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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Bom Feb 11. 2019

차분한 마무리 <미드나잇 인 파리>

사실, 파리는 비 올 때 가장 예쁘거든요.

마무리 영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책도 읽고 일기도 썼다가, 넷플릭스를 5시간쯤 연달아 봤다가.

그러다 끝내야 할 타이밍이 오기 마련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그때 튼다.

1시간 반 동안 내 시간 천천히 마무리할 때 켜 놓는 영화다.

항상 라디오 틀 듯 틀어 놓아서 몇 번 봤는지는 모르겠다.


주인공은 1920년대 프랑스 파리. 시간과 공간은 보통 배경으로 분류되지만 여기서는 주인공이다. 우디 앨런은 1920년대 파리의 매혹을 보여주려고 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넣었다.

여행에서 만나는 낯선 로맨스, 예술의 황금시대, 취할 필요도 없이 취해있는 사람들이 노-란 필터가 낀 화면을 채운다.

이 조합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허세 가득한 헤밍웨이, 젤다 바라기 피츠제럴드, 여성편력가 피카소, 구름 위를 걷는 듯한 달리까지 첨가된다. 모두 색채가 강한 예술가들로, 위트 있게 표현했다.

‘아, 나 저 사람들 좀 알아!’하는 지적 호기심이 자극된다. 실제로 1920년대 파리는 그들이 활동하던 무대였다. 갑자기 친숙해지는 파리. 내게도 멀지 않은 곳이었구나, 라는 감성을 불어넣어준다.

마지막으로 모두의 뮤즈인 ‘아드레아나'. 이름마저 뮤즈답다. 유일한 허구 인물인 이 뮤즈는 영화의 바퀴를 굴리는 기름이다.



“그럴 수 있어, 여기는 파리(Paris)잖아.”

길은 약혼녀가 ‘그래, 나 그 사람이랑 잤어!’라는 말에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대답했다.

우디 앨런이 본 파리는 그런 곳이었다. 유혹이 가득해서 맨 정신으로는 밤거리를 헤맬 수 없는 도시.

이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거면, 베르사유에 가서 역사 이야기나 실컷 하라고! 라고 말한다.

영화에서 시시한 사람으로 표현되는 현학적인 남자처럼 말이다.


우리 우디, 하고 싶은 거 다 해!라고 누가 말해줬던 게 아닐까. 신나서 좋아하는 거 그대로 다 넣어서 만든 느낌이다. 너무 잘. 우디 앨런이 이 영화로 오스카 최우수 각본상 수상했다는 사실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이 영화에 반해서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네 편을 연달아서 쭉 봤었다.

작가가 하는 일은 자기가 살고 싶은 세상을 창조하는 겁니다. 당신은 당신이 창조해 내는 사람들을 좋아하죠. 그들이 입는 옷, 그들이 사는 장소, 그들이 말하는 방식을 좋아합니다. 그것은 당신에게 몇 달 동안 그런 세상 속에서 살 기회를 제공해줍니다.

책 <우디가 말하는 앨런> 중  



파리에 살지도, 1920년대를 황금시대라 생각지도 않는 내가 이 영화를 자주 트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처음과 끝이 똑같고 진행되는 이야기가 없어서 편하다. 그 말은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교훈이 없어서 부드럽다. 즉 날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

영화에 있는 건 향수의 감성(노스탤지어), 딱 하나다. 분위기만 남아있다.

길이 쓰는 소설처럼 이 영화도 노스탤지어에 대한 풍경이다.

상점 이름은 '과거로부터'. 그곳은 추억을 팔고 있었다. 한 시대엔 시시하고 천박하기까지 했던 것이 단지 세월이 흐르면서 신비롭고 흥미로운 존재로 바뀌기도 했다.



틀어놓고 메모도 하고, 놓쳤던 아티클을 읽고 생각도 정리한다.

문득 들리는 음악에 잠깐 눈을 감고 생각을 지우기도 하고, 고개를 들어 눈이 편한 오렌지색 필터를 가만히 쳐다본다. 언제 보아도 색감이 낭만적이다.

천천히 바닥을 쓰는 것 같다.

초반 5분의 음악을 듣고 파리 풍경을 보려 영화를 켰다가 결국 끝까지 본다.


처음 나왔던 음악이 마지막 장면에서 흘러나온다.

길은 이제 1920년으로 가는 차를 타지 않는다. 대신 지금, 비 오는 파리를 아름답다 말하는 이 사람과 다시 밤거리를 걷는다.

둘의 뒷모습을 보며 그 날을 차분히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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