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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지영 Jan 02. 2025

고요를 건너다

언어에도 서로가 받아들일 수 있는 주파수가 따로 있는 것일까. 나의 언어는 아이에게 닿지 못했고, 그의 말은 나에게 해석되지 않았다. 진심조차 뛰어넘지 못한 벽이 우리 사이에 있었다.

물론, 병의 장벽으로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는 걸 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싶었다. 딸의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 생각의 언저리에는 무엇이 자리하고 있었는지. 얼어붙은 마음의 중심에 손을 뻗어 닿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길을 열어줄 소통의 언어가 필요했다. 말과 말 사이에 흐르는 고요한 단절을 녹여낼 수 있는 비밀번호를 끝까지 찾고 싶었다.     


<널 보낸 용기>를 연재하는 동안, 많은 십 대 독자들이 자신의 아픈 경험을 용기 내어 나누어 주었다. 연재가 끝날 무렵, 내 마음을 깊이 울리는 한 친구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의 문체와 담담한 톤 앤 매너는 딸의 단정한 어투를 닮아 있어 소스라치게 놀랐다. 놓칠 수 없었다.     


“작가님의 글을 읽고 처음으로 댓글을 남겨요.

저는 현재 고등학교 2학년, 예비 고3 학생이에요.

올해 초 우울 에피소드로 진단받고 지금도 꾸준히 병원에 다니고 있는 중이에요.

우울증은 한 사람을 아주 천천히 갉아먹는 질병인 것 같아요.

죽을 뻔했던 상황을 부모님이 아시고, 폐쇄병동에 수 차례 입원하게 되었어요.

제가 무너져 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까지 8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제 주변에는 모두 좋은 사람들뿐이지만, 주변인들이 제 우울과 불안을 없애 주지는 못했어요.


작가님과 일면식도 없는 제가 말씀드릴 자격이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하늘에 계신 따님께 감사하다고 전해 드리고 싶어요.     

우울증이라는 병과 매일같이 싸워 가며 살아가는 게 많이 힘드셨을 텐데, 정말 수고하셨어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사실이 과소평가되는 세상에서 고생 많으셨어요.

작가님도 오늘 하루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사실이 과소평가되는 세상”이라니...

 그 말이 내 안의 어떤 것을 흔들었다. 내게 하루란 그저 성실하게 맞이해야 할 당연한 과제였다. 그러나 그 당연함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그 문장을 읽으며 혼란스러우면서도 휘청이며 걸어왔던 딸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우울감 속에서 하루를 살아낸다는 것은 단순히 살아가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생존이다. 숨을 내쉬는 것조차 고통이 되는 날들 속에서, 하루를 겨우 견뎌낸 아이에게 “힘내자”, “할 수 있다”, “용기 내라”는 응원이 때로는 얼마나 깊은 상처가 될 수 있었을지 돌아보게 된다.

딸에게 “오늘 하루 어땠어?”라고 물으면 언제나 돌아오는 대답은 “그냥 그랬어요”였다. 풀 죽은 목소리와 텅 빈 눈동자를 보며 나는 걱정과 불안이 들킬까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나도 딸에게 수없이 “수고했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나 같은 말을 했지만 아이의 가슴에 온기로 전해지는 울림을 담지 못했다. 언어는 같은 모양새로 말해도, 그 안에 담긴 감정의 온도로 인해 전혀 다른 공명을 일으킨다. 그렇게 나는 딸과 그 공명을 맞추는 데 실패했다.          


“망고님, 이렇게 글을 남겨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딸과 같은 나이라 그런지 망고님의 이야기가 마음 깊이 와닿았어요.

덕분에 아이의 마음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딸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많으면, 아이가 의지할 곳이 많아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마치 장기 말을 배치하듯, 아이의 주변을 든든한 사람들로 채우고 싶었죠.

그런데 딸도 망고님처럼 말했어요.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음에도 온전히 나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 미워졌던 것 같아요.’     


딸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하는지 어려웠었는데 망고님처럼 하는 거군요

힘들었을 텐데 수고했다고...

아이가 제게 마음을 열지 않았던 게 아니라, 제가 제대로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던 거였어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요.     


망고님이 말한 그 8년이라는 시간...

얼마나 힘들었을지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버텨 주어서 고맙습니다.

오늘 하루도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딸을 잃은 엄마와, 그 딸과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십 대 소녀.

우리는 각자의 간절함 속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그 마음의 소리를 듣고 싶다.


우리의 대화가, 위태로운 길 위에 서 있는 또 다른 아이들이 다시 엄마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어른들이 그 마음에 다가서는 데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면 좋겠다.

이 이야기가 닿지 못한 마음들을 이어 주는 작은 다리가 되어, 따스한 이해로 채워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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