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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미 Mar 18. 2024

김치찌개에 김치를 반찬으로 내놓은 아내

부부가 싸우는 이유는 다양하다

신혼 초, 나는 남편이 해주는 밥을 얻어먹고 싶었다. 밥 해주는 남편. 그야말로 애처가의 상징 아닌가? 백종원과 류수영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요리하는 걸 보면 아찔할 만큼 멋졌다. 나도 사랑받는 아내가 되고 싶다. 매일 남편이 해주는 밥을 먹으면서, 남들한테 결혼 잘한 여자로 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류미야, 난 요리가 정말 싫어. 하지도 못하고, 음식은 아무리 공들여서 해도 먹으면 한순간에 없어지잖아. 그게 너무 허무해. 난 요리 안 할 거야."


난 적잖이 당황했다. 마음 약한 그는 거절할 때 늘 일말의 여지를 남겨두는 편이지만, 이렇게 칼 같은 태도를 보인 적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그치만 나도 하기 싫어! 나도 허무한 거 싫어!"


"그럼 할 수 없지. 시켜 먹어."


"어떻게 맨날 시켜 먹어."


"몰라. 어쨌든 난 안 해."


사 먹는 밥은 내가 싫었다. 나는 간을 슴슴하게 한 밑반찬에 보글보글 찌개가 있는 집밥이 좋았다. 그가 너무 완고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음식을 내가 담당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 내가 음식 할게. 대신 남편이 설거지, 분리수거, 음식물쓰레기 버리기, 화장실 청소, 청소기랑 걸레질 맡아. 빨래는 각자 하고."


이렇게 유치하게 굴면 그가 '내 할당량이 너무 많다'고 항의할 줄 알았다. 그러면 내가 일부 맡을 테니, 음식 당번을 교대로 하자고 협상해야지. 그러나 그는 쿨하게 받아들였다.


"그래."


그렇게 해서 내가 우리 집 밥 당번이 되었다. 평생 엄마가 해주는 것만 먹고살다가 내가 하는 음식을 먹으니 왜 그렇게 맛이 없던지. 맛도 없는 음식을 매일 노력해서 해야 하니 음식을 할 때마다 예민해졌다.


어느 평일 저녁, 시간은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매일 7시 13분에 들어오는 그가 밥을 바로 먹으려면 음식을 시작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날따라 바빠서 업무도 다 못 끝냈는데, 밥을 해야 하는 타이밍인 것이다. 아무리 재택이라지만, 나도 일하는 사람이다. 왜 내가 매번 밥을 챙겨야 할까. 오늘은 시켜 먹을까.. 하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에이, 그래도 해 먹자. 건강도 건강이고, 돈 아껴서 얼른 이사 가야지.'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했다. 냉장고 문을 열어 재료를 보다가, 가장 만만한 김치찌개를 하기로 했다. 밥솥에 밥도 안쳤다. 보통 시작하기 전까진 밍기적대도 막상 시작하면 금방 한다. 그런데 그날은 유난히, 정말 유난히 음식을 하기가 싫었다.


7시 13분.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올 시간이다. 식탁에는 김치찌개와 김치,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 두 그릇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김치찌개에 반찬이 김치라... 엄마가 보면 한숨을 푹 내쉴 무근본 차림이지만, 난 최선을 다했다구. 곧 들어올 남편을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 현관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 그는 오지 않았다. 무슨 일 있나?


7시 30분. 도어락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띠띠띠- 띠릭. 남편이 환한 얼굴로 들어왔다.


"마눌~ 나 왔어~"


"응 고생했어! 근데... 손에 그거 뭐야?"


"떡볶이랑 순대랑 튀김 사 왔어!"


그가 묵직한 검은 봉다리를 번쩍 들어 보였다. 순간 단전에서 빡침이 올라왔다.


"왜...그래?"


내 표정이 심상치 않았는지 남편이 조심스레 물었다.


"아니.......... 먹을 거 사 오면 미리 연락을 했어야지. 그러면 내가 밥을 안 하잖아........"


"나 밥도 먹을 거야."


"떡볶이랑 튀김이랑 순대랑 밥까지 먹는다고? 김치찌개도 했는데?"


"응 나 다 먹을 수 있어."


