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시절 꿈은 화가였다. 초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께서 자기가 미래에 되고 싶은 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자고 하셨다. 담임선생님께서는 "꿈은 일찍 정하는 게 좋다"며, 일찍 정해야 어릴 때부터 꿈을 위해 더 오래, 더 많이 노력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때 그 말을 듣고 9살 어린이 인생 처음으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 보았다. 내가 잘하는 것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도 해보고, 나름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 같다. 한창 미술학원에 다니면서 그림 잘 그린다는 칭찬을 받던 시기라 나는그때 내 꿈을 화가로 정했다.
그리고 한동안, 아니 꽤 오래 화가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키웠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해서, 고등학교를 어디로 갈지 정해야만 하는 시기가 오기까지 나는 화가가 되고 싶어 했다. 단순히 그림을 잘 그려서, 칭찬받는 게 좋아서 정한 꿈이 이렇게 오래 이어질 거라고는 그 누구도 몰랐을 거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나를 말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듯하다. 내가 커가면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있지만, 미술관에서 그림을 설명해 주는 큐레이터라는 직업도 있다"라고 하시거나, "작가가 되어서 네 책에 들어가는 삽화를 그려보는 건 어떠니?"라고 물어보시는 일이 늘어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내가 유학을 가고 싶어 하면 어쩌나 걱정도 하셨을 거고, 물감이나 붓, 이젤 등 미술 용품 가격도 좋은 것일수록 비싸지니 정말 내가 미술을 계속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지원해주어야 하나 걱정도 하셨을 거다. 거기다 내가 공부를 못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냥 공부를 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을 거다.
그럼에도 내가 하고 싶다고 하니 엄마는 끝까지 그만두라는 말이나 싫은 내색 한번 안 하셨다. 내가 살던 시골에는 입시 미술을 하는 곳이 없었기에 옆 지역에 있는 입시 미술 학원을 여럿 돌아다니셨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중학교가 절반도 더 지나갈 시점에도 입시 미술을 하지 않았던 만큼, 실습 비중이 적은 예고는 없는지, 조금이라도 유리한 내게 전형은 없는지 입시 요강들을 공부하셨다.
꿈을 놓아주다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 그림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한 '화가'와 현실의 '화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입시 미술 학원을 알아보고 다니면서 내가 그림을 잘 그리는 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국에서 그림으로 먹고살기 쉽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시간 안에 그림을 완성해야 한다는 사실이 내겐 너무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러면서 점점 그림 그리는 것이 싫어졌고, 내가 가장 좋아하던 그림을 내가 싫어한다는 사실이 더 싫어졌다.
그렇게 중학교 3학년 여름, 나는 '화가'라는 꿈을 놓아주었다.
다시 그림을 그리다, 그리고...
그렇게 한동안 나는 그림을 멀리 하였다. 고등학교 3년간 미술 수행평가 외에는 그림을 전혀 그리지 않았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될 때까지 그림은 전혀 그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리 학교에 미술 교양 수업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찾아보니 도예 수업, 수채화 수업 등 다양한 미술 교양 수업들이 많았다. 그 수업들을 보니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들더라. 그래서 2학년 1학기, 수채화 교양 수업을 신청했다.
교양 수업은 생각보다 더 재미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술을 업으로 삼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2-3주마다 새로운 주제로 새로운 그림을 하나씩 그려야 했고, 그 그림을 왜 그렸는지, 그림에 담긴 의미를 모두의 앞에서 설명해야만 했다. 나는 왜 내가 그린 그림에 억지로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그리고 싶어서, 그 순간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어서 그리는 것은 안 되는 것인지.
물론 현대에는 사진이라는 저장 매체가 있으니 그림은 그 순간을 기록하기만 하는 것이 이상으로 화가만의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반대로 너무 의미만 부여하여 예술이라고 우기는 것은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는 것도.
나중에 다른 교양에서 만난 미대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아마 그게 '크리틱'이었던 것 같다. 크리틱은 누군가의 작품에 대해서 교수와 학생들이 비평을 하는 시간을 말하는데, 전공생의 경우 더 혹독하고 원색적인 비난에 가까운 비평을 듣는 경우가 태반이란다.
그때 수채화 교양 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화가라는 꿈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없앨 수 있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그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시간에 쫓겨 그림을 그리는 것도 싫었으며, 무엇보다도 창의성이란 것이 전혀 없었다. 주제를 선정하는 것이 정말 어렵고, 그렇게 고생 끝에 선정한 주제도 너무 뻔했다.
그때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라는 것을 완전히 깨달았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그림이라는 이름의 어린 시절의 꿈을 완전히 놓아줄 수 있었다.
만약 그때 그림을, 어린 시절의 꿈을 놓아주지 못했더라면 지금과는 아주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 같다. 지금처럼 글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과 소소한 행복도 모두 지금과 같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꿈을 보내주었다는 것에 후회는 전혀 없다. 오히려 아름답게 보내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그림은 내게 있어서 과거의 꿈이자 어린 시절의 추억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서 그림을 떼어 놓으면 추억의 절반 이상이 사라진다. 가장 친했던 소꿉친구도 미술학원에서 만난 친구고, 중학생 때까지 매년 친구들과 나갔던 사생대회에서의 추억도 가득하다. 그림에 모든 열정을 다 쏟아도 보고, 아주 조금 남은 미련 조각도 떨칠 수 있었으니 나는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지.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들은 어떤 꿈을 꾸었었는지, 괜찮다면 그대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만약에, 아주 만약에,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지 못했고 아직도 그 꿈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다면 아주 딱 한번 더 도전해 보는 건 어떤지 조심스럽게 제안해보고자 한다. 어쩌면 아직 못 다 피운 재능을 이제라도 피울 수도 있는 일이고, 아니면 나처럼 미련을 떨치고 어린 시절의 꿈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겨둘 수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