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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미 Apr 15. 2024

너는 OO만 고치면 남자들한테 인기 짱일텐데

그러는 너는 거울 좀 보실래요

나는 몸매가 좋은 편이 아니다. 작은 얼굴과 다소 마른 상체 때문에 언뜻 날씬해 보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전형적인 하비(하체비만)임을 알 수 있다. 어느 순간부터는 복부비만까지 추가됐다.


"니가 무슨 살이 쪄. 혼날래?"


"아냐, 진짜야. 만져봐."


이렇게 말하는 상대방의 손을 잡아 두툼하게 겹친 뱃살을 움켜쥐게 하는 게 내 취미다. 이들이 엄지와 나머지 네 손가락 사이에 잡힌 내 뱃살을 느끼며 흠칫 놀라는 모습이 얼마나 재밌는지. 이런 장난을 치는 것도 내가 스스로의 몸매에 대해 별로 나쁜 감정이 없다는 방증일 테다. 평소 체중도 잘 안 재고, 쇼핑 가면 날씬해 보이는 옷보다 사이즈가 편하게 맞는 옷을 고르는 편이다.


하지만 20대 시절엔 달랐다. 난 몸매에 콤플렉스가 있었다.


대학교 때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미국에서는 누가 무슨 옷을 입건, 뚱뚱하건 말랐건 신경 안 쓴다. 고작 1년 있었지만, 나는 미국식 마인드를 완전히 장착해서 한국에 돌아왔다(영어 실력도 그만큼 늘었으면 좋았으련만). 몸무게 역시 10kg이 늘어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 처음 친구를 만나러 종로3가역에 갔다. 미국에서 즐겨 입던 목 늘어난 어두운 회색 반팔티에 카키색 숏팬츠 차림이었다. 허리 사이즈가 31이 되어 버린 내게 맞는 바지는 이 숏팬츠가 유일했는데, 그나마도 숨을 참고 아랫배를 쑥 집어넣어야 지퍼를 잠글 수 있었다.


헤어스타일은 앞머리를 싹 빗어서 올백으로 넘겨 포니테일로 묶었다. 피부도 미국 중부의 이글이글한 햇볕 때문에 시커멓게 탄 상태였다. 이것이 바로 미국 (시골) 스타일이지. 나는 약간의 자부심까지 느꼈다. 미국물 먹었다 이 말씀.


종로3가역 저쪽에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손을 번쩍 들어 흔들었다.


"이수연! 잘 지냈어?"


그런데 수연이 표정이 이상했다. 1년 만에 만나는데, 미소는커녕 저 찌푸린 미간은 뭐람? 수연이가 빠른 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야, 너 한국에서는 이러고 다니면 안 돼. 너 그리고 왜 이렇게 살쪘어."


그런가? 약간 당황했다. 수연이는 기어이 한 마디를 추가했다.


"좀 창피하다."


내가... 창피해? 나는 길가 전신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카키색 숏팬츠는 엉덩이의 부피를 아슬아슬하게 감당하고 있었고, 바지 밑단 아래에는 바지 안에서 밀려난 허벅지 살이 불룩하게 나와 있었다. 상체는 꼭 달라붙는 티셔츠를 입은 탓에, 허리춤에 진 커다란 굴곡이 더 부각되어 보였다. 정말 그러네. 친구를 창피하게 할 만도 하다. 나는 부끄러웠다.


돌직구를 날려 정신을 번쩍 나게 해 준 수연이에게 고마웠다. 중학교 때부터 절친이니까 이렇게 말해주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속으로 흉보면서도 겉으론 내색 안 했을 텐데.


나는 그날 헬스장을 등록했다. 여름방학 끝날 때까지 두 달 빡세게 해서 빼는 만큼 빼보자고 결심했다. 일주일에 4회 헬스장에 가서 40분 빠르게 걷고 20분 사이클링을 탔다. 일주일에 4회 '이소라의 슈퍼 다이어트 체조'를 했다. 아침은 많이, 점심은 적당히, 저녁은 반공기만 먹었다. 목표는 하나였다. 한국에서 부끄럽지 않은 몸매로 살아가자.


그렇게 한 달 반이 지났다. 어느 날 아침, 약속에 나가려 옷을 주섬주섬 챙겨서 거울 앞에 섰다. 유일한 선택지, 카키색 숏팬츠였다. 원래 바지를 올릴 때 허벅지에서 강한 저항을 느끼며 한번 멈추고, 그 지점에서 배를 집어넣고 힘껏 당겨야 입을 수 있었는데, 이 날은 바지가 저항 없이 한 번에 허리까지 쑥 올라갔다. 나는 깜짝 놀라 바지 밑에 손을 넣어보았다. 1mm의 틈도 없던 바지 밑단 부분에, 무려 내 주먹이 들어갔다 나왔다 할 정도의 공간이 생겨 있었다. 맙소사! 분명 며칠 전에도 꽉 꼈던 바지였는데! 체중을 재니 처음에 비해 몸무게가 8kg이 빠져 있었다.


이후 나는 날씬하고 아름다운 몸매로 행복하게 살아갔다...라고 하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그렇지 않았다. 한국에서 부끄럽지 않은 몸매로 살아가려면 사실 더 해야 했다. 다이어트 덕분에 바지 사이즈가 31에서 27로 줄었지만, 한국에서는 최소 25 정도는 입어야 당당한 몸매였다.


