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 2세와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
뉴욕타임스의 헤드라인 기사는 '파르지팔(Parsifal)'이다.
바그너의 <파르지팔>은 1877년 가을부터 착수하여 1880년의 음악제에서 상연할 목적으로 작곡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병으로 인하여 1882년 1월 14일에야 요양지인 팔레르모에서 완성하였다. 1882년 7월 26일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에서 헤르만 레뷔의 지휘로 초연된 바그너의 마지막 오페라이다. 그는 이듬해인 1883년 2월 13일, 69세 나이로 베네치아에서 심장발작으로 사망한다.(1813-1883)
한때 바그너의 열렬한 팬이었던 니체는 이 작품의 종교적인 메시지가 귀족이나 부르주아 계층의 취향에 영합했다고 비판했지만, 바그너는 자신의 예술을 위해 특별히 건축된 바이로이트 극장(Beyreuth Festspielhaus)
에서만 공연할 것을 당부하기까지 했다. 따라서 이 작품은 바이로이트 축제극장만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작품이며, 바이로이트 극장의 음향조건에 가장 적합하도록 작곡한 것이다. 실제로 <파르지팔>은 1903년까지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에서만 독점적으로 공연될 수 있었다. 일반 극장에 공연된 것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가 처음인 것이다.
1865년 무일푼으로 채권자에 쫓겨 방랑하던 바그너는 열렬한 팬인 루트비히 2세의 도움으로 경제적 안정을
얻고 이후 대부분의 대작을 완성하게 된다. 1978년 그의 오페라 <파르지 팔>을 위한 전용 극장인 바이로이트
극장이 완성된다. 독특한 음향효과에 관객의 시선을 무대로 집중시킨 구조 등은 그가 직접 설계한 것이다.
루트비히 2세의 호의를 받아 국고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완성한다.
초연 무대의 지휘는 유대계 독일 지휘자 헤르만 레비가 담당했다. 사실 바그너는 랍비를 아버지로 둔 레비가 지휘봉을 잡는 것을 반대했고, 심지어 레비에게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바그너는 자신의 후원자인 루트비히 2세에게 지휘자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유대인들은 순수한 인간성의 적이라고 표현했다. 이 일은, 〈파르지팔〉을 둘러싼 반유대주의 논란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후대에 나치의 괴벨스는 파르지팔의 순수를 클링조르와 대비하여 아리아인과 유대인으로 선전에 활용했다.
1882년 바이로이트 극장에서 <파르지 팔> 초연 당시 루트비히 2세는 군중을 의식하여 전용출입구가 있음에도 보지 않았다. 그러나 바그너가 죽고 2년 동안 뮌헨에서 8번이나 보았다. 그것도 아무도 입장시키지 않고 혼자 보았다.
루트비히 2세는 어렸을 때부터 바그너의 <로엔그린>에 심취하여 본인을 로엔그린으로 투사하였다.
바그너는 ‘로엔그린’을 1850년에, ‘파르지팔’을 32년 뒤인 1882년에 발표했다. ‘로엔그린’의 주인공인 로엔그린은 성배(聖杯·holy grail)의 기사로 그는 ‘나의 아버지가 성배의 왕 파르지팔이다’라고 노래하지만 성배에 대한 설명은 없다. 30여 년이 흐른 뒤 바그너는 로엔그린 출생 이전의 이야기를 ‘파르지팔’에서 들려주면서 자신이 유럽 설화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성배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쏟아 넣었다. ‘흥행한 전편의 후편’이라는 점에서도 이 작품은 프리퀄 개념이다.
성배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그의 피를 받은 잔을 말한다. 기독교 이야기를 바탕하지만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 전설 속의 이야기 그리고 결론은 불교에 심취한 쇼펜하우어의 영향으로 쇼펜하우어식 구원으로 마무리 짓는다.
루트비히 2세가 만든 노이슈반슈타인 성 내부는 어느 방이든 바그너의 오페라를 그린 벽화이다. 루드비히 2세는 18세에 왕이 되어 엘리자벳의 동생과 약혼도 하였으나 파혼하고 혼자 살았다. 그는 왕위에 있는 동안 광적으로 성 축조에 몰입했다. 신성하고 신비로운 전설의 이야기들을 실은 바그너의 오페라와 함께 현실 속에서 도취하고자 한 공간. 그것이 그에겐 성(castle)의 의미이다.
성의 내부는 화려했으며 연주홀은 눈부신 샹들리에와 96개의 공명판으로 이루어진 완벽한 시설. 정작 그는
불상의 죽음으로 이 연주홀에서 한 번도 공연을 보지 못했다. 국고 낭비로 각료와 남작과 갈등을 빚고 게이라는
루머에 시달리다 왕위를 폐위하고 1886년 6월 13일 수수께끼 같은 상황에서 사망한다.
호수에 투신하여 익사체로 발견된다. 그와 함께한 의사는 질식사로 함께 말이다.
그는 현대에 뮤지컬로, 오페라로, 건축으로 그리고 영화로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성배를 둘러싼 모험과 미스터리를 다룬 영화로 ‘몬티 파이선과 성배’ ‘엑스칼리버’ ‘인디애나 존스-최후의 성전’ ‘다빈치 코드’ 등 수많은 영화들이 끊임없이 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