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mmer Oct 26. 2023

그렇게 아버지가 되었다.

『개인적인 체험』오에겐자부로 세계문학 읽고쓰기18

그렇게 아버지가 되었다     


『개인적인 체험』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을유문화사(2009년)            


타고난 부모란 없다  

오에 겐자부로는 1935년 일본 시코쿠 에이메현의 유서 깊은 무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고, 사르트르에 큰 영향을 받았다. 도쿄 대학 불문과 졸업논문이 「사르트르 소설에 있어서의 이미지에 대해서」였을 만큼 심취해 있었다. 사르트르라면 그 유명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말을 남긴 철학자이다. 사르트르는 이 말의 의미를 ‘인간이 먼저 세계 속에 실존하고 만나진다는 것, 그리고 인간이 정의되는 것은 그 후의 일이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인간은 본질에 있어 태어난 의미를 가진다는 보편적이고 종교적인 신념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말이다. 사르트르에 빗대어 『개인적인 체험』을 읽고 난 한줄 감상을 말해보겠다. 타고난, 훌륭한 부모란 없다. 부모는 나중에 정의되어지는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버드’라는 책임감 없는 한심한 청년이 아버지로 거듭나는 성장 소설이다. 그렇다고 부성애 가득한 감동의 카타르시스를 기대해선 안 된다. 주인공 ‘버드’의 찌질함은 끝까지 한도초과인데다, 성장으로 가는 과정은 기괴하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내는 장면도 개운치 않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뒤, 나는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버드와 나는 닮은 꼴’이라고. 나만이 아니다. 누구라도 버드에게서 자신의 조각을 발견할 수 있다. 막연한 불안, 과도한 자의식, 성적 수치심, 열등감, 회피, 퇴행 등 한때 오줌싸개였음을 알 수 있는 자국들이 우리에게도 아직 남아있다. 버드가 아직 어릴 때 별명인 새(Bird)로 불리는 까닭은 오줌싸개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위스키여자 그리고 아프리카.       

누구든 코너에 몰리게 될 때가 있다. 조그만 구멍이라도 있다면, 시궁쥐가 되어서라도 들어가 숨고 싶을 때, 버드가 지금 그 신세다. 버드는 27세의 입시 학원 강사다. 대학원생 신분으로 교수의 딸과 결혼하였으나 학업도 취업도 지지부진 하여 장인의 도움으로 입시 학원 강사자릴 얻었다. 결혼 후 무려 700시간 동안 취해 있는 망나니짓을 벌이기도 했다. 버드는 위스키 지옥에 빠져 있었던 이유를 몰랐다지만, 빤히 보인다. 책임을 져야하는 일, 즉 결혼이 주는 무게감을 피해 술독에 들어간 것이다. 이 취약한 남자에게 일이 생겼다. 방금 태어난 아이가 뇌 헤르니아라는 희귀병으로 식물인간 되거나, 곧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의 손에는 다시 조니워커가 들려있다.      


알코올은 지금 그의 온몸의 수많은 모세혈관의 구석구석까지 퍼져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버드 내부의 연분홍빛 어둠과 외부 세계 사이의 압력 관계에 균형이 찾아왔다. 물론 그것이 오래가지 못하리라는 것은 버드 자신이 잘 알고 있었지만 (p.81)    

  

위스키가 선물한 균형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과음 탓에 학생들 앞에서 구토한 그는 평소 그와 학원에 불만이던 학생이 제기한 자질 논란을 잠재우지 못해 해고됐다.      


대학 동창 히미코를 찾아간 그는 그녀와의 관계에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성적 쾌락을 되찾게 된다. 장애아를 낳음으로 버드에게는 섹스와 수치심이라는 연결 고리가 생겼다. 그 고리를 끊어낼 전략을 구체적으로 세우고 실행하는 히미코. 그녀는 과연 아군인가 적군인가?     

 

버드, 공포심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을 정확히 한정함으로써 공포심을 고립시켜야만 하는 거야. (p.143)      


실제 우리의 삶에서 히미코식 테라피가 시궁창에 빠진 버드와 같은 사람을 구조해낼지, 아니면 색과 향기가 다를 뿐 더럽기는 마찬가지인 또 다른 우물에 빠지게 할지는 모른다. 후자에 가깝다고 믿지만, 어쨌든 버드는 강한 위로받았다.      


(성교 후) 버드 자신은 깊은 평안의 감정으로 가득 차 심리적인 천착 성향으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버드는 감사의 감정 속에 있었다. 굳이 히미코에 대한 감사라고 좁게 한정하기보다 버드를 둘러싼 가혹한 함정투성이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그가 발견할 수 있었던, 결코 오래가지는 않을 이 평안에 대한 감사.(p.148)      


버드가 여자와 술에 의지해 있는 그 시각, 아기는 병원에서 굶어 죽어가고 있다. 버드와 의료진은 아기의 영양공급을 최소화하여 쇠약사하길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버드는 두렵다. 아기가 죽으면 해결될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아기를 방치한 자기기만의 독에 빠져 스스로 붕괴해 버릴 것이다. 아이가 살아나면, 식물인간이 되어 평생 그의 발목을 잡을 것이고, 죽는다 해도 그의 삶은 붕괴될 것이다. 딜레마에 갇힌 버드! 아아, 이 가엾은 작은 자! 히미코는 아이를 죽이고 버드의 오랜 소망의 땅, 아프리카로 함께 떠나자고 꼬드기고, 버드의 부인은 아이가 죽는다면 이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난 이제 도망치는 건 그만 둘래            

