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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Garden Jun 02. 2021

내가 알던 네가 아냐 :
뉴미디어의 도시_싱가포르 1편

지극히 평범한 여행 소감 기록 #.1

코로나 이전의 마지막 여행. 그곳은 나의 사랑, 나의 제2의 고향. 싱가포르였다. 내 생애 최초로 밟은 외국 땅이자, 유년기 3년을 보낸 곳. 아버지가 지금의 내 나이 즈음일 때, 첫번째로 발령난 해외여서 어머니는 갓 태어난지 100일이 된 나와 3살 위의 언니를 데리고 그곳으로 향했다. 당연히 나는 그 때의 기억이 없다. 희미하게나마 내가 기억하는 싱가포르는 5~6살 무렵 거주를 위해 다시 싱가포르를 찾았을 때부터다. 그 뒤로도 아버지는 거진 20년 넘는 세월 동안 싱가포르를 왔다갔다 하며 근무하셨고, 덕분에 내 여권에 가장 많이 방문한 나라로 도장 찍힌 곳이 되어버렸다. 

첫 해외 공항이자, 현재 마지막 공항이 되어버린 창이.

기억이 많아서 그런지, 나는 창이 공항에 발을 딛는 순간 남들이 말하는 ‘고향 냄새’를 맡는다. 깨끗한 공기, 혹은 텃텃한 퇴비, 비에 젖은 숲내음 이라던지 흔히 그렇게 묘사되는 고향이 아닌, 나는 창이 공항의 묘한 ‘에어컨 냄새’가 고향 같다. 그곳에서 수도 없이 많은 아버지와의 만남과 헤어짐을 겪었으니. 이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우선은 최근의 여행에 집중해보기로 한다.


다시 싱가포르로 향한 이유는 장기 해외 출장을 다녀오고 난 뒤, 긴 휴가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출장에서 틈나는 대로 여행과 쇼핑을 일삼았더니, 돈을 많이 쓰는 바람에 휴가 동안에는 집에서 그냥 쉬려고 했으나, 3일 이상의 시간이 있으면 무조건 떠나야 하는 습성은 버리지 못했다. 이렇게 긴 휴가에 아무것도 안하는 건 휴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 급하게 티켓을 예매했고, 급하게 정한 여행이라 따로 골치아프게 알아볼 필요도 없는 곳, 싱가포르로 정했다. 그때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막 기사화되기 시작한 2020년 1월 말이었다. 그렇지만 아직 한국 확진자는 없었고, 당시만 해도 크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터라 별 문제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냥 메르스처럼 이 또한 지나가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렇지만 이렇게 햇수가 넘어갈 줄 알았더라면 그 때 싱가포르가 아니라 어디 머나먼 나라를 갔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싱가포르가 내 인생 첫 해외 여행의 시작이자, 마지막까지 되어버릴 줄이야. 


이번 여행에서 느낀 건, 싱가포르란 나라는 굉장히 도전정신이 강하고, 다양한 시도를 한다는 점이었다. 내가 살았던 시절인 90년대 초중반, 그 이후 20여년이 지난 후 지금의 싱가포르를 비교해보면 정말 많이 달라졌다. 흔히 말하는 ‘라떼’만 해도 싱가포르에서 볼거리라고 하면 나이트사파리, 산토사 섬에서 즐기는 해수욕 정도. 지금 누가 싱가포르에서 뭘 해야 하냐고 물으면 인스타마다 나오는,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의 인피니티풀, 혹은 아바타에 나오는 곳 같은 식물원 ‘가든즈 바이 더 베이’ 같은 건 불과 몇년 사이에 지어진 건물들이다. 그리고 다양한 건축만큼이나 다양한 뉴미디어가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는 점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실제 뉴미디어 전시 회사를 다니면서 레퍼런스로 검색했던 수 많은 자료들이, 거의 대부분 이 나라에 전시되어 있었다. 예전이었으면 크게 의식하지 못했을 시각으로 싱가포르의 달라진 면을 보게 되었다. 


 내가 봤던 싱가포르의 미디어 아트 몇 가지를 기억을 더듬어 한번 적어본다. 


#Futuretogether - teamlab 전시

1.

가든즈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를 가던 길에 마주한 첫번째 뉴미디어 아트. 미디어 아트 그룹으로 유명한 팀랩의 작품이었다. (이 팀랩은 나중에도 얘기하겠지만, 싱가포르에 상당히 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강에 원형의 알 같은 조명이 수십개가 늘어져 있었다. 몇 개의 알은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 위에 있는데, 이것을 터치하면 강가에 떠 있는 것들의 조명 컬러와 사운드가 시시각각 변해서 다양한 시각적, 청각적 즐거움을 주고 있었다. 


#Futuretogether - Connectivity라는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은 우리는 보이지 않는 실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는 뜻으로, 작은 행동에도 세계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라 한다. 그 때엔 그냥 그렇구나, 하고 말았는데 코로나로 인해 너무나 달라진 세상에 문득 이 메세지가 다르게 다가온다. 아주 작게 시작했지만, 이제는 서로 너무 큰 영향을 받아버린 전 세계. 그 속에서 우리는 강제 헤어짐을 겪어야 하지만 서로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을 수는 없을 것이고, 여전히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성숙한 세계 시민 의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가든즈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 슈퍼 트리


2.

가든즈 바이 더 베이의 슈퍼 트리의 조명은 저녁 7시 45분 이후가 되어야 가장 화려한 빛을 발한다. 7시가 넘어갈 때 즈음, 주변에는 바닥에 털썩 털썩 주저 앉는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늘어난다. 종종 아예 등까지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다 45분이 되면, 웅장한 음악 소리와 함께 조명 쇼가 시작된다. 이 시간에 맞춰 다리 위로 올라가려는 사람들도 늘 긴 줄을 서 있다. 어떻게 보면 건축 효율면에서는 최악인 곳이다. 이곳에 카페나 음식점들을 깔았으면 대박이 나고도 남았을테지만, 싱가포르는 그 거대한 공간을 비워두고 마치 영화 ‘아바타’를 연상케하는 슈퍼 트리를 건설했다. 식물원에 입장하거나 나무 위로 올라가려면 입장료가 필요하지만, 굳이 없어도 조명쇼는 감상할 수 있다. 따라서 저 건물을 지은 자금에 비해 당장 얻는 수익은 적을지언정, 장기적으로 끊임없이 관광객을 불러모으고 랜드마크로서 자리매김 하게 된다면 분명 그만한 가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가끔 서울에도 이런 공간이 있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식물원 같은 카페’는 검색하면 수도 없이 많이 나오지만, 이런 큰 규모에 예술성을 겸비한,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바꿀 수 있는 그런 건축 공간은 부족한 것이 내 느낌이다. 당장 눈 앞의 이득이 아닌 몇년, 몇십년을 내다보았을 때 관광객이 ‘이거 하나 보러왔다’라고 느낄 만큼의 대단한 건축이 탄생하기를 바라본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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