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이미 낮은 곳에 계십니다.

루카 21장 5-6절

by 유대칠 자까

루카 복음서 21장 5-6절



"그때 몇몇 사람들이 성전을 두고 이야기합니다. 아름다운 돌과 보석으로 꾸여졌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입니다."



사람들은 참 힘들게 삽니다. 더 크고 더 높고 더 화려한 삶을 살려합니다. 그것으로 높은 곳에 있어 보이려 합니다. 남과 자신이 다르다 보여주려 합니다. 그런데 남과 다르게 살면 그는 우리의 밖에 외로운 이방인으로 있을 뿐입니다. 그런 이방인의 깨우침이 우리에게 어떤 위로가 되고 눈물이 되고 미소가 될까요. 우리 가운데 우리의 곁에서 우리와 더불어 울고 웃지 않는 이방인의 지혜가 우리에게 지혜일까요. 아닐 겁니다.


군림하던 종교는 사라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종교가 자기 아집을 고집하면 사라져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변화하지 않으면 사라져야 합니다.


가르치려는 종교가 아닌 더불어 오는 종교가 되어야 합니다. 아프고 힘든 이들의 옆에서 그들과 더불어 이방인이 아니라, 우리의 모습으로 분노하고 웃으며 있는 그러한 종교가 되어야 합니다. 거대한 성전을 세우는 것이 종교가 아닙니다. 우리 성당은 혹은 우리 교회는 얼마나 크다는 자랑이 바른 것이 아닙니다. 정말 바른 종교는 더불어 있어야 합니다. 이방인의 지혜로 있지 않고 우리의 지혜로 있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에게 뜻으로 다가오는 종교가 될 것입니다. 우리 눈물에 손수건이 되고 손수건이 안 된다면 적어도 같이 울어주는 벗이라도 되는 종교가 될 것입니다. 우리 삶에 소중한 더불어 있음의 종교가 될 것입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밖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어쩌면 우리보다 더 낮은 곳에서 우리를 지탱하며 우리의 어리석음으로 서로 더 높은 곳에 올려가려는 아집의 다툼을 보시며 울고 있으실지 모릅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느님을 울보 하느님을 만들고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런 울보 하느님이시기에 더욱더 우리에게 뜻으로 다가오는 우리의 하느님이신지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이 우리의 삶에 뜻이 되기 위해선 그렇게 우리 가운데 뜻이 되어야 합니다. 이방인의 뜻이 아닌 우리의 뜻 말입니다. 정말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높디높은 종교가 아니라 더욱더 낮게 우리의 곁에 내려와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곳이 종교의 자리입니다. 그리고 이미 하느님께서는 우리보다 더 낮은 곳에 울보로 계실지 모릅니다.


유대칠 씀


2017년 11월 28일



<저의 칼럼 모음집입니다. 앞으로 저의 칼럼과 길지 않은 글들은 모두 일정 분량이 되면 모음집으로 묶을 생각입니다. 오캄연구소를 위하여 구입해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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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불행하여라' 하신 예수의 <마태오복음>에 이어서 <루카복음> 6장 말씀을 묵상하며 연재하려 합니다. 오캄연구소의 길이 홀로 감이 아닌 더불어감이 되도록 후원해주실 분들은 카카오 뱅크 3333-16-5216149 (유대칠)로 함께 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대구에서 '교부 문헌 강좌'와 '더불어 신학' 그리고 철학 강좌를 준비합니다. 함께 하실 분들은 summalogicae@kakao.com으로 문의해 주시면 됩니다. 서로에게 고마운 만남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유대칠.]

20201017_095116.jpg 남해의 바닷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