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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Bom May 20. 2019

스타트업 디자이너로 어느덧 3주년.

서비스를 만드는 디자이너로 3년을 보내고 입사 기념일을 맞아 쓴 소감문.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미숙한 점도 많아서 폐 끼친 건 아닐까 죄송한 점이 많아요.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제가 늘 좋은 직원,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스타일쉐어에서 그 고민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감사합니다.


3주년 인사를 앞두고 미리 소감문을 작성했었다. 누가 보면 상 받은 마냥 호들갑이었지만 내겐 매듭지음이었다.

좋은 동료, 좋은 디자이너, 좋은 직원, 좋은 사람.

막연한 '좋은'수식어를 붙여 놓고 달려왔다. 어떤 게 좋은 건지, 동료는 뭔지, 디자이너는 뭘까 고민하며 내 손에 있는 조각칼로 나를 요리조리 깎아 가는 3년이었다.

월정 소감 얘기할 때 띄워놓는 자료화면

스타일쉐어에서는 '월간 정보좀요'라는 월마다 하는 전체 회의에서 모두 모여 그 달에 입사자를 함께 축하한다. 앞에 나가서 인사도 하고 간단한 소감을 말한다. '말하면 좋을 것들' 리스트도 제공해주며 소감을 장려하는 분위기다.


4월 월간 정보좀요 날짜가 다가왔다. 난 4월 입사자이니, 내 차례다. 1주년 소감은 기억나지 않는다. 2주년 때는 모두에게 고맙다는 뻔한 말을 했었다. 그런데 3주년이라니, 긴장감에 간질거렸다. 지금이 중간인 지 시작점인 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난 여기쯤! 땅땅!" 정리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무의미 주의자라고 떠벌리고 다니면서 실은 의미 없이 살 지 못하는 게 아닐까. 맨 몸으로 사회에 나와 쉰 적 없이 3년을 꼭 채웠다.
이제 나도 꽤 번듯한 사회인이 되었으려나. 경제 활동에 주체로써 몫을 다하고 있나, 어디에 일조하는 걸까. 또 그 와중에 난 행복했나.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의미가 주는 선물은 이런 게 아닐까.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먼지처럼 떠돌던 생각이 의미 속에 모인다.
지난 3년간, 가장 많이 한 고민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먼저 워라벨

출처: 내 인스타그램 스토리... 주룩

내 워라벨은 엉망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려지는 그림이 있다.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찌들어져 있고... 등등.
그렇게 보편적으로 그려지는 워라벨에 비춰 보면 난 워라벨이 엉망인 게 맞다. 하지만 난 처음부터 그런 워라벨을 원한 적이 없었다.

일을 많이 하면 당연히 피곤해지고, 피곤하면 ‘쉬고 싶다’라고 하지 워라벨이 엉망이야, 하는 건 어딘가 엉성해 보였다.

내가 생각하는 워라벨은 내가 내 시간을 좋아하는 일에 잘 분배하는 것이다.
나는 시간을 좋아하는 일에 쓰고 싶다. 그게 작업이면 작업, 책이면 책, 술이면 술, 뭐든.
뿌듯하고, 날 도전하게 하는 곳에 최대한 많이 분배하고 싶다.


그래 봤자 노예야, 회사는 회사야, 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주종관계, 계약관계라는 말도 맞다.
하지만 내겐 다른 가치가 앞 설뿐이다. 내가 시간을 주체적으로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다른 건 후순위다.

언젠가 내가 "회사는 회사야. 너무 열심히 하지 마"라는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할 때는 다들 그렇데, 보다는 '내가 겪어본 바’이고 싶다. '진짜 좋아서 일해봤는데, 돌아오는 게 없더라'는 내가 그래 봤어야 내 거니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해봤는데~"에 집중하는 하는 것이다. 아직은 내가 할 수 있는 것, 잘하는 것, 좋아하는 걸 확인하는 과정이 즐겁다.


그다음 팀워크

비틀즈야 모야 S2

고백부터 먼저. 나는 방탄소년단 팬이다. 어쩌다 뮤직비디오를 접했고, 딱딱 맞는 군무에 희열을 느껴 결제까지 해가며 콘텐츠를 찾아본다.
단순 콘텐츠 소비자가 아니라 팬이 된 이유, 지금도 팬인 이유는 팀 워크 때문이다.

7명 중 천재는 없다. 노래를 기막히게 하지도, 쇼미에서 래퍼들을 씹어먹지도, 박보검만큼 다들 잘생기지도 않았다(팬 맞아요).

자신이 부족한 걸 알고, 채워나가려는 한 사람을 격려하는 멤버들이 있다. 같은 이름으로 같은 결과를 내고, 과정에서 방향을 맞춰 나간다. 그들의 케미는 결과보다 과정에 있다.

영감과 자극을 주는 사람으로 같은 팀 멤버를 아낌없이 찬사 하고, 서로가 선의의 경쟁자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부러웠다. 7년 넘게 서로 영감을 주는 팀이라니.


디자인 스튜디오가 아닌 이상,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팀으로 다니지 않는다. 업무 특성상 혼자 가능하고, 슈퍼 디자이너가 100명을 커버할 때도 있기 때문에 개인 실력 향상에 힘을 많이 쓰는 편이다.

그런데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특히 스타트업에서 디자이너로 일한다는 건, 같이 꾼 꿈이 실현되도록 기여하는 사람이다. 슈퍼 히어로가 아닌 One of them으로 개인이 더 중요하다.

