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나, 엄마가 되었다.

조금 늦은 첫인사

by 자몽씨

스무 살 때부터 입버릇처럼 해오던 말이 하나 있습니다. “나는 서른 살에 결혼할 거야.” 사람들은 나이까지 정확히 말하는 제 미래계획을 신기하게 듣곤 했습니다.


10대 시절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고, 무엇을 하든 늘 보모님의 동의서가 필요했죠. 그 점이 제게는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고, 하루빨리 스무 살이 되기만을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성인이 되는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부모님의 보호를 떠나 오롯이 제 선택과 책임으로 살아가는 ‘나의 인생’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했어요.


드디어 ‘내 인생’이 시작되었는데 결혼을 일찍 해버리면 마치 내 인생이 줄어 버리는 것 같잖아요. 그래서 최소한 10년은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가 아닌 ‘온전한 나’로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던 거죠.


그래서 웬만한 건 다 해봤습니다. 하고 싶은 건 마음껏 했어요. 밤새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생전 처음 클럽도 가보고, 배우고 싶었던 것들도 이것저것 배워보기도 했어요.


또 하고 싶었던 장사도 해보고, 카페, 빵집, 서빙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도 하고, 사고 싶었던 비싼 전자기기도 망설이지 않고 샀어요.


그리고 두근두근 설레는 첫 연애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제 20대의 삶에 후회가 없어요. 정말 해보고 싶었던 건 다해봤다고 말할 수 있거든요!






어느덧 즐거움이나 설레는 기대감보다 안정적인 삶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스물아홉.


그 해 어느 날, 부모님을 보는데 많은 생각이 드는 겁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자식 셋을 뒷바라지해야 하는 부모님의 고단한 삶이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나부터라도 독립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년째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제가 먼저 말했어요. “우리 결혼하자!” 상남자처럼 말이에요.(웃음)


그때의 저에게 결혼은 누군가와 평생을 약속하는 낭만이기보다는 독립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수단이었습니다.


그렇게 결혼을 입버릇처럼 말한 ‘서른’에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준비를 하던 때만 해도 모든 게 벅차기만 했습니다. 눈 감고 일어나면 모든 게 다 끝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어요.


그런데 이보다 더 큰 산이 있었어요. 바로 ‘출산!’


출산이라는 건 결혼과는 또 다른 세계의 이야기더라고요. 이전에 살아오던 삶의 연장이 아니라 전혀 다른 인생의 ‘새로운 시작점’ 같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이 새롭고 어렵고 낯설었어요. 출산 준비 리스트는 생소한 단어들 투성이라 감이 전혀 잡히지 않았고, 결국 인터넷으로 하나씩 검색을 해야만 알 수 있었어요. 거기에 준비해야 할 것들은 산더미라 처음에는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답답한 마음에 신랑에게 짜증과 승질을 부리기도 했죠. 신랑은 제 모든 짜증을 받아주며 차근차근하자며 달래주긴 했지만, 집안일에 관한 모든 것은 모르면 가장 먼저 저를 찾는 사람인지라 믿음이 안 가더라고요.


그런데 웬걸? 의외로 신랑이 적극적으로 참여를 해줘서 아기용품을 빠르고 무난하게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출산휴가를 받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아기용품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분명 휴가인데도 집에서 쉬기는커녕 오히려 더 바쁜 날들이 많더라고요.


이미 어느 정도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본격적으로 아기를 맞이할 준비를 해보니 해야 할 일들이 태산이더라고요.






37주에 검사를 받으러 갔더니 자연분만을 하기엔 제 골반 크기가 애매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골반이 작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확인사살을 받게 되다니 씁쓸..)


그래도 다행히 아기 머리가 크지 않아 자연분만을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38주 차에는 아기가 갑자기 폭풍성장을 하는 바람에! 담당선생님께서 깊은 고민에 빠지셨어요.


