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을 주장하는 글 이후로 6년이 지났다. 기린을 좋아한다고 호기롭게 주장하던 26살의 나는 어엿한 30대가 되었고 그 사이에 나도 세상도 참 많이 변했다.
먼저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대학원 석사과정생에서 연구원으로 나를 소개하는 명칭이 조금은 사회인다워졌다. 서울을 떠나온 탓에 운전을 시작하기도 했다. 햇수로 5년의 경력을 쌓아오는 동안 단 한 번의 사고도 내지 않은 것이 자랑이라면 자랑이지만, 최근 운전이 과감해졌다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으니 이 자랑이 언제까지 유효할지 모르겠다. 6년 전 아침 수영에 중독되어있던 나는, 요즘 테니스에 푹 빠져 정신을 못차린다. 한 여름 그늘 하나 없는 코트에서 살이 바싹 익어가도 마냥 좋았다.
세상이 변한 것에 비하면 나의 변화는 별 것도 아니다. 기린을 좋아한다던 글 하나만으로도 작가가 될 수 있었던 6년 전에 비하면, 요즘은 작가 신청을 거부당하는 일마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연히 나에겐 꿀이다. 옆집의 누구는 사랑때문에, 또 누구는 대출때문에 눈문을 흘리고 있다는데, 그게 꼭 나의 얘기처럼 들린다. 친구들을 만나면 주식과 코인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데, 이상하게 내가 사는 종목은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올 초에 사주팔자를 보니 주식으로 흥할 팔자가 아니라고 한다. 사주를 더 일찍 볼 걸 그랬다.
서두가 길었지만, 나도 세상도 이렇게 변하는 사이에 나는 아무런 문장도 쓰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최소한 몇 백 페이지가 넘는 연구보고서를 썼을텐데, 왜 나는 나에 대해서 글 쓰기를 멈췄을까. 명쾌한 답을 내리기 어려웠다. 그래서 반대로 물어보기로 했다. 나는 언제- 왜-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처음 나 스스로 문장을 끄적이기 시작한 때는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봄이었다. 이웃집 토토로가 그려진 다이어리 왼쪽편에 그 날의 공부 목표를 적었고, 남는 오른 편에 그 날의 마음을 끄적였다. 돌이켜보면 예민한 수험생이었던 나를 1년 간 버티게 해준 건 그 손바닥만한 다이어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의 나는 어른이 된 나는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지, 누구를 만날지, 그리고 어떤 사랑을 하게 될지- 모든 것이 궁금했다.
몇 년 후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점은 대학교를 휴학하고 베트남으로 떠날 즈음이다. 대학교 3학년 2학기 첫 번째 수업(아마도 노동경제학)을 수강하고 나오는 길에 나는 학과 사무실에 들러 충동적으로 휴학을 결심했다. 숙제처럼 주어진 공부를 하는 것이 더 이상은 즐겁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달 뒤 나는 베트남 호치민으로 떠났다.
가볍고 지루한 일상을 떠나, "나는 커서 뭐가 될까?" 라는 고민 하나를 안고 내가 없었던 곳으로 왔다.
(썸머, 2013.11.09.)
휴학을 하고, 베트남에서 지내던 그 시기의 나는 1년 동안 총 62개의 글을 블로그에 업로드하며 무언가에 홀린 듯이 글을 썼다. 오늘의 날씨, 주변 사람들, 나의 마음, 어디에서든 별의 별 글감을 다 찾았다. 베트남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와서 대학교 생활을 마무리지을 때까지는 한 편의 글도 쓰려하지 않았다. 그러다 석사 공부를 시작하며 어떤 이유에서인지 다시 잠시 글을 썼는데, 오래 가지는 못했다.
결론을 내었다. 나는 무언가를 도전하고자 할 때, 글을 쓴다. 정확히는 글을 써야만 하는 사람이 된다. 글을 쓰고 몇 번을 고치고, 완성된 이후에 다시 읽어보면서 글을 쓰던 나의 마음과 감정에 더 자극받는다. 글을 몇번이고 고치고 다시 읽는 동안 나는 내 마음에 설득당한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다시 글을 쓰려고 하는 것은, 내 인생에서 무언가가 달라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확신 때문일 것이다. 배우는 즐거움, 연구주제를 찾고, 기꺼이 작품을 완성하는 것에서 오는 성취감을 다시 느끼고 싶다. 그래서 나는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다는 불안함과, 실패에 대한 막연함에 자다가도 문득문득 잠에서 깨지만,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고군분투할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다시 내일을 맞이한다.
"가슴이 떨릴 때 해야한다. 나중에는 다리가 떨려서 못하니까"
다 키웠다고 생각했던 큰딸의 철없는 도전을 그 누구보다 가장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우리 아빠의 명언이다.
아직 서른 하나밖에 안된 나는 다리도 짱짱하고, 썩 아쉽지만 잃을 것도 별로 없다.
나는 유학을 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나를 설득하고자 6년 만에 키보드를 다시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