그래픽이나 영상, 편집이 아닌 서비스를 만드는 디자인을 선택한 이유는 내가 가진 재능이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하며 도움되는 즐거움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스쉐에 3년 동안 일 하면서 충돌 없이 나오는 결과를 보지 못했다. PM, 개발자, 비즈니스 팀 등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나선형을 그리다가 결과를 낸다. 디자이너는 시각화라는 무기로 그 나선형의 해상도를 올려주는 사람이라 생각을 한다. 프로젝트마다 시각화의 중요도가 다르다. 요즘엔 그 판단을 잘해야 소모적인 좌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 번째, 취향

스쉐 슬랙에서 club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수많은 클럽 채널들

스타일쉐어 직원 대부분은 밀레니얼 세대다. 요즘의 살롱, 취향 문화도 밀레니얼 세대가 만들었다.

그래서 회사에도 다양한 소규모 모임이 많다. 관심 있는 사람 3명만 모이면 슬랙에 #Club-000 채널이 만들어진다. 내가 속한 클럽은 #club-coffee, #club-marvel, #club-gardening, #study-점각스 이다.


스타일쉐어에서 일하다보니 일을 잘하는 사람은 자기 취향도 확실한 경우가 많았다. 어떤 것이 우선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 째, 관찰력이 좋다. 섬세함보다는 촘촘함이다. 그래서 상황이 아니라 현상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습관이 있다.

또 호불호가 강하다. 힘을 주고 빼는 데에 기준이 확실해서 힘줄 때는 몰입도가 높고 아웃풋도 확실히 좋다.

마지막으로 자기표현이 익숙하다. 자신을 드러내는 데에 별 거리낌이 없달까. 실제로 소심하거나 낯을 가리는 사람도 ‘전 낯을 가리는 편이에요’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것도 자기표현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렇게 표현하다 보면 미숙하더라도 다듬어진다. 이럴 땐 이렇게 말해야 하는구나, 말보단 글이 좋구나. 그러면서 표현력이 늘기도 한다.

그리고 이 특징의 바탕은 호기심이 강하다는 것. 가보지 않고는 난 바다보다 산을 좋아해,라고 확신할 수없기 때문이다. “정말 그럴까?”. 이런 질문이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호기심과 맞물린 경험 축적이 기본이고 관찰력, 호불호, 자기표현이 더해지면 취향도 취미도 확실해지는 것 같다.


취향이 확실한 사람들은 회사에서는 어떨까. 곤조가 강해 보이는 사람은 그 이미지가 업무에도 영향을 미친다. 왠지 주어진 일도 취향처럼 집착해서 해낼 것 같은 이미지가 있다. 실제 성과까진 다른 얘기겠지만, 업무의 기회가 더 다양하다. 이 일을 맡겨도 될까? 누구에게? 할 때 쉽게 떠오르는 사람이 된다.


마지막으로 성장

사람을 생산 도구로만 보지 말자, 라는 극단적 말은 본질을 흐린다. 사람이 도구는 아니지만 생존하기 위해 산다. 생명이 있는 모든 동물이 그렇듯.
자본주의에선 생산력을 가져야 생존한다. 우리나라는 그렇게 성장해 왔고 우리 세대는 그 성장의 여유를 누렸다.


'나'보다 '우리 세대’로 풀어가는 이유는 맥락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미 성공한 곳에서 자란 우리에게 성장이란 양보다 질이다. 그래서 어른들이 우리 사고를 인정해 줬으면 좋겠다. 성장의 결이 다르다는 걸.

반대로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해야 하는 것도 있다. 양이던 질이던, 성장하려면 노력과 고통은 필수이다. 이미 얻은 온실 속에서 우리는, 고통이 수반되는 노력을 해 본 경험이 많지 않다. 예전 어른들의 방법으로 얻는 건 옛날 성공 모델뿐이다. 그럼 질적인 성장은 행복일까. 힐링이며 욜로며 많은 트렌드가 광풍처럼 지나갔지만 더 피곤해졌을 뿐이다.


‘성장’이라는 단어가 조금 부담스러우니 다르게 표현해야지.
나는 매일 조금씩 나아지고 싶다. 그 방향도 내가 정하고 싶다.

다행히 스타일쉐어에서 있으면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윗 세대가 아닌 우리만의 방식으로 노력하고 답을 찾아가는 사람들. 그렇게 처음 의문으로 자꾸 돌아간다. '좋은'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좋은 동료, 좋은 디자이너, 좋은 직원, 좋은 사람

다른 회사원들보다 고민이 많아 보인다. 입사 당시 30명 남짓이었던 스타트업에서 일하다 보니 미숙해도 내가 끼치는 영향력이 크단 걸 실감한다. 그냥 뱉은 말이 논쟁거리가 되기도 한다. 자립심이 높아지는 동시에 책임감도 커진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주체적인 고민을 할 수 있었고, 다행히 그 안에서 여러 고민을 실험해 볼 수도 있었다.

스타트업은 새로운 기술과 산업을 실험하며 성공 모델을 만들어 나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운 좋게도 나는 디자이너로서 다른 업무 방식, 사람으로서 새로운 성장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환경에서 3년을 지나왔다.


다음 3년은 더 많은 행동을 하며 보내고 싶다. 그동안 붕붕 떠 있는 기분이었는데, 발 디딜 땅 정도는 생긴 것 같다. 발돋움해서 걷고, 점프도 해봐야지. 줄여 보려 했는데 길어졌다. 남은 잔 고민들을 일기장에 차곡 쌓아서 모이면 다시 매듭짓는 글을 적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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