히미코의 위로에도 버드는 죽어가는 아기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버드에게 유일한 탈출구였던 아프리카 상상도 도움이 안 된다. 그의 신경은 온통 아기에게 쏠려 있다. 히미코는 버드를 위해서인지, 자신을 위해서인지 모르지만 아기의 죽음에 적극적이다. 은밀하게 아이를 죽일 수 있는 병원으로 버드를 안내한다. 버드는 즉흥적으로 아이의 이름을 짓는다. 그 이름은 기쿠히코. 버드가 불량학생이던 시절 함께 했던 후배의 이름이다. 몇 해 전 낯선 도시에서 사람 찾는 일을 맡게 된 버드와 기쿠히코, 유약했던 기쿠히코는 집으로 돌아가자고 졸라댔다. 사람 찾는데 심취해 온힘을 쏟고 있던 버드는 화가 났다. 두려워하는 기쿠히코를 내팽개치고, 기쿠히코가 동성애자임을 폭로해버렸다. 그 사건 이후 버드는 불량소년 생활을 청산하고 제대로 된 삶을 살아보려 대학에 진학했던 것이다. 버드와 히미코는 게이 바 주인이된 기쿠히코를 찾아간다.      


“버드가 그날 밤 기쿠히코를 버리지 않았더라면 기쿠히코는 호모 섹슈얼도 되지 않았을까?” 하고 히미코가 주제넘게 물었다. 버드는 곤혹스러워 기쿠히코에게서 눈길을 거두었다. “호모 섹슈얼한 인간이란 동성애를 실행하기로 마음먹은 인간이다, 라고들 하잖아? 나 스스로 그것을 선택한 것이니 책임은 다른 누구에게 있는 게 아냐” 하고 기쿠히코가 상냥하게 말했다. (p.268)     


비록, 하강을 거듭하여 게이 바에 기어들어와 있지만, 자신의 선택에 분명한 책임감을 갖고 있는 기쿠히코를 보며 버드는 그가 예전의 단순한 기쿠히코가 아님을 발견한다. 기쿠히코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버드.      


나는 아기 괴물에게서 수치스런 짓들을 무수히 거듭하여 도망치면서 도대체 무엇을 지키려 했던 것일까? 대체 어떤 나 자신을 지켜 내겠다고 시도한 것일까? 문득 기가 막혔다. 답은 제로였다.(p.270)      


그렇게 아버지가 되었다     

내가 버드 나이일 무렵, 그와 마찬가지로 내 인생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때 나는 스펙을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대학 4년간 배운 것은 별로 없고, 학자금 대출만 남았다. 문송(문과라서 죄송)인데, 어학연수를 못 다녀와 내내 속상했다. (한창 유행이었다.) 영어도 못했고, 무엇보다 마음이 가난했다. 어느 날 라디오를 들었다. 비슷한 처지의 30대 초반 여성의 사연이었다. 그 여자는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가족이 발목을 잡았고, 낮은 자존감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그렇기에 연애가 힘들어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하소연했다.       

상담사가 말했다. “종종 서른 넘어서까지 과거에 이런 일이 있어서, 가족이 이래서, 지금의 내가 자신감도 없고 패배의식에 젖어있다. 이런 고민이 올라와요.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더 이상 남의 탓, 과거 탓을 하지 말고 본인이 적당히 해결하자‘고 말하고 싶어요. 나를 핸들링 하는 것은 나의 문제인 거예요. 영어로 딱 맞는 표현이 있어요. Just deal with it. 그냥 받아들여. 또는 니가 좀 알아서 처리해. 라는 뜻이에요.” 

     

직구로 날아든 상담사의 말은 가차 없이 내 뒤통수를 갈겼다. 도망가고 싶고 핑계대고 싶을 때 마다 스스로를 각성시킨다. just deal with it.       


버드는 아기의 눈동자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려 했던 것이다. 아기 눈의 거울은 말갛게 개인 깊은 회색으로 버드를 비추어 냈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미세하여 버드는 자신의 새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먼저 거울을 보아야지, 하고 버드는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 버드는 데르체프씨가 표지에 ‘희망’이라는 낱말을 써주었던 발칸 반도의 조그만 나라의 사전에서 맨 먼저 ‘인내’라는 낱말을 찾아볼 작정이었다.(p.276)      

버드는 결국 아기를 지켜냈다. just deal with it을 해냈다. 그는 이제 누군가의 눈에 비친 자신이 아니라 거울 속 자신을 본다. ‘인내’라는 아버지로서 가져야할 마음가짐도 알게 되었다. 버드는 그렇게 아버지가 되었다. 


※ 이 책을 언급함에서 오에 겐자부로의 문장의 매력을 빼놓을 순 없다. 장면의 묘사가 강력했던 교실에서 구토하는 버드와 백개의 파리 대가리는 영화 속 장면처럼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금 우리는 시간의 폭풍을 지나가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