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45권
영화: 67편
시리즈: 24편
사나운 애착 - 비비언 고닉
키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질병] 읽기 - 박찬국
물의 연대기 - 리디아 유크나비치
혐오와 수치심 - 마사 너스바움
별의 시간 -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내겐 미친 여자 서랍이 있는데, 세 명이 늘었다. 비비언 고닉, 리디아 유크나비치,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이제라도 알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거칠지만 따뜻하게 나를 꼬옥 안아주는 미친 그녀들을 읽을 수 있어서, 읽을 용기가 내게 있었어서 다행인 한 해였다.
비비언 고닉 아줌마, 지금은 할머니려나, 무튼 너무 늦게 읽어서 죄송합니다. ‘엄마’ 글을 읽을 자신이 없어 미루고 미뤘었어요. 이젠 마주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사나운 애착⌟은 한 여자(비비언 고닉)를 괴롭히기도 살리기도 했던 두 여자를 성심 성의껏 담아낸 회고록 에세이다. 당신들을 아주 미워하지만요, 아주 필요로 하기도 해요.라고 고백하고 있다. 과거형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생생히 눈앞에 그려내는 모든 기억들이 감탄스럽다. 두 여자를 살려내면서 그 안에서 꿈틀대는 소녀 자신, 그리고 어엿히 커서 그녀들을 그려내는 작가가 된 그녀. 경이롭다.
마사 너스바움의 ⌜혐오와 수치심⌟은 올해 글 수업을 들으며, 내 글을 위한 자료 조사 차원에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인간 내면에 깊게 박힌 ‘수치심’을 이토록 통찰력 있게 서술한 미치게 똑똑한 여자의 학술서다. 틈만 나면 수치심은 밀려오는데, 그때마다 굴복할 것인가, 마주할 것인가. 이젠 마주하기로 했다. 거의 모든 페이지를 필사하며 읽었다. 오랜만에 대학 도서관에서 교양 공부하는 기분이었다. ‘혐오’ 파트를 조금 덜 읽었지만 벽돌책 이 정도 읽었으면 다 읽었다고 해줘요.
⌜키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질병] 읽기⌟ 철학서를 그대로 읽기엔 이해가 어렵기에 훌륭한 해설서를 펴낸 출판사를 찾았다. 세창 출판사의 명저 산책이라는 시리즈를 찾았고, 박찬국 교수님의 좋은 평을 보고 읽게 되었다. 하필 키르케고르였던 이유는 트위터를 돌아다니다가 ⌜죽음에 이르는 질병⌟에서 발췌한 몇 문장을 보고 좋았기 때문이다. 역시나 이 책도 가슴에 콕콕 새겨 넣기 위해 다 필사를 했다. 박찬국 교수님의 번역, 해설이 모두 좋아서 에리히 프롬과 들뢰즈를 해석하신 같은 시리즈의 책을 구매했다. 내년에 읽겠습니다. (진짜예요)
⌜별의 시간⌟ 리스펙토르. 당신을 추천을 받아왔지만 읽을 책이 쌓여서 미뤄두다가 도서관에서 슬쩍 엿보았어요. 그러고 단숨에 사랑했어요. 절절한 고백을 엎드려서 해도 모자랄 글. 책에서는 리스펙토르라는 가장 높은 층위의 작가가 있고 책 속에 남성 작가가 있다. 그 둘을 분리해야 할지, 분리한다면 어떤 기준으로 해야 할지 고심하게 되고, 결국 내가 집중해야 할 건 그 작가 두 명이 도달하는 한 여자, 마카라는 주인공이다. 하지만 내내 남성 작가가 끼어들어 자신을 서술하기도 한다.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하려는 한 작가와 그 둘을 아우르는 최종 작가. 쪼개어져 창조한 작가의 모습이겠지. 곧바로 그녀의 책들을 모두 주문. 소장하지 않는 법을 모르겠다.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파얄 카파디아
<콘클라베> 로버트 해리스
<이사> 소마이 신지
<호루몽> 이일하
<엄마의 시간> 다르덴 형제
<세계의 주인> - 윤가은
작년에는 부국제에서 보고 꼽았던 <우빛상모>. 올해는 극장에서 또 봤으니까 또 꼽았다. 뭐, 어차피 개인적인 거니까. 김겨울 작가, 이은선 기사의 GV로 보고 나니 더 좋았다. 트위터에서 한 차례 휩쓸었던 ‘차씹도의 도시, 서울’을 이야기하는데 빵 터졌었다. 차씹도란 서울을 향해 차가운 씹새끼들의 도시의 준말. 하지만 그 익명성만큼은 그리울 거라는 내용이다. 내가 사랑하는 대도시, 서울. 비비언 고닉이 뉴욕을 사랑하는 이유처럼 서울을 좋아한다.
