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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진 Aug 05. 2024

좋아하던 일이 어느 순간부터 숙제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생각 쪼가리 #22. 글쓰기

  브런치 작가 합격 소식을 듣고 3일 정도 망설이다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글을 읽어주셨고, 라이킷을 눌러주셨다. 특히 아빠와 마라톤에 관한 글을 올리고 며칠 뒤 하루 만에 조회수가 90이 넘도록 읽히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다. 아마도 구글에서 유입되었던 것 같은데, 처음에는 왜 그런가 어리둥절하고 믿기지 않았던 것 같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준다는 기쁨과 설렘에 매일 하나의 글을 발행하기로 나 혼자만의 약속을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약속을 지금까지 잘 지켜왔다. 지난 한 달 동안 생각 쪼가리, 달콤한 일기, 다이어트 일지까지 총 3가지 매거진을 번갈아가며 매일 하루에 하나의 글을 발행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글을 발행하는 것이 숙제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 오늘도 글을 올려야 하는데.
 
아직 하나도 못썼는데.
 
오늘 너무 피곤한데. 

         .

         .

         .

글 쓰기 싫다.



  이 생각이 드는 순간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아니, 아마 좋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것이고, 내가 설레서 혼자 한 약속인데, 이게 숙제처럼 느껴지다니.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정말 좋아하던 일이 숙제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일은 이전에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또다시 일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어떤 날은 행복하게 글을 썼고, 어떤 날은 막힘 없이 글이 줄줄 나와 하루에 3편 넘게 적으면서 "나 어쩌면 재능 있는 거 아니야?"라며 속으로 자화자찬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엇을 쓰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고, 글을 쓸 기운도 잘 나지 않는다.



이게 다른 작가분들이 이야기하던 소재 고갈이라는 것일까. 


  처음 작가가 되어 글을 쓸 때는 지난 시간 동안 쌓아둔 이야기가 많으니 글도 많이 나오다가 나중에 어느 순간에 가면 더 이상 쓸 소재가 없어진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렇게 나도 소재가 고갈된 것일까.


  하지만 내 생각엔 소재 고갈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생각날 때마다 적어둔 소재 키워드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고, 심지어 날것의 조각들도 몇 편 저장되어 있다.



그럼 내가 글을 적기 어려워진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글을 쓰는 게 숙제처럼 느껴져서 같다. 내가 적고 싶고, 내가 깊게 생각하고 싶은 내용은 따로 있는데, 하루에 한 편의 글을 발행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겠다고 억지로 글을 짜내어 올리고 있었다.


  정말 내가 쓰고 싶은 내용들을 두고 빠르게, 단 몇 시간 만에 적을 수 있는 글들을 날림으로 적으니 당연히 그저 그런 글만 나오는 것이었다. 내 성에 차지 않는,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알맹이는 전혀 없는, 그냥 '발행' 버튼을 누르기 위한 글.


  거기다 글을 적다가 바로 윗줄과 토씨 딱 하나만 다른 문장을 그대로 그 아랫줄에 적고 있는 것을 보고 나서는 내가 글을 적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글을 짜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잠시 동안 발행을 위한 글쓰기를 멈추고, 정말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써보려 한다. 보여주기식 이야기 말고, 내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깊이 생각하고 여러 번 고민하면서,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보려 한다.



  다음 글은 언제쯤 발행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아마 나는 매일매일 글을 적고 있을 것이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깊이 숨겨둔 이야기를 어떻게, 어떤 순서로 이야기할지 고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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