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쪼가리 #4. 무대공포증
무대공포증
나는 앞에 나가서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했었다. 사실 지금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여전히 두렵다.
그전에도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내가 무대공포증이 있다는 것을 정말로 실감하게 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였다. 글쓰기 관련 필수 교양 수업에서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아마도 가을이었을 거다. 교수님께서 "나와 OOO"이라는 제목으로 한 페이지 정도 분량의 짧은 자기소개를 적어오는 것을 첫 과제로 주셨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수업, 한 명씩 앞으로 나가서 자기소개 글을 발표를 하였다. 내 차례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심장은 두근거리고, 눈이 핑핑 도는 듯했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어 칠판 앞으로 나가 학생들을 바라보니 다리가 떨렸고, 목소리도 덜덜거렸다. 최대한 마음을 다잡으며 차분히 자기소개 글을 읽으려 했지만, 결국 나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은유나 비유가 아니다. 그냥 말 그대로 그 자리에서 울어버렸다.
겨우 열명 남짓한 소규모 강의였는데 거기서 울어버리다니. 나 자신도 이해가 되지 않고, 너무 당황스러웠다. 결국 그 해 내내, 그 어떤 수업에서도 내가 발표자로 나서는 일은 전혀 볼 수 없었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무대공포증이 점점 나아질 거라고 기대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라는 진부한 바 말은 나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지나도 두려움이 사라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누군가의 앞에서 발표한다는 사실은 나를 너무 두렵게 만들었고, 앞에 나선다는 생각만 해도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앞에 나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그 두려움이 당연하게 되어버리는 것이 더 두려워졌다. 그때부터 나는 일부러 발표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듣지 않아도 될 대형 강의를 신청하고, 안 해도 될 발표에 발표자로 지원해서 200-300명 앞에 나가 발표를 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쉽지 않았다. 앞에 나갈 때마다 다리는 떨렸고, 사람들을 쳐다보면 머릿속이 백지가 되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대본을 전부 써가서 아래만 바라보며 대본을 줄줄 읽기만 했다. 그렇게 발표를 거듭하면서 대본을 써가더라도 대본을 읽기만 하지 않고 앞을 바라보는 빈도를 늘리기 시작했다. 그런 시도를 반복하면서 점점 대본에 의지하는 정도가 줄어들었다.
두려움에 익숙해지기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대공포증을 극복했다는 것은 아니다. 맨 첫 문장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아직도 앞에 나가서 발표하는 것이 무섭다. 그렇게 수많은 발표에 도전했으면서도 결국 무대공포증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두려움을 꼭 극복해야 하는 것은 아님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물론 극복을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그것이 쉽지 않을 것임을 나도 알고 있다.
누구나 무서워하는 것이 있다. 그리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자가 무서워하는 것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두려움은 극복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익숙해지는 것이다.
두려움을 마주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 두려움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척을 할 수 있다.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분명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두려움을 더 이상 두려움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으리라 믿으며 나는 오늘도 곧 다가올 발표를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