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 세상을 꿈꾸는 백조의 왕

몽상가 루트비히 2세와 바그너

by 잠꾸러기 덴스

디즈니 영화사의 로고로 나오는 성의 모델은 두 개로 알려졌다. 디즈니의 영화 〈백설공주〉에 나오는 성의 모델인 스페인 세고비아의 알카사르와 독일의 노이슈반슈타인 성이다. 이 중에서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광기의 왕’ 또는 ‘성의 왕’이란 이름을 가진 루트비히 2세(Ludwig II)가 독일 전설을 충실하게 옮겨놓은 곳으로 잘 알려져 보기만 해도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그는 생전에 3개의 성(린더 호프/Linderhof, 헤렌킴제/Herrenchiemsee, 노이슈반스타인 성/Schloss Neuschwanstein)을 건축하게 된다. 모두 독일 내에서 대표적인 아름다운 성으로 꼽을 수 있다. 그 당시 유럽에서의 성 건축은 전쟁을 위한 건축이라기보다는 제왕들이 자신의 권력과 예술성을 자랑하는 수단이었기 때문에, 국고 소비로 인한 국민들의 원성을 자아냈다.

린더 호프 성
헤렌킴제

루트비히 2세가 속한 비텔스바흐 가문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 통치권을 쥐고 있던 가문 중 하나로 남부 독일의 바이에른 왕국을 지배하면서 황제를 뽑는 귀족을 뜻하는 선제후(選帝侯)라는 칭호로 불렸고 1806년부터 왕으로 불렸다.


비텔스바흐 가문이 왕으로 불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루트비히 2세는 왕세자 시절인 일곱 살 때 크리스마스 선물로 집짓기 블록을 선물 받았다. 그 후 집이나 성, 교회를 만드는 데 취미를 붙였는데 학자들은 이때의 경험이 나중에 건축에 대단한 열정을 보이게 된 계기라고 추정한다.


그러나 그의 건축에 대한 열정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 막시밀리안 2세는 1832년 폐허의 요새로 옛날부터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을 둘러싼 설화가 전해지는 호엔 슈 방가 우를 사들여 도이치 방식, 즉 중세 양식의 네오고딕으로 고치게 했다. 호엔슈방가우 성은 탄호이저가 로마에서 돌아오는 길에 영주들의 성에서 밤을 지냈다고 하는 전설까지 있으므로 ‘백조의 성’이라고도 불렸는데, 배에 앉아 있는 성배(Holy Grail) 기사 로엔그린의 모습을 성 내부에 그리도록 했을 정도였다.

호벤 성.png 호엔슈방가우 성

루트비히 2세는 이 그림들을 통해 자신을 성배의 기사 로엔그린과 동일시했고 특히 이곳에서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에 심취하기도 했다.

루트비히 2세는 감수성 예민한 나이(15살)에 처음으로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감상했다.

그때부터 바그너의 음악세계에 깊이 빠지게 된 그는 바그너와 그의 작품들을 열렬히 신봉하기 시작했다

18살의 나이에 왕이 된 그가 처음으로 한 일도 뮌헨으로 바그너를 불러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다


그는 린더 호프 성 주변에 정원을 만들며 산속에 굴을 파고 만든 인공 동굴인 비너스 동굴(Venus Grott)을

만든다. 바그너의 오페라를 홀로 보기 위한 산속 작은 공연장이다.

동굴의 인테리어는 바그너의 <탄호이저>에 등장하는 장소를 상상하며 그대로 만들었다. 인공 연못에 배를 띄워 홀로 공연을 보기 위한 1인 객석까지 마련했다. 대인기피증으로도 볼 수 있지만 권력을 가진 팬으로서 독점하고 싶은 욕망이 더 맞을 것 같다.

비너스 동굴

동굴에 적합한 완벽한 음향에 100m 정도 떨어진 발전실에서 전기를 끌어와 실제로 조명까지 완비된 전용 공연장이다.


