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가 되기 위해 동사에 집중한 시간들

엄민정 작가, <작가선언>

by 송지영

책 중에는 유난히 깊게 빨려드는 책이 있다. 작가의 삶의 궤적이나 특정 시기의 공기가 독자의 기억과 맞물릴 때다. 낯선 타인의 문장이 어느 순간 내 체험의 언어처럼 읽히는 순간, 독서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재현이 된다.

<작가선언>을 읽으며 그런 경험을 했다. 남편의 일을 따라 타국에 정착하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에는 지나치게 협소한 환경을 견디며, 다시 ‘나’라는 존재를 되찾아가는 이야기. 나 역시 비슷한 시간을 통과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아내와 엄마라는 자리, 사회의 기대와 스스로 바랐던 삶 사이에서 자기답게 살아가기로 한 결심의 기록이다. 엄민정 작가는 이상을 품기에는 막막했고 현실을 견디기에는 미숙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덮어둘 수 없어서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작가는 남편의 일을 따라 상하이에 정착한다. 2020년, 그곳에서 코로나를 겪으며 자유를 빼앗긴다는 것이 무엇인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책은 개인의 체험을 넘어 인간이 자유라는 조건 속에서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묻는 기록으로 확장된다.

나 역시 같은 시기 남편의 주재원 부임으로 두 번째 해외 생활을 하고 있었다. 2019년 12월, 아이들과 런던에서 한 달살이를 한 뒤 한국에 머물다 중국으로 들어가려던 때였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는 한국으로 번졌다. 신천지발 감염을 들여온 가정으로 의심받으며 우리 집 대문에는 봉인 종이가 붙었다. 봉인지가 찢어지면 끌려갈 거라는 협박을 들어야 했다.


한 달간 집안에 네 식구와 강아지 두 마리(봉쇄로 입국 못한 친구의 강아지 추가)의 격리가 시작됐다. 아파트 1층에는 한국인 격리 가정 명단이 붙었다. 중국인 수백 명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는 우리 집 현관문 사진이 떠돌았고, 그 사진은 누군가의 제보로 한국 뉴스에도 등장했다. 식료품을 전달하러 문이 열린 틈에 나는 공안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너네 이거 명백한 사생활 침해, 인권침해야. 당장 봉인 뜯고 명단도 치워!”

핏줄을 세우는 나를 보며 남편은 눈을 감았다.

“그러다 끌려간다. 가만있어. 여기 중국이야.”

그러나 끌려갈 각오를 한 사람들의 항의에 영사관과 기업들의 협상이 더해지며 봉인과 명단은 철거됐다. 자유는 추상적인 권리가 아니라, 때로는 몸을 내놓아야 얻어지는 현실이었다.

그 시간을 작가는 이렇게 쓴다.

“진정한 고통은 자유를 빼앗긴 채 흘려보내야 했던 시간 속에 있었습니다. 시민들의 이동은 철저하게 통제되었습니다. 병원에 보내달라는 울부짖음은 공공의 안전 앞에 철저한 무음이 되었어요. 자유만 허용된다면 그 밖의 모든 것은 사소한 일로 치부해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27p)

당시 작가는 암 진단을 막 받은 상태라 그 공포는 더 했다. 그녀의 생명이 치료의 결과가 아닌 통행의 자유라는 이름아래 좌우되고 있었다.

“마흔쯤의 나이, 이제 인생의 상류를 지나 중류쯤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곧장 급류를 타고 하류에 닿아버린 느낌입니다. 눈과 코를 찌르는 거센 물살, 그 속도와 압력에 저항할 틈도 없이 휘청이고 있습니다.

나는 나를 지킬 수 있을까요.” (28p)


그 시절의 기억이 내게도 선명하다. 긴 격리로 인해 4년간 한국에 올 수 없었고 지역 간 이동도 까다로웠다. 자유가 봉쇄된 시간은 사람마다 다른 깊이의 상처를 남긴다. 어떤 이에게는 잠깐의 흠집이었을지 모르지만, 섬세하고 예민한 우리 아이들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뒤늦게 그것이 ‘코로나 블루’로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걸 짐작하게 됐다.


작가는 그 시간 이후를 이렇게 쓴다.

