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앎이 아니라, 삶입니다.

마태 7장 21절 루카 6장 46절

by 유대칠 자까

"누구든지 나더러 '주님, 주님'하는 사람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갈 것입니다." (마태 7장 21절)

"왜 여러분은 나를 '주님, 주님'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행하지 않습니까?" (루카 6장 46절)


주님이라 부르며 신앙을 가지고 있다 말하고 기도하지만 막상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궁리하지 않는 신앙이 참으로 많습니다. 궁리하고 궁리하여 앎이 아닌 삶이 되어야 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런데 종종 그저 익숙함에 앎이라고 하기보다는 기계적 반복으로 성당과 교회를 다니고 기계적으로 하루에 몇 번 기도하는 것이 신앙의 전부인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안다는 것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앎이 됩니다. 제대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고민해 어렵게 얻은 지혜는 그저 앎으로 그치지 않고 삶이 됩니다. 삶이 되면 그는 주님의 말씀을 드러내는 자가 되고 하느님의 뜻이 삶이 되는 자가 됩니다. 그런데 이미 예수께서 보시기에도 그저 말로만 기계적으로 '주님, 주님' 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얼마나 흔들리며 갈등하고 번뇌에 빠져있는지요? 번뇌의 순간, 흔들리고 흔들리며 갈등하는 것은 하느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여정의 어려움입니다. 멀어지는 어려움이 아닙니다. 그 흔들림과 갈등으로 우린 더욱더 단단히 하느님과 하나 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런 고민도 없이 그저 입으로만 기도문을 달달달 암기하고 주일이 되면 성당과 교회를 찾는다고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이 무엇일까? 주님의 말씀이 지금 나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쉼 없이 고민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 그 고민의 결실을 열심히 살아야겠지요. 신앙이 기계적 움직임이 되어 버린 시대, 앎도 아닌 신앙, 그러니 삶이 되기도 힘든 신앙, 이젠 어찌해야 할지 답답합니다. 우선 알아듣기 위해 고민합니다. 앎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앎이 머릿속 개념에 그치지 않게 우리 삶 속에서 육화 되어 드러나게 노력합니다. 그 애씀이 신앙의 삶이겠지요.

그런 고민 없는 신앙은 욕심의 손을 잡고 그저 자신에게 없는 것을 달라는 기도만 합니다. 그것이 참 신앙인가요? 아닙니다. 떼쓰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대화해야 합니다. 알아듣고 우리 삶으로 하느님에게 보여드리면서 대화하는 것이 우리 삶 속 신앙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유대칠

2020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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