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을 내려놓기까지
나는 그동안 아빠가 참 미웠다.
어린 시절의 아빠는 다정한 기억으로 가득한 사람이었는데,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무렵부터 술을 먹고 들어와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푸념이 가장의 무게처럼 느껴져
안쓰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빠의 술주정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늘어나는 푸념, 높아지는 언성,
새벽 세 시까지 이어지던 욕설 속에서
우리 가족의 화목함은 조금씩 기울어져갔다.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참다못한 엄마는 외할머니를 도우러 타국으로 가야 할 것 같다며 내게 선택권을 주었다.
엄마를 따라갈지, 아빠와 함께 남을지.
선택지는 두 개였지만
그때의 나에겐 사실상 한 개의 선택지뿐이었다.
아빠와 함께 사는 하루하루가 너무 버거워서,
그 삶을 계속 이어가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 생활을 포기한 채
타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다.
찬란할 거라 믿었던 학창 시절을 내려놓다는 건
분명 아쉬웠지만, 이 지겨운 힘듦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작은 희망도 함께 품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낯설었다.
언어도, 환경도, 관계도 전부 처음이었다.
매일이 적응이었고, 매일이 외로움이었다.
남들 교복 입고 학교 갈 시간에
나는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억울함과 막막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래서 그 시절의 나는
그 모든 감정의 화살을 아빠에게 돌렸다.
‘아빠가 날 이렇게 만들었어.’
‘아빠만 아니었으면…’
원망은 나를 잠시 숨 쉬게 해주는 것 같았지만,
마음을 편하게 해주지는 않았다.
어쨌든 아빠는 내 아빠이고,
나의 어릴 적 기억 속의 아빠는
완전히 나쁜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운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와 아빠의 형제들은
내게 아빠를 너무 원망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때는 솔직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말이 너무 어른들 위주의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빠를 위해서라기보다,
원망에 묶여 있는 내 마음을 위해서였다는 걸.
나는 아직 아빠를 완전히 용서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를 향해 들고 있던 화살들을 조금 내려놓았을 뿐이다.
원망을 붙잡고 있을수록
아픈 건 결국 나 자신이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전히 복잡한 감정이 남아 있지만,
적어도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걸. “
아마 이 글은 용서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원망을 내려놓으려 애쓰는 한 사람의 기록에 더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