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비겁해지지 않기로 했다

내 동생의 기일을 앞두고

by 차시하

한참 취재를 하고 있는데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초코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고 했다. 나는 울지 않았다.

대신 하던 일을 끝까지, 오히려 더 꼼꼼히 마무리했다. 해야 할 일을 끝내고서야 고민이 시작됐다.


반차를 써야겠는데, 뭐라고 해야할지 몰라 휴가 사유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가족상’이라고 쓰기엔 법적으로 가족이 아니고, ‘개가 죽었다’고 쓰자니 내가 너무 유별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반차를 쓰지 못했다. 그날 근무를 다 끝내고서야 초코를 만났다.


거실 소파위에 있는 큰 상자안에 초코가 누워있었다. 가족들이 모여 눈물을 훔쳤다. 함께 지내던 강아지 꼬맹이가 오더니 이상한지 손으로 툭툭 쳤다. 일어나라고 하는거 같았다. 그날밤 꼬맹이는 초코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려는듯 상자 옆에 붙어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약속을 앞두고 나는 또다른 고민에 직면했다. '가족 같은 개'라고 해야할까, '13년을 함께한 개' 라고 해야할까. 갑작스런 약속 파토를 설명할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초코와 함께한 나의 학창시절이 주르륵 지나갔다. 엄마가 아는 분 집에 놀러갔다가 데려온 갈색 코커스파니엘은 3개월밖에 안된 새끼강아지였다. 과외선생님 구두 망가뜨린날, 식탁위 치킨을 먹어치워 놀라 안고 병원으로 뛰어간 날, 열린 현관문 틈새로 나가서 계단위로 올라가는걸 뛰어올라가 잡아온 날...아찔했지만 지나고 보니 다 추억으로 남았다. 속상한 일이 있어 울면 눈물을 핥아주고 매일밤 내 품에 파고들어 자던 초코는 분명 내 동생이었다.


친형제가 죽었다면 그냥 그 말 한마디로 끝일텐데. 나는 단어를 고르고 고르다 결정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울먹이며 "우리 개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며 양해를 구했다. 상대방은 이해하는듯 위로했지만 이해 못해도 상관없었다. 유난떤다고 해도 별수없었다. 우리 개는 가족이니까. 가족이 하늘나라에 갔으니까 갈 수 없는게 당연했다.


그러고도 나는 두 마리의 개를 더 떠나 보냈다. 두 번의 이별을 더 겪으며 나는 깨달았다. 반려견과의 이별은 단순히 아이 하나를 보내는 일이 아니라, 미안함과 죄책감을 쌓는 일이라는 것을.


요즘 나는 초코를 보낸 날을 생각한다. 그날 바로 내가 그 아이를 병원에서 데려올걸. 왜 나는 용기를 내지 못했을까. 이후 보낸 두 아이가 아플때 조금 더 함께 할걸. 왜 일하느라 시간을 더 못냈는지.


얼마전 친구가 우리집 반려견 얘기를 듣다가 눈물을 보였다.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가 입원해 있는데, 바쁠때 못 챙겨줘서인거 같다고 자책했다. 그럼에도 함께 하지 못하고 일을 해야한다는 사실에 힘들어했다.


이후 절대 내 인생에 반려견은 없다던 내가 또 개 한마리를 키우고 있다. 엄마 아빠와 살때 세마리를 키웠고 분가 후에 키우는건 처음이라, 제대로된 육아는 처음이라고 해야 맞겠다.


갈 데가 없던 아이를 '임시보호'라는 이름으로 데려다 키우기 시작한게 벌써 2년째다. 내 삶은 달라졌다. 일 중심에서, 일과 개 육아 중심으로. 돌볼 대상이 생기다보니 내 생활에도 질서가 생겼다. 나를 잡아준 이 아이를 위해 나도 시간을 쓰고 싶어졌다.


벌써 나의 첫 동생, 초코를 보낸지 10년이 넘었다. 내 스마트폰 캘린더엔 얼마뒤 초코 기일이라는 알림이 떠있다. 그 사이 사회도 많이 바뀌었고 사람들의 반려견을 대하는 인식도 달라졌다.


요즘 부쩍 육아 휴직과 출산 휴가, 돌봄 휴직 등 가족과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제도도 많이 생겼다. 사회는 육아와 돌봄을 말하며 휴직을 권한다.


그런데 과연 이 아이는 그 '돌봄'의 테두리 안에 있을까? 이제 나는 더 이상 비겁한 주인이 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