소마이 신지 <이사> 여름 제철 영화로 꼭 보고 싶었다. 산뜻할 줄 알았는데 엉엉 울었다. 지체 없이 흐르는 콧물을 소매로 몰래 (많이) 닦았다. 이게 다 렌코 때문이다. ‘왜 낳았어?’라고 화장실에 숨어서 소리치는 렌코, 밤을 지새우며 달리고 달리는 렌코, 마침내 불타는 배를 보내주며 축하한다고 외치는 렌코. 마음이 저려와서 보기 힘든 장면들에서 속수무책으로 내 많은 아픔이 밀려왔다. 렌코를 너무 안아주고 싶었다. 심리 치료의 과정을 생생하고 정직하게 보여준 영화다.
<세계의 주인> 단연 한국 영화 걸작. 너무 잘 만들어서 판타지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나는 주인이와 같은 아픔을 겪지 않았기에 감히 거기에 말을 얹기 조심스럽지만 당사자가, 아픔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느꼈다면 그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서는 그 아픔을 최대한 조심스럽게 대하는 마음, 둘러서 둘러서 가고자 했던 마음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너는 너무 복잡해, 어려워’. 순수악에게 이런 말을 듣는 당사자성이 강하게 느껴져 이 부분에서 눈물이 터졌었다. 나도 복잡하고 싶지 않아, 좋은 걸 좋다고 말하고 싶고, 불편하다면 의심 없이 밀어내고 싶어, 나를 의심하고 싶지 않아. 이 그대로인 채로 또 바깥의 모든 것들을 흡수하며 나아가는 주인이. 나는 살아가기로 했으니, 받아들일 수 없을지언정 나아간다.
<엄마의 시간>은 올해 아마 개봉을 할 텐데, 우빛상모처럼 26년의 영화에 또 오를 거라 확신한다. 다르덴 형제가 아이들의 시선과 아픔을 다루는 방식이 이번엔 더 걸출하다.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연출도 더 과감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판타지다. 이렇게 들여다봐주고, 말을 듣고자 하는 시선이 있으니까.
<콘클라베>는 영화관에서 두 번 보았다. 감각의 쾌감이 엄청난 영화다. 도입부의 긴장된 현악기의 음악과 덜컹이는 화면을 따라서 처음 보는 가톨릭을 맛본 기분이었다. 박완서의 말마따나 ‘보수적이고 늙’은 종교이지만, 세상의 목소리에 늘 응답하고자 하는 개혁의 종교이기도 하다. 기술은 군대에서 탄생하고, 예술은 종교에서 탄생하는 게 아닐까. 종교의 예술은 ‘각’과 ‘깔’인데 아주 맞춤이었다.
<호루몽> 은 주변에 정말 많이 추천했다. 안타까운 건 일반 영화관에서 개봉도 하지 않아서 아쉬웠다. 이런 영화를 사회가 누려야 얘깃거리가 촘촘해질 것 같은데. 늘 회사 점심시간에 하는 부동산, 주식, 회사, 그놈의 AI 이야기 말고. 먹고사는 이야기 말고 살고 죽는 이야기.
<은중과 상연>
<소년의 시간>
<외교관 4>
<모 이야기 1,2>
Gamesofluck - Parcels
Whateverrr - Spacey Jane
Again - MaxRickun
Last Forever - LA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