다시 한번 분노가 치솟았다. 하기 싫은 밥 해서 꾸역꾸역 차려놨더니 분식을 사와? 그리고 돈도 아껴야 하는데 왜 저런 데다 낭비해? 그리고... 집에서 한 끼에 메인 요리를 두세 개씩 먹는 게 말이 돼?  


"뭘 다 먹어! 세상에 누가 떡튀순에다 밥이랑 김치찌개까지 먹냐? 강호동이나 최홍만도 아니고 말이 되는 소릴 해. 그리고 미리 카톡 하나만 했으면 오늘은 분식 먹고 내일은 김치찌개 먹고 얼마나 좋아! 내가 수고도 안 하고 돈도 아끼고 어?"


기분이 상한 남편은 떡튀순이 담긴 검은 봉다리를 식탁에 턱 놓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 먹어."


"뭘 안 먹어! 나와서 먹어! 내가 얼마나 고생하면서 밥 했는지 알아?"


솔직히 하기 싫어서 그랬지, 그리 고생하진 않았다. 김치찌개 달랑 하나에 밥만 한 거니까.


"얼른 나와서 먹어!"


그가 침대에 벌렁 누웠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화 낼 사람은 난데 왜 자기가 그런대?


"먹으라니까!"


대답이 없었다.


"빨리 먹으라고! 내 밥 먹기 싫으면 떡볶이라도 먹어!"


대답이 없었다.


성질이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이제 이유는 중요치 않았다. 내 말을 씹는 그의 행동만이 보일 뿐이었다.


"내 말 무시해? 어??? (쒸익쒸익)"


갑자기 남편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뭐 하는 거야? 어디 갈 건데??"


"알 거 없어."


그가 주방을 지나칠 때 팔을 잡았다.


"어디가! 밥 먹어야지! 밥 먹어 밥!!! 내가 한 밥 먹으라고!!!"


"나갈 거야! 이거 놔!!"


그가 내 손을 뿌리쳤다. 허... 내 손을 뿌리쳐? 그것도 이렇게 세게? 지금… 해보자는 거야?


"나가지 마!"


앞을 가로막고 서서 그의 허리를 두 팔로 꽉 붙잡았다. 프로레슬러처럼. 몸을 지표면과 45도로 만들고, 다리에 힘을 꽉 주고 절대 안 놓겠다는 기세로 그를 막았다.


"비켜!"


"안 돼! 못 나가!"


"비키라니까!"


"싫어! 안 놔줄 거야!"


"놔! 우리 집으로 갈 거야!"


뭐? 우리 집?


2PM 준호도 아니고, 우리 집으로 간다고? 우리 집은 설마 시어머니댁 말하는 거니?


나는 그의 팔을 놓았다.


"우리 집이 어딘데... 여기가 우리 집이잖아! 우리 집이 어딘데!!!"


"비켜! 엄마한테 갈 거야!"


그가 나를 지나쳐서 현관문을 열었다. 엄마? 어이가 없어 씩씩대던 나는, 그가 현관문을 힘줘서 쾅 닫는 소리에 기어이 이성을 잃었다. 나가려면 곱게 나갈 것이지, 어디서 현관문을 쾅 닫아?


나는 현관으로 달려갔다. 저 인간을 잡아야 한다. 문고리를 돌려 여는데, 간발의 차로 도어락이 잠겨서 3초를 기다려야 했다. 왜 하필 지금! 3초의 시간이 영겁과도 같았다. 3...2...1 띠링!


나는 문을 벌컥 열고 복도를 맨발로 달려 나갔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던 그가 내 낌새를 눈치채고 몸을 홱 돌려 비상계단으로 뛰어 내려갔다. 내가 놓칠 줄 알아? 맨발로 계단을 두 칸씩 뛰어 내려가는데, 세 칸씩 내려가는 그를 잡을 수가 없었다. 분했다. 나는 허공에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다시는 들어오지 마!!!! ...지마...!!! 지마...!! 지마..!"


내 목소리는 층계를 타고 오래오래 울려 퍼졌다.


맨발로 집에 들어온 나는 문고리와 안전장치까지 다 잠갔다. 다시는 들어오지 마라. 이 집은 이제 내꺼야. 너는 너네 엄마랑 살아.


의자에 앉아 식탁을 보았다. 김치찌개는 다 식었고 검은 봉다리 안에 있는 떡튀순은 어떻게 생겼는지 보기도 싫었다. 갑자기 내 신세가 처량해졌다.


