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mmer Garden Jun 02. 2021

내가 알던 네가 아냐 :
뉴미디어의 도시_싱가포르 2편

지극히 평범한 여행 소감 기록 #.1

싱가포르 동물원의 '레인포레스트 루미나'

3.

싱가포르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을 단 하나 꼽자고 하면 단연 나이트 사파리이다. 7시 이후, 해가 다 지고나서야 비로소 오픈하는 동물원이라니. 너무 낭만적이지 않은가. 마치 비밀의 정원 같이 은밀하게 동물들의 세계로 내가 잠입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선 나이트 사파리 외에 다른 것이 내 흥미를 이끌었다. 나이트 사파리는 싱가포르 동물원, 리버 사파리와 같은 지역에 있는데, 그 중 동물원은 그냥 일반 동물원과 다를바 없어 크게 감흥이 없었다. 싱가포르를 방문할 때마다 들렀던 나이트 사파리와 달리 동물원은 거의 들어가지 않았는데, 그 곳에 ‘레인포레스트 루미나’라는 빛과 조명으로 가득한 트레일이 생겨났다. 레인포레스트 루미나는 빛을 따라 걸어서 정해진 코스를 걸어갈 수 있는데, 곳곳에 홀로그램 영상이나 프로젝션 맵핑으로 자연에 색채를 더한 일종의 디지털 테마 파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관람객과 인터렉션하여 변화하는 화면의 모습을 통해 교감할 수도 있다. 내가 뉴미디어 전시를 접하면서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이런 부분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 그 위를 캔버스로 삼아 덮어씌워지는 프로젝션은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한번쯤 상상만 해봤던 것들이 펼쳐져 마치 동화 속, 혹은 꿈 속에 있는 것 같다. 일단 어두운 곳에 은은한 조명만으로도 분위기 먹고 들어가는데, 거기에 다양한 스토리가 담겨져 있다면.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탐방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다양한 동물들이 프로젝션 맵핑으로 등장하는 공간.


4.

팀랩. 1편에 아주 잠깐 언급했는데, 뉴미디어 전시를 하면서 팀랩은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다. 팀랩은 인터네셔널 미디어 아트 전문 그룹으로, 전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인터렉티브 전시를 펼치고 있다. 팀랩의 많은 프로젝트를 싱가폴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하나는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의 쇼핑몰 내부에 있는 샹들리에 같은 조명과 바닥의 거대한 원형 LED이다. 바닥의 LED에는 사람이 걸어다니면 해당 발자국을 따라 그림이 그려지고, 위의 샹들리에 같은 조명에는 색이 바뀌면서 모양을 만들어 마치 3D 홀로그램처럼 떠 있는 것 같은 연출을 한다. 

뻥 뚫린 실내 공간에 큼지막하게 자리잡은 미디어 아트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최근 오픈한 더 현대가 떠올랐다. 백화점이자 거대한 쇼핑몰로서, 식물원과 워터폴을 내부에 들여놨다는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놀라움을 주고 있지만, 나에게는 다소 아쉬움으로 남았다. 우선 워터폴을 만들어내는 위치에 심어진 나무는 신비롭고 동양적인 이미지를 준 것은 예뻤지만, 내가 기대했던 ‘개방감’에는 못미쳤다. 

약간 답답한 구조였던 더 현대. 아쉬움이 남는다.

마리나 베이 샌즈 쇼핑몰은 3층 정도의 규모가 전부 팀랩 전시를 사방에서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존재한다. 그리고 다른 길은 좁게 느껴졌다가, 해당 공간에서 확 하고 틔이는 반전감을 주는 반면, 더 현대의 워터폴은 그 것을 보기 위해서 사람들이 모여 있을 만한 공간이 없다. 실내에 거대한 분수와 나무를 들여 왔으면, 그것을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는 광장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싶다. 


5.

마지막은 한국에서도 현재 진행 중에 있는 팀랩 전시를 갔다. 여러 재미있는 인터렉션 전시 공간이 많았지만, 역시나 재밌는 건 내가 그린 그림이 스캔되어 넓은 바닷속을 헤엄치는 것을 보는 것. 즉각적인 반응, 다양한 사람들의 참여, 그리고 내 그림이 살아 숨쉬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 인터렉션 전시는 많은 것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뉴미디어 전시란 그런 것이 아닐까. 그 동안의 전시는 일방적으로 위대한 작가들이 그려낸 위대한 작품들을 관람객들이 바라보면서 그들의 영감을 우리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 주였다. 뉴미디어가 접목되면서 내 생각과 느낌을 반대로 전달하기도 하는, 우리가 작가의 입장이 되어 보기도 한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내 그림을 벽에 걸어보겠는가. 

내가 그린 거북이
바다 속을 헤엄치고 있는 내 우주 거북이.


6. 

싱가포르는 마지막까지도 뉴미디어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올 때는 친구와 함께 왔으나, 친구는 하루 전에 먼저 떠나고, 나는 하루 더 지내고 가기로 해서 돌아가는 공항에는 나 혼자였다. 터미널 4, 멍하니 바라본 벽에는 어디서 많이 본 미디어가 있었다. 팀랩 만큼이나 뉴미디어 전시의 레퍼런스 계의 노다지와도 같은 곳, Moment Factory의 미디어 아트였다. (참고로, 모멘트 팩토리는 이전 편에서 ‘레인포레스트 루미나’를 만든 곳이기도 하다) 얼핏 보면은 그냥 전시 모형 같은 벽에, 갑자기 몇몇 곳에 움직이는 무언가가 등장한다. 반전의 요소, 기다림의 미학을 만끽해야 하는 공항에서 멍하니 바라볼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 비행은 코로나 이전의 마지막 비행이 되어버렸다. 여행 가면 사진만 찍고 딱히 기록을 해두진 않았는데, 이젠 새롭게 쌓이는 여행이 아닌 과거의 추억으로만 곱씹어서 살아야 하기에 더 잊어버리기 전에 한두개씩 남겨보려고 한다. 사실 여행 기록을 쓴다는 것은, 꼭 특별한 주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산, 최초의 무동력 항해, 퇴사 후 1년 동안 세계여행기라던지 등의 거창한 타이틀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뭔가 어디 가는 곳마다 손에 땀을 쥐게하는 긴장감 넘치는 사건이라던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의 제법 로맨틱한 인연이라거나, 아니면 하다못해 그 흔하다는 유럽에서의 지갑 도둑맞은 썰이라던지. 여행을 제법 많이 다녔다고 자부하는 편이지만, 그런 엄청나게 대서특필 해가면서 공개할만큼의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남들이 다 가는 여행지, 그런데를 갔다. 파리에 갔으면 루브르를 찍는건 당연하고, 런던에 갔으면 런던 브릿지 앞에서 인증샷은 당연히 남겨야하는, 그런 지극히 평범한 여행. 그래도 내 인생을 돌아보는데 있어서 여행을 빼놓을 수는 없기에, 곰곰히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내 나름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혹은 여행지에서 느꼈던 생각들을 적어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알던 네가 아냐 : 뉴미디어의 도시_싱가포르 1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