몸무게와 머리 크기를 생각하면 당장 며칠 안에 출산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하셨지만, 경부길이가 아직 길어 유도분만을 진행해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곤 돌아오는 일요일 바로 입원을 진행하자고 하셨죠.



39주가 되던 일요일,

출산가방을 들고 신랑과 함께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저녁 7시 30분에 도착해 검진을 받고, 저녁 10시부터는 금식을, 다음날 새벽 4시부터 유도분만을 준비한다는 계획을 들었어요.


왠지 금식을 해야 한다고 들으니 그전에 뭔가라도 먹어둬야겠다 싶더라고요!


10시까지 남은 시간은 15분.


신랑이 황급히 사온 컵라면과 고소한 땅콩샌드, 상큼한 오렌지주스로 행복한 마지막 만찬을 즐겼습니다. (나중에서야 이 야식이 얼마나 소중한 한 끼였는지 깨닫게 되는데요. 금식의 기간이 생각보다 꽤 길었어요.)


배는 든든하게 부른데, 잠은 오지 않는 깊은 밤.


“따르릉” 전화 소리가 울립니다. 드디어 새벽 4시가 되었나 봐요. 주섬주섬 핸드폰과 필요한 것들을 챙겨 문 밖을 나섰습니다.


모두가 깊은 잠에 든 시간인지라, 검진실로 내려가는 그 길은 정말 조용하고 차분했어요. 한가득 긴장을 품고 도착한 검진실엔 마치 ASMR을 듣는 것처럼 나근나근하고 조용하게 말씀하시는 간호사님이 계셨는데, 덕분에 긴장을 조금 풀 수 있었어요.






간단한 검진을 받은 후, 유도분만을 위해 촉진제를 맞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생리통처럼 사르르 아프긴 했지만 그리 고통스럽진 않았어요.


저는 이게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고 “참을만한데요?”라며 천진난만하게 말했죠. 알고 보니 아기는 하나도 내려오지 않았고, 제 자궁경부길이도 줄어들지 않아 통증이 크지 않았던 거였어요.


짐볼에 앉아 알려주신 운동을 한참을 해도 경과가 없어 오전 9시쯤 담당선생님께서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하루를 더 지켜볼지 아니면 지금 제왕절개 수술을 할지 고민해 보고 알려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꼭 자연분만을 고집하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큰 고민 없이 수술을 선택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양수도 많이 줄어든 상태였고, 아기도 많이 커져 있음에도 내려오지 않아 자연분만을 계속 고집했더라면 조금 위험할 수도 있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오전 11시 30분,

수술실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난생처음 들어가 본 수술실은 차갑고 서늘한 분위기였어요. 베드에 눕는데 긴장감이 확 밀려오더라고요. 무서웠어요.


게다가 마취가 잘 퍼지지 않아 그 차가운 수술실에서 마취과 선생님과 꽤 오랜 시간 호흡을 하며 마취가 퍼지길 기다렸습니다.


마취가 모두 퍼지고 나니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들어오셨어요. 걱정 말라는 말씀과 함께 수술을 시작하셨는데, 기분이 참 이상한 게 사람들의 대화는 들리는데 통증이 없으니 사람이 어안이 벙벙해지더라고요.


그렇게 눈만 말똥말똥 뜬 채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다시 긴장감이 올라오면 깊은숨을 내쉬며 수술이 잘 마무리되기만을 기다렸어요.






“(쿨럭) 응애 응애!!”


곧이어 파란 천 너머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어요. 그런데 예상과 달리 울음소리가 힘차지 않아 적잖이 당황했어요.


목에 사레가 들린 듯 쿨럭거리며 울었거든요. 드라마에서 보던 힘찬 “응애~!”가 아니었어요. 걱정이 잠시 들던차 마치 목에 걸렸던 사레가 뚫리듯 힘찬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그 순간 제 눈에서도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렀습니다.


