데 왜 쉬셨나요? 피곤을 모르는 분이 피곤해서 쉬신 것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천지만물을 미리 준비하시고 마지막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더는 창조할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세상은 창조주 하느님과 피조물인 우리로 있게 되고, 이렛날엔 이 둘이 서로와 더불어 있어야 하는 날로 정하신 것은 아닐지요. 그저 쉬자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하느님이 더불어 있고, 사람과 대자연이 더불어 있고, 대자연이 하느님과 더불어 있는 그런 날 말입니다.
가난으로 인하여 하루하루를 벌어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뜻으로 안식일을 가지지 못합니다. 슬프지만 그들에게 노동은 멈추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 사회가 정말 제대로 더불어 있음이 확대되어 모두가 그런 생각으로 살아간다면, 여섯 날 일하고 하루를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니라도 여섯 날은 일하고 하루를 가족과 산책을 하며 따스로운 햇살 속에서 하느님으로 불리지 못할 뿐 사실 하느님의 품을 느끼게 될지도 모릅니다. 강가 꽃밭에서 하느님으로 보이지 않지만 하느님을 마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가 돈돈돈 돈에 빠져 있으며, 그 사이 많은 이들은 여섯 날을 일하고도 또 일을 합니다. 새벽 배송을 하다 죽은 노동자가 수가 늘고 있습니다. 일요일도 가리지 않는 택배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택배뿐 아니라 이미 사회적 약자로 노동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자신이 온전히 자신을 마주하는 혹은 하느님을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기 힘듭니다.
생존이 힘든 사회에서 꽃과 햇살로 다가오는 하느님을 마주하기도 힘들고, 깊은 묵상의 기도로 하느님을 마주하기도 힘듭니다. 정말 우리 사회가 더불어 있음의 마음으로 가득하다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안식일이 안식일이 아닌 이들의 그 아픔도 안아주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안식할 때 우리의 다리가 되어 노동하는 택배 노동자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안식일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마주해야 하고, 또 하느님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아픈 시간 힘들지 살아가는 이의 눈물과 아픔을 돌아보아야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에도 아픈 이들과 더불어 있으셨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힘겨운 이와 더불어 있으며 하느님과 하나 됨을 보여주신 것이겠지요. 우리의 악식일, 우리도 이 날 아프고 힘겨운 노동자를 위하여 기도해 봅시다. 그리고 종교를 넘어 그들도 하루 편히 쉬며 꽃과 햇살로 다가오는 하느님을 마주할 수 있기를 기도해 봅시다. 안식일과 노동... 그냥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안식일, 더불러 살아감을 멈추는 날이 아닙니다. 당장 큰 실천이 어렵다며 그날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는 이들과 그들을 하느님 만나기 못하게 하며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도 주지 않는 이 사회에 분노하며 기도해 봅시다.
안식일은 정말 제대로 하느님과 아프고 힘든 이들과 저기 저 우리와 더불어 하느님의 피조물인 모든 존재들이 더불어 있는 날입니다.
유대칠 암브로시오
2020 10 26
[오캄연구소의 길이 홀로 감이 아닌 더불어감이 되도록 후원해주실 분들은 카카오 뱅크 3333-16-5216149 (유대칠)로 함께 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대구에서 '교부 문헌 강좌'와 '더불어 신학' 그리고 철학 강좌를 준비합니다. 함께 하실 분들은 summalogicae@kakao.com으로 문의해 주시면 됩니다. 서로에게 고마운 만남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유대칠]
금호강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