"흐엉.. 흑흑.. 흐엥.... 내가 얼마나 정성껏 밥을 했는데... 엉엉.. 씩씩.. 나뿐놈.. 들어오기만 해봐라... 아니 들어오지 마라... 흑.. 흑흑.. 흐앙.. 엄마아아...!!!!"


다 식은 밥상 앞에서 한참 울다가 집안 불을 다 끄고 침대에 누웠다.


잠깐 잠들었다 깨니 집안이 조용했다.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도 없었다. 내가 심했나? 죽을죄를 진 것도 아닌데 내가 너무 예민했나?


현관으로 가서 잠갔던 문고리와 안전장치를 풀었다. 그가 언제든 들어올 수 있도록.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있는데,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라 대충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침대로 뛰어들어 이불을 머리 위까지 덮었다. 괜히 마주치지 말아야지. 뻘쭘하고 할 말도 없으니. 내일 아침에도 자는 척하면서 출근하는 것도 보지 말아야지.


그가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불안해졌다. 내가 이러는 거 자기네 엄마(=시어머니)한테 일렀으면 어쩌지? 나는 태생적으로 미움받는 걸 극도로 싫어해서, 누구에게나 잘 보이고 싶은 강박이 있었다. 내가 이런 식으로 구는 사람인 걸 시댁에서 알면 안 되는데... 시간을 보면 자기네 집을 다녀오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절대 먼저 말 걸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지만, 영 불안해서 안 되겠다 싶었다. 가서 떠봐야지.


작은방 문을 열었다. 문을 마주보고 앉은 그가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 상황에 드라마 보는 거야? 음소거해놓고? 그의 뒤로 가서 화면을 보았다.


그는… 우리 결혼식 영상을 보고 있었다.


의자를 빼서 그의 뒤에 앉았다. 문제의 그 결혼식 날이었다. 나의 기억과 달리 우리는 행복해 보였다. 입 다물라는 소리를 듣고도 나는 결혼식 후반부에 가서는 다시 활짝 웃고 있었다. 그도 설레는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가증스럽다..."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뭐? 가증스럽다고?"


다시 해보자는 거야? 다시 화가 솟구치려는 순간, 그가 말했다.


"내가 가증스럽다고. 이렇게 될 줄도 모르고 저렇게 웃고 있네. 진짜 싫다. 난 결혼할 자격도 없는 인간인데."


그는 자신을 비난하고 있었다.


"자책 그만해."


"징그럽다. 나 저렇게 웃는 거 못 봐주겠어."


그가 화면을 정지시켰다.


"류미야... 그러고 보면 이 날이 우리 인생 최악의 날들 시작 아니니?"


그가 갑자기 책상에 엎드렸다.


"흐흐흑...엉엉...엉엉엉!!!! 엉엉!!!!"


그의 등이 크게 들썩였다.


"아 왜 울어!!! 그냥 좀 싸운 거 가지고!!! 울지 마! 울지 마!! 응?? 울지마~~“


"흐엉엉엉...크흑...흑흑흑...."


나는 엎드린 그의 등을 꽉 껴안았다.


"울지마...! 엉엉엉...흑흑흑... 내가 화내서 미안해!! 흐엥... 흑흑흑..."


나도 슬퍼져서 한참 동안 붙잡고 울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 맞다. 어디 다녀왔는지 물어보러 온 거지.


“흑흑.. (슬쩍 눈치 보며) 근데 어디 다녀왔어? 진짜 어머니댁 갔어?”


“아니. ㅇㅇ공원 스무 바퀴 돌고 왔어.”


“그랬구나… (다행이다) 흐엉…흑흑흑... 헝헝헝!!! 이제 싸우지 말자. 미안해~~~”


아마 옆집 사람들이 그랬을 거다.


"저 정신병자들 또 저러네."



결혼 4년 차에 접어든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이제 나는 한 끼에 메인 요리 2개를 먹는 게 아무렇지도 않다.


"남편~ 어묵국이랑 훈제오리 두루치기 먹자."


"응. 나 라면도 먹게."


"그래."


예전 같으면 무슨 반찬이 이렇게 많은데 (게다가 국도 있고) 라면이냐며 핀잔줬겠지만, 이제 나도 토 달지 않고 같이 먹는다.


그리고 다른 건 몰라도, 라면은 무조건 그가 끓인다.


(엄청난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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