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정원아, 봄이 왔어.

선우 작가 <정원, 뜻밖의 여정>을 읽고

by 송지영

*수정 중에 글이 삭제되어 재발행합니다. 이미 마음을 건네주신 분들께 양해를 구합니다.


에스프레소 위에 하얀 크림을 얹은 콘파나를 사랑하고, 그 맛을 즐길 줄 알던 작가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영화를 공부하며 세계를 해석하던 사람은 이제 전혀 다른 질문 앞에 선다.

어떻게 이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사유의 방향은 바깥에서 안으로 이동하고, 질문은 추상에서 구체로 내려온다. 대상이 세계에서 단 한 사람으로 좁혀졌을 뿐인데, 사고의 밀도는 오히려 삶의 내부를 더 깊이 파고든다.


<정원, 뜻밖의 여정>은 이 전환의 기록이다. 이 책은 자폐 스펙트럼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고난기도, 정서에 기대는 감동담도 아니다. 대신 선우 작가는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자신이 내려놓게 된 언어와 새로 익힌 태도를 담담하지만 분명한 문장으로 써 내려간다.

정원이는 다른 아이들이 미래의 직업을 말할 때,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답한다. 이 짧은 문장은 이 책이 향하는 방향을 분명히 보여준다. 또래보다 느린 걸음에도 불구하고, 선우 작가는 그 속도를 앞서 판단하지 않는다. 아이의 보폭에 자신의 하루를 조율하는 선택을 한다.


작가의 여정에는 언제나 식물이 함께한다. 아파트 베란다와 작은 마당에서 시작된 가드닝은 취미를 넘어 삶을 이해하는 방식이 된다. 흙을 만지고, 잎의 변화를 살피고,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빛을 기록하는 일은 아이를 대하는 태도와 닮아 있다. 식물은 설명을 요구하지 않고, 성장을 재촉하지도 않는다. 작가는 가드닝을 통해 기다림이 관계의 한 방식이 될 수 있음을 체득한다. 식물은 정원이가 자라는 시간을 묵묵히 지켜본 또 하나의 생명이며, 말없이 곁을 지키는 동반자다.


정원이가 일곱 살이 되어서야 처음 “엄마”라고 불렀을 때를 회상하며 선우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 엄마는 늘 네가 보고 싶었어. 네가 옆에 있어도 늘 보고 싶었단다. 누가 알았을까. 서른다섯 살에 만난 너에게 "엄마"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 이리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을지. 그리고 그 시간을 울보인 내가 이렇게 씩씩하게 버텨낼 수 있었을지. 그때는 몰랐단다.”
작가는 엄마가 되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세계의 크기를 받아들인다. 모른다는 사실은 결핍이 아니라, 새로 배워야 할 삶의 범위임을 이 책은 여러 장면을 통해 보여준다.


“정원이와 함께 손을 잡고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맑았고 높았다. 도달할 수 없다 하여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운명은 선택할 수 없지만 오늘의 행복은 선택할 수 있었다. 설령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었다. 아이는 완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었다. 울고 웃는 따듯한 존재였다. 살아 있다는 것은 완벽하지 않다는 것과 같았다. 답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정원이의 속도에 맞게 하나씩 알아갈 뿐이었다. 그것이 내가 찾은 답이었다."
작가는 정원이와 함께하는 삶을 성취의 경로가 아니라 동행의 시간으로 이해하며 아이의 속도에 맞춰 하루씩 알아간다. 그 누적이 그들의 삶의 방향이 된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자신의 서사를 ‘힘겨움’으로 규정하지 않는 데 있다. 흔히 호출되는 감정어들-슬픔, 불안, 고통-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자폐 스펙트럼 아동 부모가 마주하는 행정 절차, 교육 선택지의 협소함, 돌봄이 가족 내부로 밀려나는 구조가 구체적인 장면으로 제시된다.

책을 읽는 동안 한 가정이 감당해야 할 책임의 무게는 좀처럼 가벼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다음 질문이 자연스럽게 남는다.

이 부담을 개인의 분투로만 남겨두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 책은 자폐 스펙트럼 아이와 그 가족에게는 하나의 사례가 되고, 그 곁에 선 이들에게는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을 환기한다. 더 많은 이야기가 선우 작가의 언어를 통해 이어지기를 기대하게 되는 대목이다.

<정원, 뜻밖의 여정>은 아이를 키우며, 삶의 속도를 다시 조정해 가는 여정이 담겨있다. 그 배움은 흙을 만지는 손끝과 아이의 눈높이에 발을 맞추는 하루에서 시작된다.

책의 마지막에서 작가는 밝은 목소리로 말한다.

“아, 정원아, 봄이 왔어.”
긴 시간을 성실하게 건너온 사람이 건네는 인사에 마음이 살랑인다. 책을 덮고 나면, 선우 작가가 좋아하던 콘파나 한 잔을 테이블 위에 조용히 올려두고 싶어진다. 그녀와 정원이, 그리고 그들의 정원에 이 봄이 오래 머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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