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후 처음 입사한 회사는 규모가 큰 곳이었다. 시스템이 괜찮아서 일하는 데 불편함도 없고 부서 사람들도 좋아서 만족하고 다녔다. 하지만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아 3년을 못 채우고 퇴사했다.
이후 적성에 맞는 직무를 찾아 이직을 준비했다. 분야를 바꿔 취업하려니 큰 회사는 그림의 떡이었다. 이제 내겐 중소기업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이른바 '좋소'의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이다. 아빠가 중소기업을 운영했기에 모든 중소기업을 좋소라고 폄하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내가 근무한 중소기업들은 비상식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확실한 좋소였다.
첫 회사는 특이하게도 산에 있었다. 지하철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30분을 굽이굽이 올라간 후, 정류장에서 또 15분을 가파른 경사를 걸어 올라가야 나오는 곳이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마당 뒤로 가정집이 있고 뒤에는 가건물이 있었는데, 두 공간 모두 사무실로 쓰고 있었다. 나는 둘 중 가건물에서 일했다.
가건물이 얼마나 열악한지, 외부와 내부를 구분하는 건물벽이 얇은 샌드위치 패널이라 여름엔 겁나 덥고, 겨울엔 오지게 추웠다. 가건물이면 넓기라도 하든가, 코딱지만 한 사무실엔 회의실은커녕 모여 앉을 큰 테이블도 없었다. 안건이 생기면 커피 포트 놓는 작은 탁자에 모여 회의를 했는데, 바로 앞이 사장 아들 자리라 늘 그의 눈치를 보며 발언했다.
화장실은 남녀공용으로 딱 한 칸에, 사무실 안에 위치해 있어서 화장실에서 물을 내리면 소리가 밖에 다 들렸다. 장이 건강해서 매일 오전 일정 시간에 시원하게 볼일을 보는 나는 화장실 컨디션이 불만스러웠지만 별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해 1월, 딱 한 칸뿐인 화장실 변기의 파이프가 동파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부장님, 변기가 얼었어요. 어떡해요?"
"음, 안 그래도 아까 업체에 연락했는데 요새 바빠서 못 온대."
"그럼 어떡해요?"
"글쎄. 못 쓰는 거지 뭐. 봄이 되면 저절로 녹으니까 기다리든가."
귀를 의심했다. 봄까지 기다리라고? 자기가 아침에 똥 안 싼다고 너무 안일하네. 어이가 없어서 입사 후 처음으로 부장님한테 대들었고, 부장님은 당황했는지 어찌어찌 사람을 구해서 열흘 만에 화장실을 고쳐놓았다. 수리가 완료된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밖으로 나왔는데, 대리님과 과장님이 마당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류미 대리, 부장님한테 대들었다며?"
"아... 네. 화장실을 봄까지 안 고친대요. 말이 돼요?"
"부장님이 고생 많이 했어. 여기까지 수리하러 오는 사람 찾느라."
"그러니까 왜 회사가 이런 첩첩산중에 있냐구요."
과장님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류미 대리, 몰랐구나. 우리 회사가 산에 있는 이유는, 바로 사장님이 개를 키우기 위해서야."
그랬다. 이 회사에는 개가 있었다. 그것도 두 마리나. 나는 덩치가 큰 개를 개전무, 작은 개를 개상무라고 불렀다. 사장님은 아침에 출근해서 개를 끌고 산을 돌아다니며 산책을 시켰다. 그가 출근하지 않는 날에는 직원들이 개를 산책시키고 똥을 치우고 밥을 줬다. 주말에는 사장이 나오지 않아, 직원들이 당번을 정해 개를 돌보러 출근했다.
나는 개를 좋아한다. 하지만 회사에서 개를 키우는 건 다른 얘기다. 회사는 사람이 일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곳이지 개들이 먹고 노는 곳은 아니니까. 아직 어려서 개줄을 풀어놓은 개상무와 달리, 성견인 개전무는 가건물 앞 한쪽에 묶여 있었다. 하지만 개줄이 마당 지름보다 길어서 마당 반대편 끄트머리로 다녀도 개전무를 피할 수 없었다.
이게 회사야 개판이야. 사장님과의 회식 자리에서 기회를 보다가, 만취한 척하고 입을 열었다.
"제가 이 얘기를 할까 말까 고민했는데요 사장님… 그거 알아? 회사에선 개를 키우면 안 되고! 굳이 키울 거면 직원들과 동선 안 겹치게 뒷마당에다 묶어 놓고! 어쩔 수 없이 동선이 겹치면 개줄을 짧게 매서 사람한테 안 들러붙게 해야지!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이 사람아!“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지. 대신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사장님, 개들이 너무 귀여워요~ 제가 별명 붙였어요. 큰 개는 개전무, 작은 개는 개상무! 호호호."
사장은 아무 말도 없었지만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하루는 외근 갔다 들어오는데 개전무가 사무실 문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눈빛이 평소와 달라 좀 긴장됐다.
"우리 개전무 착하지~ 누나 안에 들어가야 하니까 좀 비켜줘요~"
최대한 개한테서 멀리 떨어져서 들어가려는데, 개전무가 확 달려들더니 허리 쪽을 물었다. 깜짝 놀라 피했지만 이빨이 점퍼 주머니를 관통했다.
"으악!"