당시 이상적인 몸매의 최정상은 소녀시대였다. 날씬한 소녀들이 'GEE'를 부르며 무대에서 날아다니면, 같은 여자인 나조차 눈을 뗄 수 없었다. 총천연색 옷을 입고 아찔한 각선미를 자랑하는 소녀들이 어찌나 예뻤는지. (사실 지금 보면 몸매보다 이들의 밝고 팔팔한 에너지가 훨씬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나도 이왕이면 더 노력해서 그런 다리를 갖고 싶었다. 하여, 지방흡입 빼고 다 해봤다. 하루에 스쿼트 100번, 등산, 벽에 다리 올리고 자기, 다리 경락 마사지... 하지만 소용없었다. 어느 정도 살은 더 빠졌지만, 여전히 농담으로라도 날씬하다고 할 수 없는 다리였다. 많은 시도 후에 깨달았다. 소녀시대 같은 각선미를 가지려면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가 엄마를 바꿔야 한다. 우리 엄마도 전형적으로 하체가 튼튼한 타입으로, 유전자는 어쩔 수 없었다.


이후 날씬한 다리를 포기하긴 했지만, 신경이 쓰이지 않는 건 아니었다. 누군가가 내 다리를 슬쩍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만 들어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호회 사람들과 술자리가 있었다. 난 기분 좋게 고기를 먹으며 소맥을 마시고 있었다. 여자는 나 혼자였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동호회에 있는 예쁜 회원들 이야기가 나왔다. 이런 상황은 익숙해서 개의치 않고 고기만 맛있게 집어 먹고 있었다.


그런데 지들끼리 한참 떠들더니, 누가 불쑥 말했다.


“그런데 솔직히 류미도...”


응? 나? 설마 나도 예쁜 여자 회원에 포함되나? 짧은 순간에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이 날 힐끗 보더니 말했다. 선심 쓰듯이.


"류미도 다리만 얇으면 최고지~!"


? 갑자기 내 다리가 왜 나와.


"뭐예요? 기분 나쁘게 그게 무슨 소리예요!"


"뭐가~ 칭찬이잖아."


"칭찬이라니요. 남의 외모 가지고 왜 그런 식으로 말해요!"


분노가 치밀었다. 그는 어이없고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하 나참. 너 칭찬한 건대 왜 이래. 얘가 좋은 말을 해줘도 이러네."


"그게 어떻게 칭찬이에요! 다들 봐요. 이게 칭찬이에요? 네?"


테이블을 둘러봤지만, 모두 내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아무리 다 남자들이어도 그렇지, 이게 왜 무례한 말인지 모르나? 누군가 나서 나를 말렸다.


"에이 류미야, 너 예쁘다는 거잖아. 좋게 받아들여."


나는 씩씩대면서 왜 화가 났는지 설명했지만, 누구도 납득하지 못했다. 최소한 이 말이 칭찬이 아니라는 것만이라도 이해하면 넘어갔을 텐데,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 그를 두둔하며 내 생각이 잘못됐다며 함께 공격하기 시작했다. 중간에서 말리는 사람들과 공격하는 사람들. 내 편은 없었다. 얼굴이 벌게지는 걸 느꼈다.


사실, 내가 이 싸움에서 이길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 역지사지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오빠도 탈모만 아니었어도 여자들한테 인기 짱이었을 텐데요."


내게 허벅지 운운한 사람은 30살도 안 되어 이마가 훤히 드러난 탈모인이었다. 나는 속으로 수십 번 고민했다. 이 말을 해, 말아. 입꼬리 한쪽을 올리고 빈정거리며 말하면 속이 다 시원할 것 같았다. 똑같이 되돌려주고 이런 말이 왜 상처가 되는지 가르쳐주고 싶었다. 아마 대번에 내 입장을 이해하겠지. 아니, 어쩌면 '허벅지 살은 노력해서 빼면 되지만 탈모는 의지로 되는 게 아니다'라면서 거품을 물려나?


본질적으로 '허벅지만 얇으면'과 '대머리만 아니면' 같은 말은, 너는 현재 '허벅지가 두껍'거나 '대머리'이고, 그것이 너의 '외모적 단점'이다라는 말과 똑같다. 그 뒤에 얼마나 좋은 말이 나오건 상관없다. 어쨌든 현재의 외모가 부족하다고 평가하는 거니까. 왜 이렇게 남의 외모에 평가질인지. 그냥 생긴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게 냅두면 안 되나.  


그날 결국 난 입에 맴돌던 그 말을 하지 않았다. 똑같이 저급한 인간이 되기 싫었다. 나는 기분 좋으라고 한 칭찬에 열폭한 또라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스스로가 보기에 못난 인간은 되지 않았다. 애써 자부심을 가져보았다.


세월이 10년 넘게 훌쩍 지났다. 몇 달 전 동호회 지인 결혼식에 갔다가 그 사람을 봤다. 나는 속으로 좀 놀랐다.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뒤통수를 때려주고 싶은 충동이 솟아난 것이다.


그렇게 오래 지났는데도 여전히 이럴 줄이야. 이럴 거면 그때 시원하게 갚아주고 잊을걸. 나는 못나고 저급한 사람 맞는데, 왜 고상한 척 행동해 가지곤 아직까지 억울해하냐. 자부심은 개뿔, 지금이라도 가서 한 마디 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다시 그날로 돌아가면 무조건 끝까지 공격할 테다 다짐하면서.


나는 뒤끝 또한 징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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