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27 루카 복음 13, 18-21
천국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정말 웃음만이 가득한 곳일까요? 더 이상 할 것이 없어 누리기만 하는 영혼들의 공간일까요? 그런데 오늘 예수께서는 천국은 겨자씨와 누룩과 같다 하십니다. 씨앗을 정원에 심으면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쉬게 됩니다. 어디 그뿐인가? 그 나무의 꽃엔 나비를 비롯하여 수많은 곤충들이 그 삶을 기댈 것입니다. 어느 동물은 그 잎에 기대어 그 잎을 먹으며 살겠지요. 어쩌면 나무 위에서 내려오지 않고 그곳을 집으로 삼아 살 수도 있습니다. 나무는 그런 곳입니다.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마을 작은 라일락 나무는 나에게 좋은 벗이었습니다. 그 가지에 줄을 걸어 그네를 타기도 하고 그 가지에 올라앉아한 참 생각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라일락 꽃이 피면 그 가지에 앉아있으면 꼭 라일락 꽃 향기가 되어 버린 느낌이 들어 일부로 한참을 더 그 나무에 앉아있었습니다. 나무는 이와 같이 수많은 존재로 더불어 살아갑니다. 물론 그 나무는 그냥 주고만 있지 않아요. 벌과 나비는 나무의 꽃가루를 날라 줄 것이고, 흙은 양분은 빗물을 수분을 내어주며 그렇게 나무는 살아가겠지요. 주변 작은 일 년 살이 풀들은 죽어 그 기꺼이 나무의 거름이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나무는 내어주고 또 받으면서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 나무가 되기 위해 씨앗은 또 얼마나 힘든가요. 자신의 살을 가르고 싹을 내야 하고 싹은 또 자신의 살을 가르고 잎과 가지를 내며 또 꽃을 냅니다. 자기를 가르며 그 아픔으로 작디작은 씨앗은 나무가 되어 그렇게 주변 모두가 더불어 살아갑니다. 아무것 받는 것 없어 보이지만 산행 중에 나무 그늘은 얼마나 소중한 벗인가?
천국은 씨앗과 같습니다. 자신을 가르고 갈라서 그 사이에 가지를 내고 꽃을 내며 또 그런 가운데 온전한 홀로 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작은 것 하나하나 더불어 있는 그러한 씨앗과 같습니다. 흙과 더불어 있지 않은 씨앗이 살 수 있을까요? 물과 더불어 있지 않은 씨앗이 살 수 있을까요? 더불어 있기 위해 살을 가르는 아픔이 있어도 우린 더불어 있어야 하나 봅니다. 그런 모습이 바로 천국이니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씨앗인가요?
씨앗이 더불어 있지 않고 홀로 있으면 어디에도 쓸데없는 씨앗이 됩니다. 물도 없고 흙도 없이 있는 씨앗이 어디 살 수 있을까요? 아집 속 우리 각자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아집 속 그렇게 썩어 들어가는 우리는 물과 흙과 더불어 있지 않은 썩어가는 씨앗과 같을지 모릅니다. 아집이란 우리를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지 모릅니다.
누룩도 마찬가지입니다. 누룩이 주변과 더불어 썩어가지 않으면 누룩이 자기를 내어주면 주변 모두를 발효하게 하지 않으면, 그저 홀로 썩어간다면, 그냥 홀로 썩어버린 쓰레기일 뿐입니다. 자기 사라짐으로 밀가루를 쓸모 있게 하는 것이 누룩입니다. 밀가루로 인하여 누룩은 쓸모 있는 존재가 됩니다. 그리고 그 쓸모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 줍니다. 그리고 그 자기 내어줌으로 누룩은 밀가루와 더불어 있게 되고, 비록 눈에 보이는 것은 사라지지만 사라지지 않고 밀가루와 더불어 또 다른 쓸모를 이루어갑니다.
우린 씨앗인가요? 아집에서 벗어나 주변과 더불어 자라며 주변과 더불어 살아가는 씨앗과 같은 존재인가? 우린 누룩과 같은 존재인가요? 자기 내어줌으로 모두를 쓸모 있게 하는 그러한 존재인가요? 만일 아직 그렇지 않다면 지금 당장 천국으로 오세요. 더불어 있으세요. 씨앗의 힘겨움처럼 힘들어도 포기하지 마세요. 누룩도 자기가 사라져야 모두를 살립니다. 그런 누룩이 되어 봅시다. 그때 우린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2020 10 27
유대칠 암브로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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