개 이빨에서 점퍼를 확 빼서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주머니가 찢어져 너덜너덜했다. 문 앞에 당황한 눈빛의 사장님이 서 있었다. 그가 마당으로 황급히 나가며 중얼댔다.
"내가 개 조심하라고 메일 보냈는데..."
쿵쾅대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자리에 돌아와 메일함을 열었다. 사장한테서 메일이 와 있었다. '개가 현재 발정기라 예민하니 조심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면 개를 어디 가눠놓거나 목줄이라도 짧게 매 놔야지. 그리고 이런 일이 벌어졌으면 나한테 사과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자기 개가 사람을 물었는데. 하지만 사장은 끝까지 사과는커녕 이 사건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사건 이후로 개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근무시간에 컹컹대는 거 하며, 어린 개상무가 사무실 돌아다니며 간식 달라고 낑낑대는 거 하며, 마당 가운데 싸놓는 똥 하며... 짜증이 났다. 이게 회사야, 개판이야.
그날은 마감이라 바쁜 날이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개들이 짖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파티션 너머로 보니, 처음 보는 개 두 마리가 뛰어다니고 있었다. 사장이 본인 집에서 키우는 개들을 회사에 데려온 것이다. 개전무와 개상무보다 덩치는 작지만 어찌나 앙칼지게 짖어대는지. 귀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크게 틀어도, 네 마리의 개가 미친 듯이 짖는 소리가 돌비 스테레오처럼 귀에 꽂혔다.
설상가상으로 사장이 급한 일 있다고 개를 두고 나가버리는 바람에, 개 네 마리가 뒤엉켜 개싸움이 벌어졌다. 부장님이 어찌어찌 떼어놓았을 땐 하얀 털의 개상무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내가 1년을 못 채우고 퇴사하게 된 계기도 개 때문이다. 당시 사장이 운영하던 몇 개의 업체를 통합하면서, 우리 부서 사람들이 다른 업체 짐을 우리 사무실로 옮겨야 했다. 원래 우리 팀이랑 업무 연관도 없고 앞으로도 관계없을 업체였지만, 사장이 하라니까 해야지 뭐.
5톤 트럭에서 짐을 내려 안 그래도 좁은 사무실 여기저기에 배치했다. 용달이 아니라 이삿짐 업체를 불렀다면 일이 쉬웠겠지만, 짐 부리는 사람을 안 불러서 무거운 짐을 우리 팀 여자 넷이 옮겨야 했다. 가구를 옮기는 중에 선반이 분리되어 내 손등에 떨어졌다.
"악!!!!"
"류미 대리, 괜찮아?"
과장님이 달려와 내 손을 잡고 상처를 확인했다. 그때 마침 사장이 사장실에서 개를 끌고 나오고 있었다. 그가 내 손등을 힐끗 보며 말했다.
"어이쿠 조심해야지. 조심성이 없어서야 되나. 수고해요."
이 말을 남기고, 멋진 운동화와 운동복을 착용한 그는 개와 함께 밖으로 힘차게 뛰어 나갔다.
'안 다쳤어요, 류미 대리?'도 아니고, '아이고, 이제 그만해요. 내일 사람 불러서 옮기게.'도 아니고, '늦은 시간까지 고생 많네. 저녁 시켜 먹고 일해요.'도 아니고 '조심성이 없어서야 되나'라니. 그것도 본인 회사 통폐합 때문에 가구 옮기면서 이 시간까지 일하고 있는데, 남의 일인 양 '수고해요' 라니. 사람이 다쳤는데 본인은 개랑 즐겁게 산책이나 가다니.
사장은 돈 주고 내 시간을 산 거지, 나를 종으로 들인 게 아니다. 정해진 일을 정해진 시간만큼 하고 월급을 받는 철저한 계약 관계인데, 왜 그의 개에게 물리고, 야근수당도 못 받으면서 업무랑 관계없는 일을 하고, 하다못해 생리현상까지 불편하게 해결해야 하냐고.
얼마 후 나는 퇴사했다. 개보다 못한 존재로서 인간적인 모멸감을 참고 다닐 만큼 대단한 회사도 아니었거니와, 아무리 대단한 회사라도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다면 굳이 다닐 이유가 없으니.
퇴사 후 전해 들은 얘기는 더 가관이었다. 사무실이 있던 가건물이 불법 영업 건물(대강 이런 죄목인 듯)로 신고당해서, 사무실 짐을 빼서 창고에 갖다 놓고 회사 운영 안 하는 척하다가 잠잠해지면 다시 옮겨놓는 일을 몇 번 반복했다. 불쌍한 직원들은 사무집기와 가구를 넣었다 뺐다 하면서 막노동하고, 저녁에는 근처 카페에서 업무를 했다. 물론 사장은 지 손으로 마우스 하나 안 옮겼다.
이런 비상식적인 일을 반복하던 어느 날, 밤에 가건물에 불이 나서 전소했다고 한다. 다친 사람이 없었다니 다행인데, 직원들은 얼마나 허탈했겠는가.
애초에 사장이 개를 키우기 좋은 환경에 회사를 만든다는 로망만 없었어도, 개가 사람보다 위에 있고 사람이 개고생 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이게 다 개 때문이다.
아니, 아니지. 사람 때문이다. 늘 사람이 문제다.
이렇게 첫 좋소를 경험하고, 나는 또 다른 특이한 회사로 이직하게 된다.