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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루양 Feb 08. 2018

괜찮아, 날이 개면 나폴리도 웃어 줄거야

언젠가 꼭 나폴리에 다시 가겠다던 그 소녀는




새 도시로 떠나는 일은 70퍼센트의 기대와 30퍼센트의 두려움이 공존한다. 특히 나 같이 한 곳에 오래 머무는 여행자에게 새 도시는 더 그렇다. 이미 이탈리아의 이곳저곳을 혼자 다니면서 만나볼 도둑들, 집시들 다 상대해본 바라 더이상 두려울 것도 없지만, 그래도 좀더 따뜻한 곳이기를, 별일 없이 숙소까지 잘 도착할 수 있기를 내심 초조하게 바랐다.

바로 그때, 숙소 호스트에게 문자가 왔다. “나폴리에 비가 많이 오고 있어. 택시를 타고 숙소에 오는 게 좋겠는데. 혹시 피나 서비스를 받고 싶으면 얘기해. 20유로에 해줄게.”

도둑 많기로 악명 높은 나폴리 중앙역에서 집까지, 버스타면 1,1유로. 택시를 타면 10에서 15유로가 일반적이다. 악명높은 택시기사가 나 몰라라 하는 식으로 미터기를 끄거나 돈을 더 달라고 요구하는 수가 있다고는 들었다. 비가 오고, 초행길이니까, 피나 서비스를 받고 싶은데, 무려 20유로라니. 고민이 됐지만,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런데 피나 서비스? 택시 운송 서비스인줄 알았는데, 그저 자기 친구를 보냈다. 그것도 영어를 1도 못하는 이탈리아 친구를. 역에 도착해서 전화는 했는데, 이탈리아를 1도 못하는 내가 영어를 1도 못하는 그녀와 어떻게 만날 장소를 잡는단 말인지? 겨우 주변에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아 피나가 있는 곳을 알아내어 그렇게 비오는 날 나폴리와 처음 마주치게 되었다.




로마보다 훨씬 복잡해보이는 도로. 낡은 건물들을 제외하고는 첫인상은 로마 거리에서 본 풍경과 비슷했다. 비가 내린다는 것과 이탈리아어만 할 줄아는 피나와의 침묵 외에는 그래도 제법 도시에 친근감이 느껴졌다.

집은 중앙역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굳이 나에게 피나 서비스까지 필요 없었구나 싶었지만, 나폴리에 들어온 나름의 도시세라 치자. 낡은 아파트 꼭대기 층에 도착하자, 꽤 아늑하고 넓은 호스트의 숙소가 있었다. 아무 먹을 것이 없었기에 바로 장을 봐야 하는데 아쉽게도 집에는 우산도 없었다.


우리는 수건을 뒤집어 쓰고 주변에 큰 마트로 달려갔는데, 놀랍게도 그 식료품 가게에는 우산 같이 먹을 수 없는 건 팔지 않고 있었다. 와우. 장을 보고, 다시 젖은 수건을 뒤집어 쓰고, 주변에 우산을 팔만한 곳을 스캔하며 달리는데 이 거리에서 유일하게 우산이 없는 게 우리 둘뿐이구나. 그것은 길에서 우산 파는 아저씨 눈에도 딱 보여서, 딱 봐도 1~2유로 짜리 우산을 5유로, 깎아서 4유로에 샀다. 괜찮아, 날이 개면 나폴리도 우리에게 웃어 줄거야. 하하하.


나폴리. 5년 전 이탈리아에 왔을 때, 남부 투어라고 하루만에 남부 이곳저곳을 찍는 버스 투어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때 나폴리에 내려서 정말 딱 피자 한 판 먹고 버스에 올라타고 지나간 기억이 난다. 소렌토에서도 잠깐 들러 15분의 자유시간이 생겨 구경을 하고 있는데, 왠 부부가 근사한 차를 몰고 구석진 골목골목을 지나갔다.

그 모습이 어찌나 자유롭고 멋있어보이던지! 나도 나중에 결혼하면 꼭 이탈리아 남부에 신혼여행을 와야지, 나름 그런 작은 각오를 했더랬다. 신혼여행은 나폴리보다 더 남부인 시칠리아를 다녀왔지만, 어쨌거나 다시 여기, 나폴리에 왔다. 언젠가 꼭, 하고 두고두고 먹은 마음이 여기에 나를 다시 소환했다.

위험한 도시, 도둑들의 천국, 낡고 지저분한 거리. 나폴리를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나 겁나고 위험한 도시처럼 느껴지지만, 그곳은 ‘아름다운’ 피자와 커피가 있는 도시가 아닌가? 피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만이라는 이유로도 나폴리는 내게 다정한 이미지의 도시였다.

나폴리는 광장이 널린 로마에 비하면 도시 자체가 조금은 음침하고, 군데군데 지저분한 낙서 투성이의 거리다. 낡은 벽들 사이에 지저분한 골목길 때문에 로마보다 훨씬 위험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결국 여기도 사람들이 사는 도시고, 저기와는 또 다른 여기만의 문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이틀 머물다 떠나면 그 인상만 남겠지만, 나는 며칠이고 있을 생각이니까 내일은 또 나폴리의 어떤 얼굴을 보게 될까 기대하며 첫날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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