“돌아온 자유에 응답하는 문제, 그것은 다시 나로 살아보겠다는 의지입니다. 그 후, 내 안에는 우렁찬 것들이 생겨났습니다. 숨 쉴 때마다 잔잔하게 일렁이던 감정들이 목구멍으로 역류했습니다. 시큼했어요. 하루에도 여러 번 눈시울이 뜨거워지면 혀뿌리가 시큰해집니다. 존재의 바닥에서 그만 튕겨 올라가고 싶습니다. 강을 거스르고 싶어요.” (30p)


가까스로 치료가 시작되어 병원에서 경험한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다. 초로의 의사가 검사결과지 앞에서 작아진 그녀에게 소리쳤다.

“ “여기에 이 정도도 안 아픈 사람 없어요. 너무 쫄지 마세요.”

칙칙한 병색이 싹 걷힙니다. 그녀는 눅눅한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쫄지마! 쫄지마!” 외치기까지 했어요. 그게 뭐라고 그리 좋아할 일인가 싶었지만, 환자는 원래 그런 사람이에요.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어깨가 퍼졌다 쳐졌다. 기운을 잃었다 하는 게 일인 사람이지요.” (33p)

위로는 쉽지 않다. 어떤 말이 상처 위의 소금이 될지 알 수 없기에. 다만 고통의 결을 아는 사람이 건네는 확신은 예외였다. 머리가 떡진(중국인들은 떡진이들이 많다.) 의사의 쫄지마는 “别怕”(비에 파)였을까. 잊혀만 가던 중국어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나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내일 일은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없는 것은 말할 수도 없어요. 누구도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위로받을 준비가 안된 환자는 타인의 위로에 벌을 받습니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해지는 의미들이 있습니다. 위로를 받는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어주는 것, 그것 역시 위로일 것입니다.” (30p)

작가의 문장에 자주 멈춰야 했다. 큰 시련을 겪고 알게 된 것은, 말은 무용하다는 것이다. 설득, 충고, 격려라는 이름으로 건네졌던 수많은 문장이 사실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 자신의 불안을 달래기 위한 장치였을지도 모른다. 어떤 시간에는 해결보다 동행이 필요하다.


2월에 열린 엄민정 작가의 북토크에 참석했다. 작가는 그녀의 문체처럼 단아하고 우아했다. 그 사람의 본체가 글이고, 글이 그 사람임을 느낄 수 있었다. 품격 있는 사람의 품격 있는 언어를 듣는 시간은 내내 울림이었다.

작가는 이 책을 “명사가 되기 위해 동사에 집중한 이야기”라고 정리했다. 작가가 되기 위해 글쓰기에 집중한 시간이 <작가선언>에 담겨있다.

“나는 문장의 힘을 믿습니다.

입술을 떠난 말은 연기처럼 흩어지지만, 종이 위에 포착된 언어는 무게를 얻습니다. 쭉정이를 거르고 의미를 가려내어 문장의 점도를 높이겠습니다. 나의 글이 허공에 휘발되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아 지워지지 않는 자국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쓰기는 휘발되는 시간을 붙잡아 두는 일이다. 마음, 사건, 기억을 묶어두고 그 안에서 의미를 건져 올리는 작업. 한 사람의 문장이 타인의 삶에 닿는 순간, 글은 사회적 존재가 된다.

작가는 양광모 시인의 시 〈인생〉의 한 구절 — "자주 막막하고 이따금 먹먹해도 늘 묵묵하게" — 을 인용하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막막하고 먹먹함 사이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묵묵함 뿐인 것 같습니다. 묵묵하게 여러분들에게 친근한 글 쓰는 사람으로 남아있겠습니다.”

삶이 우리에게 허락하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그러나 그 적은 선택지 안에서도 인간은 자기만의 태도를 만들어낸다.

돌아오는 길, 책 표지를 만져본다. 새겨진 지문이 손끝에 오돌토돌 걸린다. 작가의 지문일까. 글을 쓰는 손끝에서 향기가 나는 사람. 그녀의 다음 문장이 벌써 궁금하다. 그녀를 더 깊이 읽고 싶다.


https://brunch.co.kr/@whispers-at-4am

https://m.yes24.com/goods/detail/173873510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9001114

http://aladin.kr/p/GCvs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