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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un 04. 2020

이식의 기쁨과 슬픔


1.
당직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뇌사자 간이식 소식이 전해져왔다. 간은 다른 병원에서 가져오고 수술은 저녁 7시쯤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늘 그렇듯 몇시간 후엔 저녁 8시쯤 시작할 것이라고 연락이 오고, 예정 시작시간은 점점 늦어져갔다.


' 밤 10시쯤 시작하고 새벽 5시쯤 끝나겠네. 밤을 꼬박 새겠구나...'

피곤한 건 싫지만. 그래도 이식수술은 가치있게 느껴져서 기분이 좋다. 한 사람의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함께하는데 피곤정도야 뭐 :)



뇌사자 간이식은 받을 사람의 건강 상태가 안좋은 순서대로 배정되기 때문에 대체로 환자 상태가 매우 안좋아서 이래저래 걱정이 되긴 한다. 드물지만 수술중에 심장이 멈추기도 하고 피가 많이 나는 일도 생기고..


보통은 상태가 너무 안좋아 입원해계시던 분들을 하게되는데 오늘은 차트를 열어보니 모처럼 집에 계시던 분을 응급실로 불러 검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지며 이 분은 어떤 기분이실까. 생각하니 미소가 지어졌다.


나랑 몇 살 차이나지 않는 걸 보니 아마도 부모님에서 시작되었을 수직감염. 젊고 지금 상태도 좋으니 잘 끝나서 또 건강하게 살아가실 수 있겠지.



오후 5시쯤.
간 떼러 비행기 타고 갔다던 팀에서 전화가 왔다. '간이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이식을 못할 것 같아요' 하고.



환자의 차트엔 언제나 사실만 적힌다.
"뇌사자 간이식 예정으로 내원하셨으나, 이식할 간 상태 좋지 않아 검사 중단하고 집으로 귀가"


얼굴도 모르는 분이지만 갑자기 모든 검사가 중단되고 늘어뜨린 어깨로 집에 가실 모습이 상상되어 슬프다.




2.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왜인지 장기이식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주로 기쁨의 순간으로 사용되었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아.. 장기 기증자의 가족에겐 너무도 슬픈 날인데..' 하는 생각이 든다.

어디선가 간이나 심장만 "짜잔~ "하고 나타날 수도 없고, 모든 죽는 사람이 결심한다고 장기기증을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장기기증을 할 수 있게 죽으려면 다른 장기가 다치지 않고 뇌만 죽는 상황이 되어야하기 때문에 대부분은 갑작스러운 죽음들이다.

알지 못하고 지내던 젊은이의 질환에 의한 급사, 이런 저런 사고들, 예상하지 못했던 죽음들..


갑작스런 죽음에 슬피우는 가족들의 큰 결심인 장기 기증의 순간이 '다행'이나 '운이 좋다'같은 말로 그려질때마다 어느 병원에 있을지 모를, 수술실 문 밖의 기증자의 가족이 들을까봐 깜짝 놀란다.


드라마지만, 그래도 기쁨은 조금은 조용히 표현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기증자의 마지막.
얼음이 몸안에 부어지는 순간을 보고 서서히 멈추는 심장을 보며 조용히 인공호흡기를 끄고 나가는 마취과 의사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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