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st dish: Pizzeria la figlia del preside
2013년이었으니까, 5년 전에 전 직장 퇴직금을 몽땅 끌어다 이탈리아 티켓을 샀다. 그리고 이 돈이 떨어질때까지 돌아오지 않겠노라고 호기롭게 이탈리아로 떠났다.
왜 이탈리아냐? 그것은 내가 피자를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하루에 한 판씩 먹을 수 있다면, 그것이 천국 아닐까 라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떠났다.
북쪽에 숨겨진 고수의 트라토리아가 많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겁도없이 북쪽으로, 더 북쪽으로, 토리노 같이 여행책에도 안나오는 지역을 찾아, 기차를 타고 돌아다녔다. 가는 데마다 도둑과 집시들에게 숱하게 목표물이 되었다.
돈 내놓으라고 시비도 여러번, 심지어 베네치아에서는 알마니 양복을 입은 도둑이 자기가 유명한 쉐프고 저녁을 대접하고 싶다고, 네가 왜 여기 혼자 왔는지 잘 알고 있다고(??? 난 그냥 피자를...) 느글느글하게 들이대며 쫓아오길래 진짜 꺼지라고, 짜장면 탕수육 짬뽕!이라고 외국사람들이 무서워한다는 된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토리노로 가는 기차에서는 집시들이 단체로 애워싸서 다구리를 당한 적도 있다. 겨우 빠져나와 다음 칸에 앉아있는 할아버지에게 그랜파! 그랜파! 하면서 도움을 요청해서 무사히 넘겼다.
나에게 그런 이탈리아였지만, 힘들고 실망스러운 순간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때 이탈리아가 그렇게 좋았다. 주위에 무심하게 널려있는 건축물들, 신을 조각해놓은 분수들, 두오모와 작은 돔들이 만들어내는 이탈리아 특유의 분위기가 나에겐 그저 낭만적으로만 다가왔다. 게다가 정말로 매일 피자를, 매끼 피자를 마음껏 먹었으니까. 나에게 이곳은 그저 아모르, 아모르.
그렇게 한달쯤 있었다. 남부나 다른 곳은 다 돌지 못했지만,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다시 올거니까.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고 쿨하게 돌아왔다. 그때문일까? 5년 후, 나는 다시 로마에 왔다. 이번에는 남부를 여행하기 위해서. 여행의 목적은 이번에도 똑같다. 그때 맛보지 못한 피자와 파스타를 먹겠다는 일념 하나로! 아모르, 아모르! 한달 쌀밥을 안먹어도 생각도 안나고, 그렇게 잘 체하는 나인데도 피자나 파스타 먹고는 체한 일도 없고, 나의 신체적 고향은 이탈리아가 틀림없썽!
마침 나만큼 파스타를 애정하고 피자를 좋아하는 남편을 만났고, 그 역시 이탈리아의 맛있고 아름다운 추억이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또 이탈리아로 떠나는 건, 숙명같은 일이랄까.
나폴리에 도착한 첫날. 짐을 풀자마자 다시 집밖으로 나왔다. 아무리 비가 와도 나폴리 피자를 포기할 수 없지. 우리의 첫번째 피자는, 대통령의 딸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핏제리아집이다. 좁은 입구와 달리 지하로 내려가니 꽤 넓은 공간이 있었는데, 벽돌로 둥그렇게 꾸며놓은 입구가 마치 화덕 속으로 들어가 피자를 먹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버섯과 햄, 올리브가 든 카프리로쏘 피자를, 남편은 기본이 되는 마르게리따 피자를 주문했다.
로마에서 먹은 피자도 맛있었지만, 나폴리 피자를 먹고 나니 피자가 빵 위에 올려진 토핑을 먹는 음식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느꼈다. 아주 얇은 도우에서 느껴지는 빵의 쫄깃함과 짭자름하고 고소한 맛이 어찌나 입에서 감도는지 빵도 피자에서 자기 지분이 분명히 있다는 걸 주장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음식은 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햄 등의 피자 토핑등은 제 맛을 숨죽인채, 정말 빵에 올려져 약간의 담백함, 약간의 향으로 빵맛을 도울 뿐이었다.
거기에 제 목소리가 분명한 모짜렐라 치즈만이 빵맛에 대결해 충분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빵과 치즈가 열일하니, 기본이 되는 마르게리따 피자. 그것만으로도 이미 완벽한 피자였다.
우리나라에서 마르게리따 피자는 그저 ‘토핑없는 싼 피자’정도로 여겼는데, 마르게리따는 빵과 치즈라는 절대적인 맛의 고수가 팽팽히 힘을 견주고 있는 그라운드였던 셈이다. 아주 즐거운 식사였다. 피자 맛을 즐기느라 맥주도 됐고, 물 한잔이면 충분할 정도였달까.
비가 내리고 어두운 나폴리의 골목에서 나와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내일 아침, 해가 뜨면 분명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겠지? 소문대로 어두운 골목길에 한시도 주머니에서 경계를 풀수 없는 길거리지만, 그럼에도 나폴리는 역시나 맛있고 따뜻한(비가와도 기온이 11도다. 로마는 5도)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