그건 기쁨도, 행복의 눈물도 아닌 그저 세상에 무사히 나와 주었다는 안도감에서 흘러나온 눈물인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는 제게 다가와 갓 태어난 아기를 보여주셨는데, 저는 그저 멀뚱멀뚱 신기하게 아기 얼굴을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보통의 엄마들은 환한 웃음으로 아기의 태명을 부르며 맞이해 줬겠지만, 저는 마치 남의 아기를 보듯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한 거죠.


믿기지 않았어요.

내가 임신을 했고, 열 달을 품어온 아기가 지금 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속으로 ‘나는 정말 엄마가 맞는 걸까?’라는 생각도 잠시 스치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환한 미소로 아이에게 첫인사를 건네지 못했던 것이 정말 미안해요.






그렇게 저는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고, 후처치가 끝난 뒤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때 신랑이 수술실 안으로 들어왔는데, 저를 보자마자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쫄보인 제가 혼자 수술실에 들어가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 많이 걱정됐던 모양이에요.


신랑은 아기를 보며 정말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저는 여전히 멀뚱멀뚱한 표정이었어요.(웃음) 아마 수술실에 계셨던 선생님들도 ‘무슨 이런 엄마가 다 있나?’라고 생각하셨을지도 몰라요.


제왕절개를 하고 나서는 배가 정말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금식은 이틀간 이어졌고, 가만히 누워있는 상태에서 다리를 한 번 움직이는 것조차 고역이었어요.


너무 아파서 꿈쩍도 못하고 그저 가만히 누워 있어야만 했죠. 손목에 꽂아둔 혈관바늘은 또 왜 그렇게 불편하고 아프던지요. 배가 아픈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었는데 그 바늘 때문에 더 불편하고 괴로웠어요.


다음날이 되자 간호사님께서 산모님 스스로 움직여야 회복이 빠르다며 조금씩 몸을 움직여보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도무지 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상체를 일으켜 세우는데만 무려 40분이 걸렸습니다.


게다가 배는 고픈데 여전히 금식 중이라 옆에서 신랑의 먹방만 그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어요. 신랑은 병원밥 삼시 세 끼는 물론 야식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으며 밥지옥이라며 그만 먹고 싶다고 하는데, 제 귀엔 어찌나 배부른 소리로 들리던지요.






그런 저에게도 드디어 첫 끼가 허락됐습니다.


미음과 간장이 나왔는데 와.. 정말 맛이 없더라고요.(웃음) 그야말로 살기 위해 먹었습니다. 그다음 끼니로는 흰 죽이 나왔는데, 물김치가 함께 나와 그나마 먹을만했어요. 물김치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죠.


이후에 일반식이 나왔는데 정말 쌀 한 톨, 야채 한 조각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었습니다. 그렇게 밥도 잘 챙겨 먹고 느리지만 스스로 움직이려고 계속 노력하다 보니 3-4일 차쯤에는 몸이 꽤 많이 회복됐다는 게 느껴졌어요.


몸이 조금씩 회복되면서 정신도 서서히 돌아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제야 정말 내가 출산을 했다는 사실이 실감 났고, 찾아와 준 아기를 바라보며 진심으로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너무 작고 소중한 존재가 어두운 뱃속에서 꼬물꼬물 자라나 이렇게 세상에 나와주었다는 게 그저 신비스럽고 감사한 순간이었어요.


눈, 코, 입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며 누구를 닮았을까 찾아가는 것도 재밌고, 면회시간 창밖너머로 아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벅차고 행복했습니다.






지금은 아기가 세상에 태어난 지 14일째가 되는 날입니다.


이제 제법 표정도 다양해지고 눈도 잘 떠요. 가끔은 씨익 웃기도 하는데 밥을 먹다가도, 자다가도 웃는 걸 보면 대체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건지 궁금하면서, 제 얼굴에도 절로 행복한 미소가 지어집니다.


세상에 태어난 첫 순간 따뜻하게 맞아주지도 못했고, 수유조차 아직 서툴기만 한 엄마지만.

엄마에게 찾아와 줘서 고마워. 사랑해 우리 아가.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