바그너는 독일 게르만 민족의 전설을 기초로 하여 오페라 <로엔그린>과 <탄호이저> 등을 작곡했는데 그것이야말로 루트비히 2세가 원하는 작품이었다.

바그너의 음악은 일련의 환상을 만들어냈고 루트비히 2세는 바그너의 작품에 나오는 전설을 표현하는 건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그너의 음악적 환상을 현실로 구현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황금빛의 호엔 슈방가 우 성도 아름답기는 하지만 루트비히 2세가 원하는 게르만인들의 전설을 모두 담기에는 다소 부족한 점이 없지 않았다. 온통 새로운 성의 건설에만 신경을 쓰고 있을 때인 1860년, 그를 더욱 초조하게 만든 것은 바르트부르크 성이었다.


바르트부르크 성은 독일 아이제나흐 인근의 성으로 중세 튀링겐 지방의 문화 중심지였다.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가 신약성서를 번역했고 바그너와 괴테 및 유명 인사의 여행지로도 유명하여 1999년에 유네스코(UNESCO)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이다.


바르트부르크 성을 보고 난 루트비히 2세는 적어도 바르트부르크 성보다 한 수 위의 성을 지어야만 독일 신화의 주인공들인 로엔그린, 파르지팔, 지크프리트, 트리스탄, 탄호이저들이 살아 숨 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을 건설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가 지은 노이슈반스타인 성, 일명 ‘백조의 성’은 향후 디즈니(Disney) 의 모티브가 되었고, 현재에도 노이슈반스타인 성이 있는 슈 반가 우(Schwangau)는 독일 최고의 관광지가 되었다.

노이슈반스타인 성, 호수가 전경에 보인다.

Schloss Neuschwanstein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모든 실내장식은 이 성에서 바그너의 악극을 공연하기 위한

위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작곡가 바그너의 든든한 후원자였지만

1886년 슈 타른 베르그 호수에서 의문의 죽음으로 성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1845~1886)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1868년부터 1892년에 걸쳐 미완으로 만들어진다.



루트비히 2세의 먼 친척 누이이면서, 당대 최고의 미녀이자 시 씨(Sissi)라고도 불리는 비텔스바흐 가문 출신의 오스트리아 엘리자베스 황후(1837 ~ 1898)이다. 그녀는 15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로 시집갔으나 자유분방한 성격 탓에 격식 있는 합스부르크가 에서 적응하지 못하였다.

그녀는 궁 밖을 나가 유럽 전역을 여행하기 시작했고, 그녀를 가장 환대했던 헝가리를 좋아했다.

실제로, 루트비히 2세가 국정운영으로 괴로워할 때, 자유분방한 성격의 시 씨와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전해진다. 아이러니하게 루트비히 2세는 시 씨의 동생과 결혼하려다 파혼하고 줄곧 홀로 살았다.


그녀의 유일한 아들, 황태자 루돌프는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정략결혼을 하게 되었으나, 시 씨가 오랜 기간 동안 집을 비운 사이 루돌프는 당시 30세의 나이에, 17세의 남작부인 마리 베트 세라와 사랑에 빠졌고, 급기야 둘은 주위의 비난에 못 이겨 자살하게 되었다.

루돌프가 죽은 후 시 씨는 더욱 외로워했고, 더욱더 궁 밖으로 돌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898년 9월 막내딸과 스위스 제네바 여행 중 무정부주의자에 의해 칼에 찔려 사망한다.


인기 뮤지컬 <엘리자벳>은 바로 시 씨에 관한 이야기이고, <황태자 루돌프>는 그녀의 아들 루돌프에 관한 이야기이다. 바이에른 왕가의 ‘동화 왕’ 루트비히 2세, 그녀의 친척인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시 씨, ‘황태자’ 루돌프 이제는 모두 현대 뮤지컬의 인물로 대중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